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설에 뒤덮인 신비의 땅 남극대륙. 영하 4, 50도의 혹한과 때때로 몰아치는 시속 200km의 강풍이 인간의 접근을 용납지 않는 땅이다. 인류의 마지막 보고로 일컬어지는 극광 오로라의 세계 남극대륙에 한국의 젊은이들이 도전장을 냈다. 1985년 11월 6일 장도에 오른 17명의 한국해양소년단 남극탐험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남극으로의 관문 칠레에 푼타아레나스 기지에서 현지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1월 16일 제1진 10명은 과학탐사 활동을 위해 남극대륙 최북단인 킹조지섬으로 향했고 제2진 7명은 현지적응력 체험과 남극 최고봉인 빈슨매시프 정상 정복에 사명을 띠고 센터널 지역으로 향했다.

북미와 멕시코를 합친 크기의 남극대륙, 그 98%가 2000m의 얼음으로 덮여 있으나 여기엔 5억 배럴의 석유, 12억 톤의 석탄, 금, 은, 구리, 철 등 엄청난 자원이 묻혀있다. 대한의 건아들이 여기에 첫발을 딛고 태극기를 게양했다.

대륙연안에 서식하는 40여종의 새들 그리고 물개, 바다표범들이 우리 탐험대원들의 상륙을 시샘하고 있다. 접근을 해도 도망은커녕 도전해 온다. 낯선 침입자에 대한 경계다. 여기선 여름과 겨울, 두 계절뿐 우리 대원들이 도착한 11월은 여름이었으나 기온은 영하 15도에서 영하 50도 사이를 오르내린다.

우리 탐험대 제1진 킹조지 관측 팀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풍량, 풍속 등 기상을 조사하고 식물 채집과 연구에 필요한 암석과 화석을 채취했다. 또한 수중탐사와 수중촬영도 했다. 남빙양의 수중탐험은 한번 잠수에 20분을 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해저생물 자료가 없는 우리로서는 한 점이라도 더 채집하기 위해 40분간을 잠수해있었다. 우리 탐험대는 한국인의 남극탐험을 알리는 동판을 남겼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 대한의 남아들이 인류공영과 세계평화를 위하여 여기 남극에 첫발을 디디다.

현재 남극대륙에는 16개국에서 70개 기지를 운영하고 있는데 킹조지섬에는 7개국이 기지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 탐험대는 이들 기지 중 칠레와 중공, 소련, 폴란드 기지를 방문 시설 및 활동을 파악하고 친선을 도모했다.

한편 제2진 빈슨매시프봉 등반 팀은 악천후와 싸우며 전진을 계속했다. 센터널 산맥에 솟아있는 남극대륙의 최고봉 빈슨매시프, 그 신비의 성역을 감추려는 듯 정상은 구름 속에 숨어있다. 혹한에 밤낮을 구별할 수 없는 백야현상, 하루가 지루하게 느껴지면서 잠을 잘 수 없는 것도 큰 고통이었다. 우리 대원들은 최고봉 공격이 시작되던 날 비장한 각오로 태극기 앞에 성공을 다짐했다. 섭씨 영하 40도, 초속 30미터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폭풍설 속에서 허욱 부대장과 이찬영, 허정식 대원 등 3명은 걷고 또 걸었다. 보온병의 식수는 이미 얼음으로 변했고 갈증은 갈수록 더해만 갔다. 제3캠프를 떠난 지 8시간, 탈진 상태로 사투를 벌인 끝에 마침내 1985년 11월 29일 0시 30분 태고의 만년설에 덮인 5,140미터의 남극대륙 최고봉 빈슨매시프에 태극기를 휘날렸다.

“여기는 캠프3 캠프3 감 잡았다 얘기하라 이상...”

우리는 해냈다. 한국 사나이들의 집념의 도전과 탐험정신이 동토의 대륙 남극에서 꽃피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천연자원의 보고 남극대륙, 여기에 굳센 대한 남아의 기개와 한민족의 진취성 그리고 불굴의 기상을 심고 우리 젊은 탐험대는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