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앞으로 닷새 동안 제 9회 4H 중앙경진대회가 열리게 됩니다. 4H 중앙경진대회란 우리들 60만 4H회원들이 일 년간 여러 가지 우리들 4H과정을 통해 연마한 농업기술을 서로 견주어 보는 날이지요. 전 4H부락생활을 열심히 해온 보람으로 제주도에서 이곳 수원까지 오게 되었어요. 말하자면 전 제주도를 대표하는 4H부원중의 한 사람이죠 저희가 지 덕 노체를 상징하는 4H 깃발을 앞세우고 들어가니까.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만장하신 내빈들의 시선이 일제히 저희들에게 쏠렸어요. 전 가슴이 떨려서 혼났어요. 그러나 우리들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대회장에 입장하였어요. 식이 시작되어 나는 나의 구락부와 사회와 우리나라를 위하여 나의 머리는 더욱 명석하게 생각하며 하고 4H구락부 서약을 하고 나니까. 진흥청장 전신규 박사께서 개회사를 하셨는데 우리 4H부원이야 말로 우리나라를 짊어질 보배라고 말씀하실 때는 전 마음속으로 얼마나 흐뭇했는지 몰라요. 식이 끝나자 잠깐 동안 쉴 수 있었는데요. 그때야 마음이 놓이겠죠. 아마 개회식 때는 순전히 긴장했었나 봐요. 잠깐 쉰 다음에 우리가 강당 옆 전시실에 갔더니 막 전시실이 개관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출품한 작품을 보시는 내빈들은 극구 칭찬을 하시며 감탄하지 않으시겠어요. 정말 누가 보던지 놀랄 거예요. 꽃바구니 슬리퍼 장독 같은 것도 시장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좋았지만 호박하나가 글쎄 큰 불덩이만한 것도 있었으니까요. 여기 전시된 전시품은 4H회원들이 1년 동안 좋은 것을 더욱 좋게라는 모티브를 과제로 이수한 열매이며 각 도마다 특색 있게 꾸며놓은 열매이다 보니 더욱 좋게 보였습니다. 전시장을 두루 살펴본 우리들은 잠시 쉰 다음에 곧 글짓기 경진 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초조하게 기다린 우리들에게 작문 제목은 이 나라를 바로 잡는 4H원이라는 것이 어리둥절했는데 전 평소에 생각하던 바를 정리해 옮겨 놓았어요. 다른 방을 가 보았죠. 근데 거기서는 자원 지도자 선생님들이 앞으로의 4H과제 지도와 그룹 활동을 교환하고 계셨어요. 이렇게 저희가 돌아다녀본 중에 가장 볼만한 것은 부원들의 업적발표회였습니다. 저도 한라산 중턱 자갈밭에다 고구마를 심어 성공했지만 다른 부원들이 고생하며 이룩한 업적을 들을 때는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경진 이틀째를 맞은 우리들은 틈이 나는 대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녀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층 별관에 갔더니 거기서는 대학 4H연구회원들이 우리들의 4H활동지도 연구과제 발표회를 하고 있더군요. 전 다시 발길을 돌려 웅변 대회장에 가 봤지요. 거기는 역시 듣고 볼만한 게 많았어요. 4H활동을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을 통해서 갖가지 열변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어요. 어떤 대목은 익살스러워서 청중이 웃게 되고 한때는 참을 수없는 울분을 자아내게도 했는데 그중 한 대목을 소개하겠습니다. 그리고 저희들 경진 종목 가운데 그 중 충실한 경진이 있어요. 이 경진은요. 우리가 1년이고 2년이고 우리가 구락부 활동을 통해서 얻어낸 창의력과 우리 농촌에 맞는 기술을 연구하고 발전시켜 그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경진입니다. 여기 이 파종 답압기의 독특한 성능과 특징을 두고 본 사람은 누구든지 놀랄 거예요. 