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1일 이 땅에는 청천벽력과 같은 대한독립 만세소리가 천지를 진동시키고 33인의 민족대표들은 한국의 독립을 전세계에 선언했던 것 입니다. 빼앗겼던 조국을 다시 찾으려고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짖는 온 겨례의 줄기와 시위는 삽시간에 삼천리 강산을 독립만세의 도가니로 화 했습니다. 그러나 이 거석적인 분위기에 당황한 제국주의 일본은 마침내 총칼로써 우리민족의 의사를 억압하려 했으니 포악무도한 놈들의 만행과 무력탄압으로 말미암아 삼만여명의 애국동포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갔습니다. 놈들은 우리 겨례의 목을 매고 혀를 끊고 눈을 파냈으며 인부의 배를 갈랐습니다. 그러나 오로지 나라와 겨례를 위하여 서슴치 않고 왜적의 사슬에 몸을 감긴 우국지사들은 최후의 일각까지, 최후의 일인까지 조국광복을 위해 싸울 것을 법정에서까지 외쳤으며 그 누구도, 그 어떤 고문과 처형도 민족의 결의를 꺽지는 못했던 것 입니다. 이리하여 삼일정신의 씨앗은 온 겨례의 마음속 깊이 뿌려져 끊임없는 독립운동으로 싹터올랐으며 망명했던 우국지사들은 중국상해에다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조국광복을 위하여 끊임없는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그리하여 곳곳에서 결사적인 항일투쟁이 계속 됐는데 하얼빈 역에서 이등박문을 쓰러뜨린 안중근 의사, 채 피어나지도 못한 어린 몸을 호국의 불길 속에 불살라 버린 순국의 처녀 유관순 소녀, 한국 침략의 아성이였던 식산은행과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던진 나석주 열사, 비록 실패는 했으나 일본 총독을 암살하려 했던 송학선 의사, 그리고 일본 천황에 폭탄을 던져 온 세계를 놀라게 한 이봉창 의사, 그리고 중국 상해에서 일본군국주의 수뇌부를 폭사시킨 윤봉길 의사 등 수많은 우국지사들의 의거는 그칠 줄 모르게 계속되어 갔습니다. 조국을 찾으려는 삼일정신은 겨례의 가슴에서 가슴으로 파급되어 마침내 분노의 불길은 다시 젊은 학생들의 가슴에서 터져 나왔던 것입니다. 광주에서 발달된 이날의 젊은 학도들의 항일투쟁은 삽시간에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갔으며 죽음을 각오한 학도들의 항거는 불멸의 삼일정신을 다시한번 보여준 것이 였습니다. 1945년 8월15일 30여년간의 기나긴 악몽은 사라지고 이 땅에는 온 겨례가 그렇게도 갈망하던 조국광복의 새날은 밝았습니다. 이제 다시 대한 민족의 힘으로 대한 사람의 손으로 다시 찾은 조국의 재건을 위하여 해외에 망명했던 애국 동포들이 감격의 눈물을 머금고 돌아왔습니다. 그리하여 43년전에 이 땅을 진동시킨 대한독립 만세 소리는 해방을 맞이한 조국의 천지를 다시한번 진동시키고 온 겨례는 새로운 정부의 수립을 경축하며 대한민국 만세를 목이 매이도록 외치고 또 외쳤던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