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숨결과 푸념, 넋두리 속에 서려있는 아리랑. 그것은 이 땅의 소리이자 위치이며 삶의 진실이다. 역사와 겨레의 소리로 이어져온 아리랑은 한국인이 사는 곳이면 어디든 살아 숨 쉬며 끊임없이 사랑을 받아왔다. 때로는 기쁨 속에서, 때로는 슬픔 속에서 질곡의 역사와 함께해온 아리랑은 한국인의 한국인다운 마음의 정표이기도 하다. 아리랑은 가장 널리 알려지고, 가장 사랑받는 한국인의 민요다. 아리랑의 노랫말은 소리꾼 자신이 제 목소리로 제 사연을 혼잣말로 부르는 매력이 있다. 소양강 줄기를 따라 강원도 인제에서 마포나루까지 뗏목을 실어 나르던 뱃사공의 가슴속에도 아리랑의 선율은 살아있다. 거친 물살에 몸을 던진 채, 그 물살보다 더 진한 세월을 살아온 사공의 삶은 아리랑 바로 그 자체이다. 아리랑의 가락과 노랫말은 각 지방에 따라 수백 종에 이르지만 그 가운데 정산, 진도, 밀양아리랑이 대표적이다. 심심산골 정선지방의 아리랑은 지금부터 약 600년 적인 고려 말, 낙향한 선비들이 자신들의 애달픈 심정을 노래한 것에서 기원된다. 정선읍내를 둘러싼 물줄기를 따라가면 정선아리랑의 발상지로 불리우는 아우라지의 나루터가 있다. 이 냇가를 사이에 두고 마을의 한 처녀와 내 건너편 총각은 매일 서로 오가며 만나다시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비가 많이 와 물이 고이자 처녀는 애가 몹시 타 건너마을 임을 그리며 이 노래를 불렀다. 물살을 안고 빙글빙글 도는 물레방아를 보며 여인은 나이어린 낭군을 생각하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가사를 읊는다. 오랜 역사성을 지닌 정선아리랑은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채 산간주민들의 생활을 그대로 반영한 흙의 노래로 불리워지고 있다. 수려한 산아를 띤 남극의 섬 진도의 아리랑은 느낌이 구성지고 흥겨운 육자배기 가락이다. 일 년에 한차례 바다가 갈라져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면 섬 전체가 축제로 떠들썩한다. 김해의 싱싱한 미역, 김들을 끌어올리는 어부들의 손놀림이 바빠지고, 진도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예의 향취에 이 고장 사람들은 특유의 멋과 인장과 풍류를 실어 부른다. 진도 아리랑은 감칠맛 나게 넘어가는 소리, 즉 끈끈하고 나긋나긋하게 불러야 신명이 난다. 그 소리와 몸짓에서 진도사람만이 가진 끈끈한 그 무엇이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사한 봄빛과도 같이 경쾌한 밀양아리랑. 동서를 가로지르며 밀양강을 굽어보는 영남루에서는 전설의 여인 아랑 아가씨 선발이 한창이다. 죽음으로 정조를 지킨 아랑 아가씨의 넋을 기리는 밀양 아랑제는 푸르른 신록과 더불어 축제의 여운을 더해준다. 밀양아리랑은 흥겨운 놀이판의 응원가로도 불려진다. 밀양의 풍류객들은 게줄당기기라는 민속놀이에서 작대기로 장단을 맞춰가며 편을 갈라 아리랑을 부른다. 깊게 후렴을 지닌 당다쿵 후렴은 밀양만이 가지고 있는 뚝심세고 마디 굵은 장단소리이다. 아리랑은 때로 힘든 일을 하면서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는 고리가 되기도 한다. 향토적인 맛을 풍기는 이 노래로 힘든 일을 신바람 나는 노동으로 바꿔주는 노동요로 불려지기도 한다. 이 일자체가 권태롭고 지루할 때 누군가 입에서 터져 나오는 아리랑 가락은 이내 입에서 입으로 전달돼 일의 능률을 더해준다. 농사는 천하의 근본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전통적인 농경국가에서 노래 중의 노래는 역시 농사를 지으며 부르는 일 노래로 아리랑은 그 대표적인 노동요다. 