그뿐이 아니지요. 여기 서있는 여자 부원은 지금 영양찌게를 만들고 있는데 이 찌개의 재료가 모두 우리 농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싸구려 재료랍니다. 아마 비싼 재료를 사서 만든 찌개보다는 맛이 더 좋을 거예요. 우리가 먹어 볼 수 없는 것은 섭섭한 일이지만 전 또 다른 지방의 부원들과 함께 이번엔 아래층에 있는 옷 짓기 경진 대회장에 가 보았어요. 고급반과 중급반으로 나누어 열심히 재봉틀을 돌리고 있더군요. 조용한 교실 안은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만 무슨 음악처럼 들려 왔어요. 중급반에서는 에이프런 하고 스카프라는 보를 만들고 고급반에서는 농촌용 작업복을 만들고 있었어요. 이렇게 저마다의 특징을 살려서 만든 옷을 입은 여자부원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서로 자랑을 하는 것을 보았는데 아마 심사위원들한테 잘 보여서 점수를 딸려나 봐요. 나중엔 심사위원이 검품을 하는데 아주 바느질을 잘 했다고 하지 않겠어요. 요즘 도회지의 신여성들은 바느질을 할 줄 모르는데 우리 4H회원들은 영 딴판인가 봐요. 요즘은 농업도 과학의 한 분야라고 한다는데 농촌진흥청 전시장을 보니까 정말 우리나라 농업도 과학적으로 다루어져 간다는 것이 엿보였습니다. 여러 가지 개량 농기구가 진열되어 있고 7개 시험장과 5개 연구소에서 시험연구하고 있는 중요업종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과연 과학적인 농업을 다루고 있는 곳이라 다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이렇게 연구하고 또 발전시키면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과학적인 농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정오가 되어 휴식을 갖고 정오의 잔잔한 호수를 굽어보며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4H국제 교환훈련생으로 미국에 다녀온 두 명의 부원을 만났습니다. 선진국 농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우리도 하루 속히 과학화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어요. 점심시간이 되어 식당에 들어갔지요. 한데 농촌진흥청장님도 4H부원들과 함께 다정스럽게 식사를 하고 계시었죠. 우리를 대해주시는 서민적인 성품이 농민을 지도하시는 지도관에 계시는 그분의 위치를 그대로 말해주는 듯 했어요. 오늘은 모처럼의 일요일이죠. 하지만 우리들의 일정엔 일요일도 없어요. 우리 부원들은 마지막 일정이지만 가장 어려운 기술교육경진을 해야만 했어요. 농촌 진흥청 청사 바로 뒤에 자리 잡은 경기장에는 온갖 기구들이 마련되어 있고 무 배추 감자 고구마 달걀 토끼 돼지 소 할 것 없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습니다. 이 기술교육경진은 여기 진열된 물건을 감정하고 심사하고 추정하여 판단을 내리는 것인데 섞은 달걀 중에서 신선한 달걀을 고르는 것도 어렵지만 세 마리의 돼지 세끼 중에서 가장 좋은 돼지를 골라내기란 무척 어려운 것이랍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산 송아지를 저울에 달지도 않고 몸무게를 알아내는 것이 쉬운 것인가 말이에요. 신중해 생각하고 판단해서 열심히 기록하고 있는데 Err_Code(14:19)지도국장님이 와 보시고는 우리를 격려해 주시지 않겠어요. 이럴 때는 긴장된 마음이 흐뭇해지더군요. 이런 어렵고 까다로운 경진이지만 조심스럽게 비교한 다음에 판단을 내리는 정말 모범적인 4H부원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기술경진을 마친 저희들 몇 사람은 우장춘 박사의 묘소를 찾기로 했습니다. 