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일 새벽, 미국의 뉴욕을 출발해서 서울로 오고 있던 대한항공 보잉747 여객기가 사할린 부근 상공에서 소련전투기에 미사일 공격을 받아 승객과 승무원 269명 전원이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전시도 아닌 평시에 수백 명의 인명을 태운 무장도 없는 민간 여객기를 아무런 사전조치도 없이 최신예 무기를 사용해 무차별 격추시킨 소련의 비인도적 만행은 우리 온 국민은 물론 세계 인류를 경악과 분노로 들끓게 했습니다.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른 소련은 첩보기로 오인 운운해 후안무치한 궤변을 나열하면서 그들의 야만적인 음모가 노출되는 것이 두려워 희생자들의 유해와 유품 수색마저도 악랄하게 방해만 하고 있어 우리 온 국민의 분노를 더욱 치솟게 하고 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9월 7일 전 국무위원을 배석시킨 가운데 희생자 합동위령제를 즈음한 특별 ㄴ담화를 발표했습니다.

“본인은 다시 한 번 소련 당국에 대하여 요구합니다. 소련은 더 이상의 농간을 버리고 전 세계 인류 앞에 진상을 명백히 밝히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범죄적인 양민학살에 대하여 인류의 양심으로 돌아가 대한민국에 공개 사죄하고 피해배상과 범인의 처단, 그리고 재발방지책을 보장하는 등의 의무를 다해야 할 것입니다. 불의를 응징하는 힘은 자탄과 패배의식이 아니라 불의와 맞부딪혀서 이를 기어이 꺾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실천력에 의하여 길러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힘을 길러 우리의 영공을 우리의 힘으로 지키고 우리항공기의 안전을 우리 스스로 지켜 나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어떠한 피격과 재난 그리고 어떠한 폭력에서도 해방되는 최후의 비결은 튼튼한 힘을 기르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민족의 자존과 국민의 안녕이 보장되는 튼튼한 나라, 힘 있는 나라를 기필코 건설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른들은 지금의 위치에서 두 배, 세 배의 땀을 흘리고 우리의 청소년들을 배움을 더욱 익혀 민족사의 건강한 주역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국회는 9월 8일 대법원장, 국무총리와 전국무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임시국회를 열고 소련의 야만적이고 비인도적인 대량 공중학살을 규탄하는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해 유엔과 세계 각국의 의회 및 국제기구에 발송했습니다. 대한항공 여객기의 피격격추 급보에 접한 정부에서는 국무총리 주재 아래 관계 장관들이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사태수습과 대응책을 신속하게 강구했으며 교통부에 대책본부를 설치하고 3일 동안 전국적으로 조기를 게양케 해서 비명에 간 희생자의 명복을 온 국민이 함께 빌도록 했습니다.

정부에서는 미국과 일본 등 우방과 긴밀히 협조해서 유엔안전보장이사회를 긴급 소집해 온 세계가 소련의 비인도적 만행을 규탄하는 하는 장소가 되게 했습니다. 김경원 유엔대사를 안전보장이사회에 참석시켜 소련에 대해 사건진상의 발표와 공식사과, 피해보상과 범죄자 처벌 그리고 앞으로의 재발방지 보장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이를 유엔의 결의안으로 채택해서 자유우방 뿐만 아니라 제3세계와 친 공산권 국가까지도 포함하는 전 세계가 소련의 만행을 응징케 하고 있습니다. 또 미국, 일본 등 피해당사국과 협조해서 소련에 대한 응분의 보복조치를 강구하는 한편 국제민간항공기구 등 관련 국제기관을 통해 다각적인 외교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이유야 어떻든 무장도 하지 않은 민간여객기에 미사일을 쏘아 집단학살을 자행한 소련의 만행 사실이 전해지자 우리 온 국민은 끓어오르는 통분을 억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인간의 이성과 양심을 외면한 공산주의자에 대한 만행의 분노는 불길처럼 솟아오르고 전국의 직장, 단체에서는 연일 소련을 규탄하는 궐기대회의 함성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한반도 분단의 원흉이며 6.25의 배후조정자 소련이 또다시 저지른 상상을 초월한 만행에 대해 우리 온 국민은 보복할 길 없는 현실의 설움에 분노하면서 국력배양의 결의를 굳게 다졌습니다.

9월 7일 오전 소련의 집단살육만행으로 어둡고 추운 북양의 바다 속에서 떨고 있는 269명 구혼을 달래기 위한 위령제가 서울운동장에서 엄수됐습니다. 이날 위령제에는 삼부요인을 비롯해 주한 외교사절, 국내외 유가족, 사회단체 대표와 서울시민 등 10만여 인파가 참석했습니다. 각계인사의 조사에 이어 대한항공 부기장 김희철 씨의 큰딸 수지 양이 아버지에게 드리는 고별사를 낭독하자 식장은 물론 텔레비전 중계방송을 시청하던 온 국민을 울렸습니다.

“아버지 저는 지금도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아버지가 소련의 무자비한 만행으로 돌아가시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으며 그 자상하시던 아빠 얼굴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니 참으로 저는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소련이 왜 이렇게 엄청난 짓을 했는지...”

16개국 나라별로 희생자의 위패를 모신 제단 앞에 나아간 유가족들은 복받치는 통분을 억누르지 못한 채 몸부림치다 실신해서 이를 취재하던 60여 명의 외신기자들 마저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분노와 슬픔의 바다가 됐습니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9월 6일 KAL 여객기가 피격될 당시의 녹음테이프를 공개하면서 소련의 범죄행위는 명백히 입증됐다고 밝히고 소련에 대한 제재조치를 발표, 전 자유세계의 협조를 호소했습니다. 일본의 나카소네 수상도 한미 양국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소련의 태도에 따라 강력한 대응책을 강구할 것임을 온 세계에 천명했습니다.

소련의 만행을 규탄하는 시위는 온 세계에 파급됐습니다. 세계 각국에 살고 있는 우리 교민과 평화를 애호하는 전 자유세계 국민들은 소련 대사관 앞에 몰려가 그들의 살인 만행을 성토하고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공산권을 포함한 82개국이 소련을 규탄하는 성명발표와 애도전문을 발송했고 60개국 250여 개 사의 매스컴이 소련을 규탄하는 보도를 했습니다. 국제 민간항공조종사들은 앞으로 60일 동안 소련취항을 중단하는 등 보복조치들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치솟은 노도와 같은 규탄의 함성, 우리의 가슴에 남겨진 응어리는 분노와 통곡만으로 씻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우리의 모든 역량을 한데 모아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비통한 마음을 가다듬고 꿋꿋하게 일어나 오늘의 슬픔을 내일의 기쁨과 영광을 이룩하는 데로 우리 모두의 힘을 모아나가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한을 품고 가신 영령들 앞에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명복을 빌면서 국운개척의 새 역사 창조에 온 국민이 다 함께 몸과 마음을 바쳐 최선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