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올림픽대회 이렇게, 제 3편 서울올림픽대회. 서울은 축제의 분위기에 젖어있다. 7년 5개월의 기다림 끝에 손님을 맞을 모든 준비가 된 것이다. 1988년 8월 20일, 성화 봉송 운영단이 발단식을 갖고 현장 전개됐다. 성화 봉송과 관련된 김옥진 사무총장이 기자회견이 있었다. “김옥진 : 서울 올림픽대회 성화는 88년 8월 23일 히랍의 올림피아에서 점화되어서 육로와 공로와 그리고 해로를 통해서 22일만인 9월 17일 12시 30분, 올림픽 주경기장에 도착할 걸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8월 23일 오전 11시, 그리스의 고대도시 올림피아의 헤라신전에서 채화식이 거행됐다. 카테리나 디다스칼루 수석 여사제가 여기 올림피아의 신성한 요람에서 변하지도 않고 더럽혀지지도 않고 영원히 사라지지도 않을 불이 태어난다는 신의 불을 위한 기도를 드린다. 성화는 최초주자인 그리스 육상선수 나타시스 칼루아니스에게 올리브 가지와 함께 인도됐고 서울을 향한 첫발을 힘차게 내딛었다. 육로 352km, 해로 22km의 그리스 국내봉송이 2박 3일간에 걸쳐 진행됐다. 8월 25일, 성화는 한국의 성화 인수단에 인도됐고 태국을 거쳐 27일 오전 11시,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제주에서는 성화맞이 경축행사가 대대적으로 펼쳐졌다. 제주항을 기점으로 1595구간, 총 4167km의 국내 봉송로를 주자 1467명, 거주자 2782명, 호위자 16,640명이 참여한 가운데 21박 22일의 성화 봉송이 가는 곳마다 축제 속에 이루어졌다. 8월 2일, 영접단이 발단되어 공항에 영접본부가 문을 열었다. 세계의 마음은 모두가 한국을 향하고 있었다. 사마란치 IOC 위원장이 공로 입국했으며 본부호텔은 신라호텔에 IOC 본부가 설치됐다. 올림픽 대비, 대회관련 행사 참가자, 대회 참관자, 자원봉사 외국인 등 서울올림픽에 관련된 입국자가 쇄도했고, 공항 영접본부는 신분에 따라 정해진 절차에 의해 영접하고 편의를 제공했다. 올림픽 승마경기에 출전할 마필 221필을 비롯해서 사격 기자재와 요트 등 특수화물이 운송되었고 소련의 만 톤급 미하일 솔로코프 호가 인천항에 입항했다. 공항에서 입국절차를 마친 선수단과 보도진은 철저한 안전관리 속에 입촌 절차를 밟고 여장을 풀었다. 선수단은 셔틀버스로 선수촌 등록 센터에서 등록절차를 밟고 입촌했으며, 보도진은 인쇄매체 보도진과 방송 보도진으로 나뉘어 등록절차를 밟았다. 신문, 통신, 잡지 등 인쇄매체 보도진은 기자촌에 입촌했고 방송 보도진은 IBC에서 등록절차를 밟은 후, 기자촌이나 인근 호텔에 숙소를 배정받아 입촌했다. 이밖에 심판인단을 비롯 올림픽 패밀리는 별도의 수속을 거쳐 패밀리타운에 입촌했다. 조직위원회는 대회 참가자에게 신분, 임무, 용도에 따라 3종류의 카드를 발급했다. 먼저 대회 공식 참가자에 한하여 무사증입국이 허용되는 ID카드, 올림픽 패밀리 및 운영요원에 대해 신분증 겸 출입증으로 발급되는 등록카드, 일시적 출입자에게 발급하는 임시 출입증으로 구분했다. 운영요원들에게는 철저한 신원조회가 시행된 후 등록카드가 발급됐다. 