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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늦었지"

"얘 지금 몇 시인 줄 아니? 9시 반이야."

"아이 글쎄 그 택시를 잡을래야 잡을 수가 있어야지 글쎄."

"어머 너 목걸이 좋은 거 했구나."

"어 일제야."

"어쩐지 산뜻 하더라. 너 화장품도 일제 쓰는구나."

"그럼 이건 옛날부터 쓰던 건데 국산은 도대체 화장이 먹어야지."

"이거 어디서들 구하지."

"그건 비밀. 하지만 걱정할 것은 없어 한일회담이 돼서 앞으로는 막 밀려들 텐데 뭐."

"그래. 그거 참 잘 됐구나 얘."

"어머 너 이 백 일제로구나. 어쩜 색이 이렇게 이쁘니?"

"아니야. 국산이야."

"어쩐지 투박해 보이더라. 엽전 것은 할 수 없어."

"나도 이젠 일제를 써야겠어."



여러분 이 아가씨들의 얘기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국산품을 멸시하고 외래품을 좋아하는 꼴도 가관이거니와 한일국교 정상화가 마치 자기들의 허영과 사치를 위한 것인 것처럼 생각하니 이런 사고방식이야말로 참으로 위험천만한 망국적인 생각이라 하겠습니다.



"저 이거 좀 보여주세요."

"네. 이거 말씀이에요?"

"네. 이거 외제에요?"

"아니에요. 국산품이에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 것이라면 무조건 좋아하는 습성이 있는데 이 사대주의적인 풍조가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모르겠으나 요즘 우리들의 생활 주변에는 우리 것이 우리의 것으로 행세하지 못하고 남의 것을 더 앞장세우고 있는 일이 허다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거기에다 또한 예술을 상품으로만 아는 무책임한 예술인들은 진정한 민족의 생활정서는 아랑곳없이 마구 남의나라 작품들을 표절하고 모방하는가 하면, 일부 다방과 요정에서는 의식적으로 일본풍의 노래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한일국교 정상화가 결코 이러한 일본풍의 문화를 무조건 받아들이는데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남의 문화를 배격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들은 남의 문화를 받아들이기 전에 우리들의 확고한 주체의식을 확립해서 옳고 그른 것, 다시 말하면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하면서 남의 문화를 조화시켜야 하겠습니다.



"아빠 이거 뭐야? 과자야?"

"아니 책이다."

"아니 웬일이시오. 책을 다 사오시고, 도대체 무슨 책이에요."

"일본어 첫걸음 책이야."

"일본어 교과서요?"

"어. 큰녀석에게 일본말을 좀 가르쳐줘야겠어."

"일본말이요? 원 아버지도 일본말을 배우려면 차라리 독일어를 배우는 게 낫죠."

"원 배울 것도 많지. 아 영어 한 가지 배우기도 힘 드는데 무슨 일본말이유?"

"모르는 소리. 이젠 영어보다 일본말이 더 필요하단 말이야. 아 일본 세상이 들이닥칠텐데 일본말 안배우고 뭘 배우겠어."



왜 일본 세상이 들이닥친다고 생각할까요. 이것이 바로 주체성을 상실한 사람들의 망상인 것입니다. 학문적인 입장에서 일본어를 배운다면 모르지만 행세를 하기 위해서 일본말을 배운다고 하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이뿐 아니라 우리 주변에는 국가와 민족을 망각하고 오로지 자기 개인의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벌써 상가에서는 몰지각한 상인들의 장난으로 국제환율로 보아서 화폐가치가 더 있는 우리나라 돈이 일본 돈과 1대1로 교환되고 있다고 하니 우리들은 이러한 매국적인 요소를 하루속히 제거해야 하겠습니다.



"이상하다."

"아니 여보 웬 수선을 그렇게 피우시오."

"잠자코 있어요 글쎄 돈벼락이 떨어질 테니. 그런데 분명히 봤는데 없단 말이야."

"아 원 참 뭘 그렇게 찾으세요."

"아 전에 내가 모시고 있던 주인 스즈키 상 그 주소 말이야."

"아니 별안간 그건 뭘 하려고 그러우."

"아이고 답답도 해라. 그 양반이 지금 일본에서 손꼽는 재벌이란 말이야. 이제 한일협정도 다 돼가겠다 미리 손을 써놔야 그 양반 덕을 톡톡히 볼게 아냐."

"아이고 원 참 당신도 김칫국부터 먼저 마시는 구려."



우리들의 주변에는 이러한 헛된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이 파다해 있습니다. 일본 상인과 한번 결탁을 해서 일확천금을 노려보겠다는 부질없는 꿈을 꾸는 자들, 국가와 민족의 이익은 아랑곳없이 오로지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밀수배들, 한일국교 정상화를 앞둔 현 시점에서 우리들은 우리들의 주체의식을 확고히 확립해서 외래품과 사치를 배격하고 우리 것을 사랑하고 아껴 쓰며 또한 검소한 생활로 저축을 해 우리의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유산을 남겨주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