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에서 동북쪽으로 약 1km 떨어진 양지바른 산기슭에 웅장한 원호센터가 자리 잡고 있다. 조국수호의 싸움터에서 몸 바친 순국용사의 유족 중에서도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 그리고 전쟁터에서 팔다리를 잃은 상이용사들이 여기 한데모여 살고 있다. 아이는 아동보육소에 수용되어 각 급 학교에 취학하거나 기술교육을 받고, 또 영농을 희망하는 아이들은 이곳 농사보도소에서 농사에 관한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상이군경들은 직업보도소에서 일자리를 얻어나가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지식을 얻는다. 또 기력이 없는 노인들은 이곳 양로소에서 편안히 여생을 보낸다. 아침 6시 반이면 800여명을 수용하고 있는 이곳 원호센터에 하루가 시작된다. 아침식사가 끝나면 아동보육소의 아이들은 각기 수원시내에 있는 학교에 나간다. 이 아이들은 성년이 될 때까지 완전한 하나의 사회인으로써 자활할 수 있도록 힘을 길러준다. 나이가 어려 학교에 못간 아이들은 아동보육소 자체에서 유치원 과정을 공부시킨다. 그리고 나이가 너무 많아 입학할 시기를 잃은 아이들은 이곳에서 국민학교 과정을 공부시킨다. 농사보도소에서의 오전 일과는 주로 학습이다. 오랜 인습에 젖어온 농촌의 생활양식과 영농방법을 개선하고 가축을 기르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방법을 공부한다. 각 지방 농촌출신 유자녀들 중에서 영농을 희망하여 이곳에 들어온 이들은 1년간의 농사교육을 받고 농촌으로 돌아가 모범농군이 되는 것이다. 직업보도소에서 교육을 받는 상이용사들도 오전 중의 일과는 학습이다. 일반산업과 경미산업과, 농업관리과, 전기과, 또는 프린트과 중에서 능력에 따라 하나를 선택하여 공부한다. 3개월 혹은 4개월간의 교육을 마치면 직장을 얻어나가게 되는 것이다. 이곳 양로소에서 보호받고 있는 노인들은 언제나 편안히 여생을 보낸다. 낚시를 즐기고 바둑 또는 장기를 즐긴다. 또 따뜻한 날이면 들과 산으로 유람도 떠난다. 어떤 할아버지는 취미로 닭을 치고, 또 어떤 할머니는 화초를 가꾼다. 입원실까지 마련된 의무실에서는 언제나 이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건강을 보살펴준다. 오후의 일과는 주로 실습이다. 농사보도소에 있는 소녀들은 이곳에 마련된 시범농가주택에서 농촌위생과 환경미화에 관한 상식을 익혀두고 또 실습장에서는 농가 주부들이 알아두어야 할 간단한 재봉을 배운다. 그리고 남자 아이들은 오전 중에 배운 과제에 대하여 실습장에서 이를 실습한다. 직업보도소에서도 오후에는 각 과별로 마련된 실습장에서 역시 실습을 한다. 그리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아늑히 마련된 자습실...조용히들 모여앉아 하고 싶은 학과를 자습한다. 또 어떤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놀며 어버이 생각은 까마득하게 된다. 그리고 일과를 마친 소년들은 서로 편을 만들어 배구 혹은 축구를 하며 즐겁게 논다. 낚시터의 노인들은 잔물결에 밀려오는 낚시찌를 바라보며 온갖 시름을 잊는다. 서녘하늘에 저녁노을이 옅게 깔리면 노인들은 낚시터에서 돌아온다. 밤이 찾아든다. 저녁이면 간혹 강당에 모여 영화구경으로 즐거운 한때를 갖는다. 그리고 아이들은 할아버지를 찾아간다. 할아버지와 손녀, 손자와 할아버지. 모두 여기에서 맺어진 인연들이다. 아이들은 할아버지의 품에 안겨 테레비를 즐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살 길이 없어 여러 사람을 괴롭혀오던 일들이 떠오른다. 모두 부끄럽기만 한 과거였다. 하지만 머지않아 새 일꾼이 된다. 사무원이 되고 전기기사가 되는 것이다. 밤이 이슥해졌다. 노인들은 잠이 없다. 양로소의 생활에는 조금도 불편이 없다. 하지만 밤이면 찾아오는 허전함. 이것만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 할아버지들은 모두 서러운 일이 많았다. 또 그 일들이 눈에 밟힌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유골이 되어 돌아오던 날의 일. 단 하나의 의지였던 며느리를 보내야만 했던 날의 일. 살 길이 없어 이리저리 걸식으로 연명해야 했던 때의 일. 모두 꿈만 같은 일들이다. 아이들은 잠든 지 오래다. 보모는 차낸 이불을 덮어준다. 아버지는 얼굴조차 모른다. 이젠 가버린 어머니의 얼굴마저 희미하다. 하지만...아빤 국군이었어. 철모 쓰고, 총을 메고. 엄마의 이 말만은 잊지 않았다. 아이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렸다. 밤이 깊었다. 다사로운 어머니인 양, 800여명의 생명을 안은 원호센터는 더 밝은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조용히 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