충청도 중훈지방에서 불리는 노동요 아라사는 대표적 소리로 사람들을 하나로 엮어주는 공동체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아리랑은 언제부터 불리어진 노래일까. 아리랑은 무엇을 뜻하는 말이며, 가사에 나오는 아리랑고개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나 아리랑에 대한 해설은 구구할 뿐, 구전민요인 아리랑을 찾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아리랑의 고향을 찾아 아리랑고개가 희망의 세상으로 넘어가는 고개이길 바라며 아리랑을 부른다. 오늘날 가장 꽃피워 내린 서울아리랑은 1920년대 당대의 무성영화 감독 나운규가 연출한 영화 아리랑이 단성사 극장에 상영되면서부터였다. 근대영화사의 명작이 된 이 작품의 주제곡은 모든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또 울렸다. 그럼 여기서 당시의 명화 몇 장면을 되살려본다. 정신병자인 영진은 서울에 유학갔다 돌아온 현구를 알아보지도 못한 채 계속 환상의 세계에 빠져있다. 어느 날 누이동생 영희는 악질지주 윤기호에게 겁탈당할 위기에 처한다. 이때 영진의 등장은 일제치하였던 민족의 울분을 통쾌하게 씻어주고 있다. 영화의 라스트 신이 흐르는 주제가 아리랑은 많은 사람에게 나라 잃은 서러움과 뜨거운 감동을 안겨주었다. 나운규의 영화에 나온 아리랑 가락이 지금까지도 많은 한국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아리랑만이 지닌 특유의 사회성과 역사성 때문이다. 한 시대에 (안 들림) 삶과 아픔, 함께 나눈 소망 등 그 온갖 것을 노래로 승화시켜 민족의 소리, 역사의 노래로서 소임을 다한 것이다. 아리랑은 한국인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애창되고 있다. 이국만리 타향 땅에서 꿈에도 그리는 고국산천을 생각하며, 둘이 모이건 셋이 모이건 부르는 공통된 노래다. 서로가 서로를 이어주는 한국 사람들의 조국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의 노래이다. 역사의 뒤안길에 헤어져살다 수십 년 만에 어렵사리 만난 이산가족. 서로가 몰라보게 변해버린 모습에 목이 메여 할 말을 잃는다. 현대사의 흐름 한 가운데를 헤집고 6.25 전쟁의 아픔을 처절하게 노래한 아리랑. 분단된 조국의 아픔과 언젠가는 이룩해야 할 통일을 아리랑이 노래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지 모른다. 그것은 어쩌면 민족의 역사적 소임이기도 하다. 통일의 소리, 통일의 노래로서 전국 방방곡곡 아니 한국인이 사는 모든 땅에 아리랑이 울려 퍼지길 바라고 갈망하는 것이다. 산업화된 사회 속에서도 아리랑은 꾸준히 그 맥을 지켜와 아리랑 축제에 관객들을 끌어 모으기도 한다. 축제에 젊은이들은 아리랑 가락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며 길고 긴 자신들의 지난 역사를 떠올리기도 한다. 무대에서는 창극 아리랑이 공연된다. 정든 고향땅을 등지고 이국만리 타국에서 유랑생활을 해야만 했던 이산가족의 망향을 그린 작품이다. 탄승하면서도 구성지고, 또 슬픈가 하면 신바람 나는 가락을 지닌 아리랑은 마치 서양의 재즈음악처럼 즉흥성도 지니고 있어,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어 고쳐 부르는 장점도 있다. 작품의 피날레는 2세들이 현대의 고국에 들어와서 조국통일을 염원하며 부르는 통일 아리랑 합창으로 객석을 고조시킨다. 필경 아리랑은 한국인의 넘어서려는 의지, 넘어서 이기려는 마음가짐을 담고 있다. 그래서 아리랑은 극복의 노래, 성취의 소리가 된다. 역사의 서사시로서 아리랑은 민족혼의 불사조라 부르는데 영원한 불멸의 빛, 불기둥으로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