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한 한민족의 역사와 함께 그 맥을 같이하고 있는 수도 서울의 상징 한강. 서울은 현재의 발전된 모습이 갖춰지기 오래전 선사시대부터 한반도의 생활터전이었으며 문화의 발상지였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의 흔적을 서울의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것은 현재의 수도 서울이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조상들의 집단생활 터가 되어왔음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한반도의 중심지에 수도를 정한 조선. 조선왕조시대에 수도 서울의 대표적 궁궐에는 경희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복궁 등 5개의 궁이 있다. 이 궁들의 모습에서 풍수지리설에 입각해 원리원칙에 충실했던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궁궐은 왕의 거처이자 국가통치의 발원지로 한 나라의 가장 고급스러운 문화와 예술을 꽃피웠던 곳이었으며 권력의 치열한 암투와 왕족들의 일상생활이 이어져 온 역사의 현장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국운이 쇠하여 사직이 무너질 때, 가장 큰 비극의 현장이기도 했다. 조선의 대표적인 궁인 경복궁. 지금으로부터 600년 전,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에 의해 1395년에 창건된 궁궐로 도성의 북쪽에 있다고 하여 북궐이라고도 불리는 조선의 대표적인 전궁이다. 600년을 이어오는 동안 경복궁은 수차례에 걸친 화재와 외란을 거치면서 소실됐었고, 뒤를 이어 집권한 임금의 뜻을 따라 대규모의 복원을 반복했던 역사의 현장이다. 경복궁은 큰 건물의 부속건물인 행각이나 건물을 잇는 행랑을 제외한 단독건물만도 150여 채가 넘고 방의 수에 있어서도 7481개를 갖춘 방대한 규모의 건물이다.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으로 조선시대에 궁과 궁 밖을 이어주는 통로였다. 근정문은 현존하는 조선 왕궁의 정문 중 유일하게 중층 건물로 남아있는 건물이다. 근정문의 좌우로 만들어진 일화문은 문관들의 출입 장소로 월화문은 무관들의 출입 장소로 이용됐다. 근정전은 문무백관들과의 각종 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접견하던 곳이다. 우람한 자태와 처마곡선의 조화가 아름다움을 갖춘 뛰어난 건축물이다. 고급스럽게 장식된 천장의 문양과 여의주를 다루는 두 마리의 황룡으로 장식된 우물천장은 임금의 위엄을 과시하듯 장엄한 모습이다. 근정전 뒤로는 사정전이 자리하고 있다. 내부에 그려진 벽화를 보면 왕으로 상징되는 당시의 궁궐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사정전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천추전과 수정전이 위치해 있다. 경복궁 창건 당시부터 있었던 큰 규모의 누각인 경회루는 연못 위에 놓여진 건물로 잔치도 하고 뱃놀이도 즐기며 외교사절을 영접하던 장소다. 용모양의 조각을 한 48개의 돌기둥과 동물상이 조각된 3개의 다리에서 당시의 궁궐 생활상을 볼 수 있다. 식수로 쓰이던 열상진원의 샘이 흘러들어 만들어진 향원정. 연꽃과 수초가 자라는 연못과 함께, 연못 중앙에 놓여진 향원정이 안정된 몸놀림으로 자리하고 있다. 오색단청의 정자와 조선시대 연못에 놓여진 나무다리 중에서 가장 긴 다리인 취향교가 한 폭의 그림 같다. 자경전은 겨울철에 낮시간에 거처하는 건물로 경복궁에 남아있는 유일한 침전 건물이다. 자경전의 난방을 위해 만들어진 굴뚝에는 해, 산, 학, 거북 등 십장생을 박아 넣어 무병장수를 기원했다. 자경전의 서쪽 꽃담은 조선시대의 높은 예술적 수준을 가늠케 한다. 집옥재는 고종의 서재로 사용되던 곳이며 그 부속 건물로 협길당과 팔우정이 있다. 육상궁을 비롯한 칠궁은 한국 정원의 일면을 볼 수 있는 장소로, 정비소생이 아닌 임금이 그의 모친을 모신 사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