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대통령은 오늘 오후 예고된 대로 청와대에서 시국과 관련한 특별담화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대통령의 특별담화는 KBS텔레비전과 제1라디오를 통해서 생방송으로 전국에 중계방송 됩니다. 노태우 대통령 지금 서재에서 담화문 발표를 위해 대접견실에 왔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는 바로 사흘 전 전직 대통령이 지난 시대의 잘못에 대해 국민여러분께 사죄하고 정처도 없이 은둔의 길을 떠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의 불행했던 헌정사와 지난 시대를 되돌아 볼 때 참으로 착잡하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초대 대통령이 장기집권과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젊은이들의 함성에 쫓겨 외국망명지에서 숨을 거두고, 18년을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이 부하의 총탄에 의해 비극의 종말을 거두었습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이제 또 다시 국민의 들끓는 질책 속에 전직 대통령이 20여년을 살아온 집과 재산을 내놓고 어린 아들과 헤어져 참회의 길을 떠나는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게다가 전임 대통령의 가까운 친인척은 거의 모두 구속되어 법의 준엄한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마당에 우리 모두의 아픔이 된 지난 시대의 청산문제는 이제 매듭을 지어야 할 시점에 왔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날의 문제를 가지고 사회 전체가 진통과 혼란을 무한정 계속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제는 지난날의 잘못을 청산할 국민모두의 슬기와 냉철한 이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불행했던 과거의 잘못이 우리에게 또 다른 재앙이 될 것을 바라는 사람,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더 밝은 내일이 있게 하는 값비싼 교훈이 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제 전임 대통령에 대한 문제를 종결 지을 방안을 밝히면서 여야와 각계각층, 국민 여러분의 협력을 호소합니다. 전임문 대통령 문제를 처리하는 데 있어 일부 국민은 사법적 절차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 다른 국민은 잘못된 부분에 대해 조사를 한 후에 사면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상당수 국민들은 이제는 그의 사죄와 은둔을 너그러움으로 용서하고 이 문제를 마무리 짓기를 희망하고 있는 등 국민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감정이 아닌 이성의 바탕 위에서 과연 나라의 장래를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 될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 다 버리고 떠난 전임 대통령의 잘못을 물어서, 7년 반 동안 이 나라 국가원수로 일해 온 그를 재판정에 묶어 세워야 하겠습니까? 그 스스로 잘못을 깊이 사죄한 이 마당에 지난 시대 잘못이 많았다고 하여 전임 대통령에게만 돌을 던질 수 있겠습니까? 저 자신 남보다 무거운 책임을 깊이 통감하고 있습니다. 국민이 뽑아 주신 대통령으로서 이제는 구시대의 잘못을 청산하는 단안을 내리고 국민여러분과 함께 이 문제를 수습해야 하겠습니다. 전임 대통령의 정치 행위에 대해, 사법적 조처를 통해 처벌하자는 것은 정치적인 보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지난해 선거에서 여야 정치인들이 국민 앞에 다짐한 약속에도, 또한 그때 투표로 표시된 국민의 뜻에도 맞지 않는 일이라고 봅니다. 정치보복은 국가 장래와 우리의 민주발전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잘못이 크다 하더라도, 잘못은 미워할 수 있으나 우리 헌정사상 처음으로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전임 대통령을 여기서 더 나아가 처벌하는 것은 민주헌정의 내일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지난 시절을 참회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뉘우침의 나날을 보내는 전임 대통령의 사죄를 너그러이 받아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새로운 민주시대를 꽃피워 가기 위해서는 너그러운 민주주의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너그러움과 용서와 이해 없이는 진정한 민주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저는 이런 바탕 위에서 전임 대통령에 대한 더 이상의 단죄는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임 중에 있었던 정책의 과오나 정치자금의 운용 등 국정최고책임자로서 행한 정치 행위는 범법여부를 따질 개인적 문제일 수는 없다고 봅니다. 이미 이 모든 책임을 지고 떠나버린 전직 대통령을 다시 불러내어 추궁해야 할 것인지, 아무리 진실의 규명이라고 하더라도 7여년의 기간에 걸친 복잡한 정치자금의 모든 내용을 가리는 것이 과연 가능하며 합당한 것인지, 우리 모두 깊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정치자금으로 따진다면 비단 그 한 사람에게만 진상을 따져 책임을 묻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렇게 이 문제를 무작정 시비의 대상으로 삼아가서는 정치 사회에서 안정의 기틀이 끝없이 뒤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깊이 생각한 결과 이 문제는 전임 대통령이 스스로 밝힌 내용을 받아들임으로써 매듭지을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다만 국내나 국외에 그가 밝히지 않은 재산이 있는지의 여부는 앞으로 정부가 국민여러분의 협조로 가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무한정 지난날의 문제에만 매달려 있을 수 없으므로 저는 국회가 조사활동을 연내에 매듭지어 줄 것을 강력히 희망합니다. 정부는 사직당국을 통해 지난 시대의 부정과 비리에 대해 진실을 앞장서 밝혀나갈 것이며, 국회특위활동에서 제기된 문제와 국회가 올해 안에 미처 처리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주도로 빠른 시일 안에 마무리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저는 검찰에 전담부서를 지정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저는 지난 시대 잘못을 청산하는 문제를 조속히 매듭짓고 민주주의를 확연히 진전시키기 위해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첫째, 지난 시대 어두운 상처를 씻고 새로이 출발할 것을 갈망하는 국민 여러분의 뜻을 받들어 지금까지 시국과 관련하여 법의 제재를 받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곧 사면을 실시할 것입니다. 새 정부가 출범하기까지 시국과 관련된 일로 권리가 제한된 사람은 모두 복권이 되도록 하고 형을 받고 있는 사람은 석방되도록 하겠습니다. 정부가 출범한 이후 시국문제와 남북학생회담 주장 등과 관련하여 형이 확정되었거나 구속, 소추된 사람들에 대해서도 관용을 베푸는 조처를 취할 것입니다. 구시대를 청산한다는 차원에서 이 문제에 대해 야당 측의 합리적 주장도 이를 반영할 생각입니다. 이와 같은 조처는 연내에 모두 마무리될 것입니다.