우리나라 농업의 개척자요 씨 없는 수박의 육성업자로 알려진 우 박사는 평생소원대로 농업센터인 이곳 농촌 진흥청 뒷산에 고요히 눈을 감고 누워계셨습니다. 이번 경진대회 중 가장 기쁘고 즐거운 행사가 있었어요. 그것은 카니발의 밤이었는데 우리말로는 사육제라고 한다지만 우리는 그냥 오락회라고 불렀어요. 정말 이번 오락회야 말로 경진에 지친 우리의 몸과 마음을 확 풀어주는 듯 했습니다. 전 목탄던지기를 했는데 뒷벽을 쳤더니 오락장에서는 완전히 낙제생이 된 셈이죠. 다음엔 고리던지기 놀이터에 가봤어요. 거기서는 청장님께서 낙제점수를 받고 계시지 않겠어요. 하지만 즐거운 웃음소리와 탄성이 치는 오락장은 굉장한 축제분위기로 들떠 있었답니다. 다음날은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강당에서 오락회를 베풀어 주더군요. 이날 밤 우리들은 대학의 형님들과 함께 어울려서 각 도 마다 특징과 노래마당으로 한 밤을 지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며칠만 유쾌하게 지낸다면 살이 저절로 오를 것 같았어요. 우리는 마지막 날 서울을 구경하게 되었어요. 제주도 산골짝에서 살던 제가 15년 만에 처음으로 서울을 와 봤다고 상상해 보면 지금의 제 기분을 잘 아실 거예요. 점심을 먹은 다음 남산 팔각정까지 올라갔습니다. 성냥갑처럼 세워진 수많은 집들을 내려다보니 전 하늘 꼭대기라도 올라온 기분이었어요. 벌서 재빠른 부원들은 망원경에 눈을 대고서는 도대체 양보를 안 하니 꼭 바보들같이 만 보이지 않아요. 창경원의 동물원도 참 재미있었어요. 무시무시한 표범이 입을 벌리고 으르렁 거릴 때는 여자부원들은 질 겁을 하고 도망가는가 하면 원숭이의 재롱을 보고는 배꼽을 잡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때 나를 부르신 선생님은 방송국에 가서 좌담회를 해야 한다고 하셨죠. 그래서 저는 선발된 다른 부원들과 함께 방송국으로 달려갔는데 몇 사람은 좌담회를 했고요. 우리 몇 사람은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좌담회를 했어요. 생전 처음으로 방송기구를 본 우리는 처음에는 떨려서 말을 못할 정도였답니다. 한편 다른 부원들은 한국일보사에서 신문 만드는 일을 견학했데요. 모든 것이 자동적으로 움직여지더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나도 봤어야 할 걸 하고 섭섭했지만 뭐 벌써 지난일인데요. 뭐 다시 합리한 우린 김현철 내각 수반을 뵈러 갔어요. 6.25동란 때 파괴되었다던 중앙청도 말쑥하게 단장되어 있더군요. 우리가 회의실에 들어갔더니 수반님은 우리가 모두 훌륭한 농민이 되어서 농촌진흥의 횃불이 되라고 간곡히 당부하셨어요. 이렇게 닷새 동안 경진 일정을 마치고 마지막 폐회식을 맞았어요. 나는 나의 부락과 자유와 우리나라를 위하여 나의 머리는 더욱 명석하게 생각하며 나의 마음은 더욱 크게 충성하며 나의 손은 더욱 위대하게 봉사하며 나의 건강은 더욱 좋은 생활을 하기로 맹세하는 4H서약을 이행하여 살아온 것이 바로 이번 경진대회 결실을 맺어주는 결론이 된 것입니다. 심사위원들의심사보고가 끝나고 자원지도자님들에 대한 시상이 끝나자 제 이름을 불렀겠죠. 저도 상을 타게 되는 것이었어요. 제가 단상에 오르자 사진기자들이 플래시를 터뜨리고 영화 촬영반 텔레비전 중개반이 조명을 하는 등 야단이었어요. 정말 난생 처음 이렇게 자랑스러웠던 순간은 없었습니다. 다음은 한미 재단에서 장학금을 전달하고 4H운동에 공로가 많은 선생님들에게도 표창장이 수여 되었습니다. 지나간 며칠 동안의 다채롭고 즐거운 생활은 저에게 깊은 인상과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나는 나를 낳고 나를 길러준 이 땅 이 나라를 위해 무엇이건 꼭해야겠다고 몇 번이고 마음속 깊이깊이 다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