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뭐로 드시겠습니까. 월남국수가 어떻게 생긴거에요. 그거 한번 먹어봅시다. 어이, 이렇게 생긴거요. 입영하러 왔어요. 예. 어, 형씨도 그런 것 같은데. 음. 네, 잘 봤어요. 자, 우리 같은 동긴데 한자리로 뭉칩시다. 그거 좋습니다. 이쪽으로 와요. 자, 여기 앉아요. 아줌마, 여기 국수 그만두시고 소주 하나하고 안주 될 만한 걸로 뭐 하나 주세요. 네. 나 김윤식이라고 합니다. 박영준입니다. 최현철이라고 합니다. 예,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아 근데 다들 혼자 왔어요. 아니 그럼 혼자오지, 엄마 손잡고 옵니까. 에이. 따라 와줄 걸프렌드 하나 양성하지 못하고 뭐했냐 그겁니다. 보아하니 그쪽 처지도 우리보다 나은 것 같지 않은데. 어, 아 싹 떼놓고왔죠. 암, 그렇고말고 장부가 국방의 대임를 맡으러 떠났는데 어딜. 기왕이면 연무대 앞으로 가 있어야 내일 아침에도 편할 텐데 왜 여기로 왔어요. 거기까지 한 3km되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막차를 탔어요. 집에선 어저께 나왔는데. 기어오셨수. 군대 간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 친구를 좀 만나고 오느라고요. 아니 곧 입대할 사람이 뭣 하러 친구부대를 찾아다녀요. 그 친구의 모습에서 장차의 내 모습을 짐작해보려고요. 야 영준아. 어 그래. 드디어 너 입영하는구나. 그래, 선배님께 자문을 좀 구하러 왔다. 아무렴 그래야지. 입영한다니까 솔직히 겁이나나보지. 겁은 임마, 무슨. 실은 오다가 완전군장 맞추고 구보 나가는 걸 봤는데 이야. 내가 저걸 어떻게 하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 너 내가 완전군장 메고도 펄펄 나는 거 보면 까무러치겠다. 믿기 어려운데. 과거의 내가 아니라고. 오, 하긴 몸이 아주 좋아졌다. 이젠 정말 일당백이야. 마지못해 주린 배를 움켜쥐고 훈련에 동원되는 이북 애들하곤 질적으로 다르지. 나도 내년쯤에는 너처럼 뛸 수 있겠니. 니가 보기엔 어때. 너 그래도 교내 마라톤에서 완주를 했었잖아. 어, 기억해줘서 고맙다. 그땐 당당했지. 전교생의 환호 속에 그냥. 저주와 야유도 좀 섞이긴 했지만. 어, 뭐, 저주. 야, 8km를 4시간 20분만에 들어온 놈이 세상에 어딨냐. 너 때문에 집에도 못가고 기다린 생각을 하면 어휴 증말 야. 천찢을 때 포복으로 완주한 거 아니에요. 그것도 낮은 포복으로. 너무 그러지들 마쇼. 그 친구가 장담한 바에 의하면 나도 내년쯤에는 완전군장 메고도 8km쯤 휭 하니 뛸 거랍니다. 오, 대한민국 육군 일병인데 당연히 그래야죠. 근데 최형은 가늘가늘한게 어째 좀. 나참, 존심상해서. 그 소리 또 듣네.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아야 한다던데. 어, 나도 대한민국의 남자야. 괜히 바지만 걸친 게 아니라고. 맨날 도서관 안에서만 공맴돌던 남자였기에 하는 말이야. 유사시에 외국으로 도망가는 몰염치한 인간은 아니니까 안심해. 어, 왜. 못미더워. 갑자기 막 든든해지고 그러는 거 있지. 한수억의 애인으로써 손색이 없지. 치, 애인 사칭이 우리나라 3대 중죄의 하나란 말 잊었어. 얼마 전에 신문에 난거 봤지. 일본 젊은이들의 국가관을 조사한 거 말이야. 유사시엔 조국을 버리고 도망가겠다는 대답이 의외로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어. 일본도 이제 올 때까지 다 왔나 싶더군. 우린 이렇게 조국을 지키겠다고 기꺼이 집을 나서는 젊은이들이 있으니 얼마나 가슴 뿌듯한지 몰라. 