둘째, 지난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는 사면과 함께 광주민주화운동, 1980년 공직자 해직과 삼청교육대 사건, 인권침해 사례 등 지난 시대 잘못된 공권력의 행사로 억울하게 피해 입은 분들께 보상과 함께 명예회복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에 대해서는 그동안 신고를 받아 진행 중인 사실 확인의 작업과 국회 특위활동이 끝나는 즉시 명예회복과 최대한의 보상을 실시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특별법을 제정토록 하겠습니다. 공직자 해직문제에 대해서는 정부가 금명간 보상 등 구체적인 대책을 발표할 것입니다. 소위 삼청교육과 관련한 사상자에 대하여는 신고를 받아 피해보상을 할 것입니다.

셋째, 정치자금을 둘러싼 비리를 없애기 위해 정치자금의 양성화를 추진하겠습니다. 여야가 공동으로 정치자금 양성화 법안을 성안해서 가급적 이번 회기 내에 통과시켜 줄 것을 희망합니다. 저는 새 공화국에서는 권력과 연계하여 저질러지는 비리가 사라지도록 깨끗한 정치에 앞장설 것입니다. 특히 우리 경제인은 어떠한 특혜나 변칙적 지원도 기대할 수 없게 하는 동시에 자유롭고 떳떳한 활동이 보장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기업인데 대한 어떠한 부담금이나 준조세적 기부금도 없앨 것입니다.

