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7월 7일, 조국근대화를 상징하는 약진의 대동맥 서울 부산 간 고속도로의 전 노선이 개통됐다. 총 연장 428km. 사이가 넓은 4차선의 이 고속도로는 건국 이래 우리가 이룩한 건설사업 중 가장 거대하고 보람찬 사업으로 1968년 2월에 착공해서 총 공사비 429억 7300만원을 들여 2년 5개월 만에 최종 난공사구간인 대전 대구 간이 완공됨으로서 전 구간이 준공된 것이다. 우리에게 많은 경제적인 효과를 가져다 줄 이 고속도로는 순전히 우리의 기술과 우리의 재력으로 가장 짧은 기간에 계획공정대로 이 사업을 완숙케 됐다. 이는 오로지 이 세대의 역군들이 영광된 민족중흥의 역사적 과업을 수행해야겠다는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열과 성을 다 바쳐온 소산이다. 이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우리나라의 2대 경제권역인 서울지방과 한국사를 중심으로 한 낙동강 유역이 하루의 생활권으로 줄어들게 됐다. 이 민족적인 대사업의 완공을 위한 기념식이 이날 낮 12시부터 대구공설운동장에서 박 대통령 임석 하에 성대히 거행됐다. 이날 고속도로 건설에 공이 큰 119명에게 훈장, 포장 및 대통령표창장이 수여돼 그들의 피땀 어린 노고를 치하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식전에서 고속도로 건설의 의의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박정희 : ...내가 우리 국민여러분들에게 한 얘기를 다시 강조를 합니다. 이 경부고속도로야말로 우리의 조국 근대화의 상징적인 도로이며, 남북 후에 직결되는 도로란 말을 기억을 합니다. 나는 이 고속도로를 만들 때, 경제적인 면과 물질적인 면보다도 더 주요한 목적을 하나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뭐냐 이 말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과연 얼마만한 민족적인 저력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 국민이 얼마만한 민족으로서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가 얼마만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 민족의 능력을 이 고속도 도로를 통해서 한번 테스트해보자. 하는 것이 주요한 목적이었습니다.” 이에 1968년 1월, 서울 부산 간 고속도로 건설공사 사무소가 설치돼, 서울과 부산을 연결한 고속도로 공사가 그해 2월 1일에 역사적인 착공을 보았다. 이 거대한 역사 창조에 박 대통령은 그 기본계획을 짤 때부터 몸소 앞장섰으며 노선 선정 작업의만도 20여 차례나 현지를 답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