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길에 쏟아져 나오는 어린이들. 한결같이 튼튼하고 바르고 씩씩하게 자라길 바라지 않는 부모님들은 없으실 텐데, 그 실은 그렇지가 않거든요. 먼저 어깨가 축 늘어질 정도로 무거운 책가방을 좀 보세요. 뭐 설마 이 어린이들이 박사학위를 딸 학자들도 아닌데 무슨 놈의 책이 그렇게 많은지... 보세요. 신문으로도 보았고, 또 길에서 눈으로도 보셨죠. 죄 없는 어린 싹들이 무참히도 하루아침에 차에 깔려 짓밟히고 불구가 되고 하는 것을, 거 왜 내가 사는 집 가까이에 있는 학교에 보내질 않고 머나먼 학교에 보내는지 그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물론이시겠지요. 인류학교, 그러나 생각해보세요. 인류란 허영의 그늘아래 바로 당신의 귀여운 어린이가 마음이 쫓기고 고달프고 시달림에 비틀어져 가고 있는 모습. 우리 집 애는 까딱없다구요. 그러시겠지요. 그러나 이로 인한 나쁜 사회풍조는 그 누구에게 책임 있습니까? 여기 졸고 있는 학생을 보십시오. 무더운 날씨 탓만이 아닙니다. 무엇이 분명 잘못된 거죠. 어제만 해도

"철아 또 어디 가니? 좀 있다 과외공부 가지 않고"

"아이 참 좀 놀다 갈래요."

"지금 놀게 됐니 정말 아휴 과외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놀기만 하면 되나. 자"



하하하 거 이렇게도 한숨 돌릴 사이도 주지 않고 몰아세우니 원 쯧쯧쯧... 도대체 누구를 위한 앙탈일까요? 이가 진심으로 여기 올빼미처럼 둘러 쭈그리고 앉은 어린이를 위한 일이라고 크게 말할 수 있습니까? 이걸로도 끝나면 다행인데 그게 아닙니다. 또 이렇습니다.



"부지런히 좀 가르쳐 줘요. 네 아 이러다가 일류 중학에 못 들어가면 무슨 창피야."

"전 또 너무 피곤해 보이길래 좀 쉬게 할려구요. 그럼 조금만 더하고 자자."

"이젠 그만 해요."

"그럼 못써"

"졸려 죽겠단 말이야"

"잘꺼 다 자고 언제 공부해, 인류학교 되거든 그때 실컷 자라. 네가 떨어지면 엄만 창피해서 바깥출입도 못해요"



아 불쌍... 인류학교에 못 들어간 아들을 둔 건 창피스러운 줄 아시고 지쳐 병들고 짓눌려가는 아들을 둔 건 더 창피스러운 일이라는 걸 미처 모르시니 딱한 일이시군요. 아주머니도 졸립지요. 인류학교도 좋지만 그만들 자게 해주세요. 네. 나가면 치맛바람 가난한 어린이들과 그 자모를 울리는데 꼭 알맞은 일이지 뭡니까. 이 자모의 어린이의 가슴에는 이렇게 피맺힙니다.



"우리 어머닌 오늘도 안 오실 거야. 저렇게 좋은 옷이 있어야지 뭐. 그런 옷으로는 숫제 안 오시는 게 낫지 뭐. 나도 옷 잘 입는 누나라도 하나 있었으면..."



이 치맛바람이 주는 영향을 최신희 박사는



"어머니들이 학교에 너무 자주 가는 자체가 어머니들이 학교 교육이나 아이들 성적에 대해서 너무 불안해하는 이런 증거라고 밖에 생각이 안 됩니다. 어머니의 이런 불안해하는 증거가 부지불식간에 아이들한테 그대로 투사되고 아이들이 그 불안을 받아들여서 아이들이 불안해져요. 이 불안의식에서 차차 아이들이 공부하는 걸 싫어하고, 두려워하고, 또 자라나서 불안한 사회인으로 발전이 되어 버립니다. 이 문제는 참 중요한 문제인데요. 우리들이 아이들의 건강에 대해서 생각할 적에 육체의 건강만이 생각할게 아니라 아이들의 정신적인 건강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정신의 건강이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불안 없는 정신입니다."



그런데 가뜩이나 바쁜 주부가 이렇게 모여 앉으면



"그래 얼마나 거두었어"

"참 한 만원 되는데"

"네, 아..."

"아직도 많이 모자라요."

"그럼 우리 이제 학교나 가봅시다."

"그럽시다."



듣고 보니 이거 또 엉뚱한 수작들이시군요. 이렇게 해서 학교로 들이닥치면 뒷자리에서는 자모들의 패션쇼. 이른바 치맛바람이 일고, 그리고 앞에서는 어린이들이 공부를 하고, 이렇게 하고서도 제대로의 공부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이 치맛바람에 감싸여 어린이들은 의뢰심과 오만이 싹트며 이 안에 감싸여 들지 못하는 어린이들은 열등감의 쓴맛을 씹어야 합니다.

잠깐 눈을 돌려보실까요. 비록 천막 한 장 속의 교실. 그러나 여기는 가르침과 배움 하나만의 깨끗하고 뜨거운 공기만이 훈훈히 감싸인 교실입니다. 여러분 만일 내 자식에게 쏟는 관심이 남거든 여기 어린이들에게 손길을 뻗쳐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자식을 위한 마음이 지나치게 넘쳐흐를 때를 비춰보세요. 그러나 이제 누구의 잘못을 탓하기에 앞서 모든 것은 지난 이야기로 돌릴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고 있습니다. 여기 학원정화운동에 불을 붙인 교사 헌정을 기초한 최상덕 교사는



"교사 헌장의 10개 항목은 이미 신문지상에 보도되었기 때문에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겠습니다만 대충 그 중심이 되는 것을 다시 한 번 살펴본다면 그동안 어린이에게 무리한 육체적 고충을 주던 과외공부를 지양할 것과 그리고 늘 말썽을 일으켜오던 잡부금의 징수를 배격할 것, 또한 부도권의 알선 또는 사용 금지, 이런 것이 그 중심이 되겠고 그 외로 정상적인 수업을 위한 시간엄수라든지 생활지도의 강구 또는 취업진로의 지도, 이런 문제 등이 교사 헌장에 중요 골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학생정화운동. 이제 불은 붙었습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보다나은 살림, 보다 바른 사회를 이룩하기에 온 겨레가 그 어느 때보다 의욕 찬 지금 우리의 학원이 외면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제 뭘 주저하겠습니까? 우물 안 뒷골목에 어제와 달리 이제 활짝 열린 양지로 우리 젊은이들은 내닫기 시작했습니다. 민족의 새싹으로서의 사명을 깨닫고 참된 학생, 명랑한 사회를 구현하겠다고 나선 학생들, 교육자로서의 양심에 호소해서 스스로 사도정화운동을 펼친 스승, 이에 발맞추어 적극적인 협조를 다짐하고 나선 어버이들, 이제 학원은 오래 쌓인 병폐와 독소를 비질하고 정비해서 제 모습 그대로가 들어날 것입니다. 이러한 운동이 국민운동으로 집결될 때 조국 근대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은 알찬 열매를 맺게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