넷째, 저는 이 사회 모든 분야에 민주주의를 확고한 방향 위에서 정착시켜 나갈 것입니다. 국가보안법, 사회안전법, 사회보호법 중 비민주적인 조항은 개정하고 비민주적인 제도와 관행은 국민여러분의 요구를 기다리지 않고 앞장서서 개선, 정비 하겠습니다. 저는 국회가 하루빨리 민주적 개혁 제도를 위한 본격적인 입법 활동에 들어가, 이 나라 민주주의를 굳건히 뿌리내리는 일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다섯 번째로, 저는 지난 시대의 잘못을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당과 정부는 과감히 쇄신해 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고 법과 질서를 확립하겠습니다. 학생이 스승의 머리칼을 자르는 일이 민주주의일 수 없습니다. 과격하고 목소리 큰 소수가 합법, 합리의 다수를 누르는 풍조가 민주주의 아닌 것 분명합니다. 노사관계 이것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분규로 진통하고, 노사가 각각 지켜야 할 자리를 벗어나서 정상적 조직 체계마저 붕괴시키고 있는 일각의 현상은 정말 걱정스럽습니다. 더구나 계급혁명의 구호를 외치며 화염병 투척과 폭력파괴 행위가 만연하고 있는 것, 국민 모두의 불안을 더해주고 있는 것 입니다. 우리가 하자는 민주주의가 이런 것은 아니잖습니까? 저는 이러한 풍조가 제동 없이 방치될 경우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중대한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는 점을 직시하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법과 질서를 확립하는 것은 민주사회의 사활과 직결되어 있는 문제입니다. 정부는 이제껏 이 문제에 대해 사회 각 분야의 자생력이 일어나도록 공권력의 행사를 자제해왔습니다. 이제는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이 잘못된 불법 과격행동은 하나하나 확실히 바로잡아 나갈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모든 조처들은 지난 시대의 잘못은 분명히 단절하려는 저의 의지를 실천하는 것이며, 이것이 지난 시대를 올바르게 정리하는 길이라 믿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는 지난해 이후 엄청난 격동과 변화의 흐름 속에서 세계가 놀라는 성취를 이룩하였습니다. 온 국민이 뜨겁게 뭉쳐 이룬 서울올림픽의 영광은 세계의 부러움과 찬사를 모으는 나라로 만들지 않았습니까? 정치적 격랑 속에서도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의 힘은 정말 위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세계는 다시 걱정스러운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온 국민의 슬기와 화합으로 이 고비를 또 한 번 극복해서 그 보람찬 영광의 빛을 더할 것인지 우리 모두가 깊은 좌절의 늪 속으로 빠져들 것인지…이제 선택의 기로에 우리가 서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도전인 동시에 기회를 맞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국민이 이해와 관용으로 또 한 번 크나큰 힘을 발휘하여 난국을 떨치고 일어날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저는 작년 국가적 위기의 한 가운데 서서 6, 29 선언을 할 때 민주주의를 위해, 그리고 이 나라 정치문화를 바꾸기 위해 저의 모든 것을 내어 던졌습니다. 오늘 다시 안타까운 현실에 직면하여 바로 그때 그 마음가짐으로 여러분 앞에 이같이 섰습니다. 저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위기, 나라의 난국을 모든 것 다 던져 막겠다는 일념뿐입니다. 저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결과 이 선택밖에 없다고 믿습니다.

국민 여러분, 힘을 모아 주십시오. 언제까지 과거의 일에 얽매여 있어야 합니까? 지난날의 문제로 안정이 깨어질 때, 어느 누구에 이로움이 있겠습니까? 이제는 서로 용서하고 손잡아 어려움을 떨치고 나가야 합니다. 모두가 잘사는 선진국을 만드는 일, 갈라진 민족을 통합하는 일은 미룰 수 없는 우리 모두의 과업입니다. 우리 모두 세계와 미래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딥시다.

국민 여러분, 그리고 각계 지도자 여러분, 진심으로 이해와 협력을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노태우 대통령의 시국관련 특별담화를 청와대에서 KBS와 CBS, 기독교 방송이 합동으로 중계방송 해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