지금 수억이 앞에도 의젓하게 한명 있잖아. 현철인 정말 멋진 군인 아저씨가 될거야. 어, 두고봐. 군복 입은 씩씩한 모습을 빨리 보고 싶어. 그 대신 수억이도 미팅 같은 거 절대 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야 돼. 응, 미팅 같은 거 하지 않고 데이트만 할게. 어, 뭐야. 나중에 면회 가서 현철이하고 말야. 면회 가도 되지. 아, 그걸 말이라고 해. 저, 최형. 우리 잘 좀 사귀어봅시다. 아, 나하고도요. 수억이한테 예쁜 여자 친구들이 많다는 얘기까진 내 안하려고 했는데. 어어, 오늘 술값은 내가 냈다. 말리지마. 결심이 그러하시다면 말릴 수 없지. 김형은 여자 친구들의 눈물어린 전송 꽤나 받고 왔을 것 같은데. 에휴, 그랬으면 오죽 좋겠소. 우리 아버지는 월남전에 참전하셨다가 전투 중에 큰 부상을 입고 명예롭게 퇴역하신 예비역 대위십니다. 자, 여기에 좀 앉자. 네, 아버지. 내가 월남으로 떠날 때, 니 나이 겨우 5살이었는데. 벌써 이렇게. 윤식아. 네. 아버지가 부상을 입고 귀국한 모습을 보고 그때 니가 뭐라고 했었는지 혹시 기억하겠니. 니가 이다음에 군인이 되어서 그놈들 다 혼내줄거야 하고 소리를 쳤었지. 네. 이제 바로 그 나이가 됐구나. 넌 훌륭한 군인이 될 거라고 믿는다. 아버지 못지않은 훌륭한 군인이 되겠습니다. 난 니가 자랑스럽다. 저두요. 아버지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몰라요. 아버지께 어서 훌륭한 군인이 된 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난 입소하면 뭐든지 김형만 따라할거요. 조상이 원숭이 일족이었다는 것을 증거해 보여주시는구만. 학창시절 8km를 4시간 20분 만에 완주한 의지의 한국인과 최형같은 장차 멋쟁이 군인을 피하에 거느리게 돼서 황공무지로소이다. 소문나겠네. 어유, 근데 지금 몇 신가. 이제 문 닫을 시간이 훨씬 지났을 텐데. 아참, 그렇군. 죄송합니다. 아녜요. 덕분에 세분말씀 재미있게 잘 들었습니다. 근데 저건 어느 나라 국기에요. 이제는 사라져버린 나라지요. 월남. 아줌마가 월남분이시구나. 그래요. 어 근데 한국말을 참 잘하시네요. 그 대신 조국의 말은 영원히 잊어버렸습니다. 그래도 장하세요. 조국의 국기를 저렇게 잊지 않고 간수하고 계시니요. 이제와서야 비로소 저 국기가 정말로 귀한줄을 안답니다. 배모로 날이 새고 날이 지는 정말로 어리석은 국민들이었습니다. 지켜야 할게 무엇인가를 우린 정말 몰랐었어요. 그렇지만 이젠 지키고 싶어도 이미 지킬 것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월남에선 어떻게 나오셨어요. 저도 온 세계가 다 귀찮아했던 보트피플의 한사람입니다. 모든 배가 우릴 다 피해가고 이제는 망망대해에서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한국배가 우리를 구해줬어요. 그때 많은 사람들이 바다 위에서 죽었죠. 눈앞에 놓인 큰 도둑을 놔두고 집안싸움이나 벌인 국민들의 최후가 그토록 비참한 줄 그 누구도 몰랐습니다. 안녕히들 가세요. 안녕히 계세요. 수고하세요. 우리에게도 저런 젊은이들이 있었더라면 우린 아직도 월남의 국민으로써 월남의 하늘아래서 살 수가 있었을 것을. 우리 어디가서 눈좀 붙여야죠. 난 아무래도 잠이 안올 것 같은데. 나도. 나도 마찬가지요. 막중한 국방의 의무를 생각하니 잠을 설칠 것 같은데요. 그럼 우리 훈련소 앞까지 힘차게 뛰어갑시다. 좋지. 자, 대한민국 육군 전력이 내일자로 대폭 강화되는구나. 돌격명령은 김형이 내려야겠어. 목표는 훈련소. 전부, 돌격앞으로. 따뜻한 동포애로 수재민을 도웁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