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겨롭게 울려 퍼지는 베틀가의 가락소리, 물레를 돌리던 낭만적인 광경은 이제 정말 먼 옛날이야기가 됐습니다. 이제는 베틀가를 대신해서 울려오는 기계소리에 맞추어 부드러운 비단 폭을 접어야 하는 숨가쁜 시절이 된 것입니다. 시간을 다투며 만들어내는 섬유 제품 중에서도 특히 외국에 수출을 하기 위해서 만들어야 하는 제품은 날로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섬유 제품을 만드는 중소기업은 ?기는 일손에 즐거운 비명을 울리면서도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이러는 동안 크고 작은 중소기업은 착실하게 성장했고 또 수없이 늘어가기 시작해서 1966년엔 3천여개를 헤아리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 수많은 공장에다 원료를 공급해야 하는 공장은 새로 짓거나 그 시설규모를 확장해서 더 많은 원료를 생산, 공급하기에 바빴습니다. 이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 바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우리의 섬유공업을 육성하려는 정책에 그 근본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1차 5개년 계획 기간 중 섬유공업의 발전현황을 보면 1960년 1인당 섬유소비량은 2kg이 된 것이 66년엔 3.7kg으로 약 2배로 향상된 것만큼 그 공급을 뒷받침했고 수출은 60년에 2천만 달러이던 것이 66년엔 6천 9백만 달러로 증가 그 목표액을 달성했습니다. 수입대체에 있어선 100만 달러 정도를 확보하다가 목표연도인 66년엔 급증해서 4백만 달러의 수입대체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생산목표는 계획기간 중 기존년도보다 55% 증산했습니다. 공장수로 보면 60년엔 큰 공장이 39개, 66년엔 80개로써 41개나 늘어났습니다. 이와 같이 큰 공장이 늘어나면서 중소기업은 2800여개 육성, 발전을 보았습니다. 이와 같이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 66년을 기준연도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또 하나의 섬유공업 육성정책은 간단없이 추진되있습니다. 그 1차 연도를 맞는 67년에도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섬유공장이 섰습니다. 그 중에서 지금 보시는 부산의 도남모방만 하더라도 선조시설 47대, 생산능력은 하루에 9천 6백만 추의 큰 규모에다 1차 연도의 시험수출은 약 20만 달러로써 캐나다, 남미, 싱가포르, 일본 등지에서 인기를 끌고 있으며, 2차 연도인 68년의 수출목표 중에서 이미 60만 달러의 주문을 받고 있습니다. 이 공장과 같이 제2차 5개년 계획 1차 연도인 67년에 완공된 공장을 보면 부산직할시의 도남모방이 하루 평균 9600추 규모의 섬유를 생산하고 부산의 경남섬유가 5200추 규모, 경남 마산의 한일합성에서 하루 아크릴 섬유 7.5톤, 경남 울산의 동양 합섬에서 하루에 아크릴 섬유 6톤, 경기도 안양의 한일 나이롱이 확장돼, 하루 1.7톤의 나이롱 사를 증산해서 우리의 국민경제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풍요한 사회를 이룩하는 1971년, 그때가 되면 우리는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뒷받침으로 슬기로운 지혜를 살려가면서 여러 가지 예쁘고 좋은 옷을 더욱 많이 만들어내게 될 것이며, 이 옷을 만드는 중소기업은 우리의 의류생활을 화려하게 장식해 줄 것입니다. 1971년 그 때가 되면 섬유제품을 만드는 큰 공장과 작은 공장에선 71년도 우리나라 수출목표액 10억 달러 중에서 1/3에 해당하는 3억 달러 이상의 외화를 벌어들여 우리 국민경제에 이바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작은 공장에서 만든 예쁜 옷이 세계 각국의 유명한 백화점에 장식되고 한국제품의 옷을 입고서 보란 듯이 자랑하는 많은 외국 사람들을 지켜보며 마음껏 자랑스러운 기쁨을 누려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