운영요원에 대한 등록은 각 경기본부, 행사본부와 기능부서에서 조직이 인력국에 지정요청을, 인력국이 신원조회 후 운영본부에 지정명부를 통보, 운영부서에서는 등록 운영단에 등록카드 발급을 신청, 등록 운영단이 운영본부에 대상자 별 일정통보를 함으로써 절차가 정해졌다. 운영요원 등록 센터는 2월 7일부터 등록카드를 발급했고, 발급 인원수는 82,387명이었다. 전체적으로 등록카드는 패밀리, 준 패밀리, 운영요원으로 구분, 발급됐다. 카테고리 별 대상자 및 등록증 발급인원은 이 표와 같다. 이렇게 해서 등록증을 발급받은 총 인원은 13만 3132명으로 집계됐다. 서울올림픽은 한강축제에서 비롯됐다. 한강축제의 개막제가 9월 10일, 여의도 시민공원에서 ‘세계의 미래, 모두의 한강에서’를 주제로 국내 공연단체와 프랑스 예술단이 참가한 가운데 거행됐다. 한편 거리에서는 꽃차 퍼레이드와 상감마마 행차, 대학로 축제, 가로예술제 등이 같은 기간 서울의 중심가로에서 공연되어 올림픽의 축제분위기를 한껏 돋우었다. 개회식을 하루 앞두고 성화가 시청 앞에 도착했다. 그리스에서 채화된 지 20여 일만에 서울에 도착한 성화는 시민들의 열광적인 환영 속에 활활 타올랐다. 개막일인 9월 17일, 개막식 행사인 강상제를 펼쳤다. 오전 10시 30분, 1846명이 이끄는 457척의 해상단은 영동대교와 잠실 선착장 사이 수역에서 선박 퍼레이드와 선상 공연을 가진 후, 경기장 앞 (안 들림)에서 모였다. 1988년 9월 17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장엄하고 화려한 제 24회 서울올림픽 대회의 막이 올랐다. 개회식은 160개국, 만 3천여 명의 선수단, 10만의 관중, 50억 세계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됐다. 내외 귀빈과 10만 관중의 박수 속에 노태우 대통령 내외가 입장하면서 공식 행사가 시작됐다. 11시 7분, 선수단 입장이 시작됐다. 각국의 민요에 맞춰 그리스 선수단이 입장하고 가나다순에 의하여 갖가지 차림의 선수단이 입장한다. 장내 아나운서의 선수단 입장에 맞춰 관중석에서 (안 들림) 울리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관중들은 박수와 함성과 휘파람을 불며 선수들을 환영했고, 입장선수들은 관중석을 향해 답례했다. 한국 선수단은 마지막으로 입장했다. 선수단의 입장이 한 시간이 걸렸다. 분단의 서울에서 동서가 함께 만난 기적의 결실을 자축한다는 박세직 조직위원장의 개회사와 올림픽 정신을 강조하는 사마란치 위원장의 환영사에 이어 노태우 대통령의 개회선언이 있었다. “노태우 : 나는 제 24회 근대올림픽대회를 경축하면서 서울올림픽대회를 개최하는 것을 선언합니다.” 12시 21분, 성화주자가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입장했다. 성화가 리프트에 실려 상승, 22미터 높이의 성화대에서 역사적인 불꽃을 내뿜었다. 식후 공연행사는 ‘좋은 날’, ‘혼돈’, ‘벽을 넘어서’, ‘정적’, ‘새싹’, ‘화합’, ‘한마당’의 7개 작품이 등장했다. 이 작품들은 올림픽 개회식이 전 세계에 화합과 전진의 계기가 되며, 한국문화의 독창성을 강조하면서 세계인의 공감대 확대, 한국 민족문화 창단의 역사적 전개로 발전시킨다는데 초점을 두었다. 이 공연행사는 장엄하고 흥겨운 의식을 거행해서 국제친선과 인류평화의 이념을 표출하고 주체성 있는 내용으로 구성하되, 전 세계인과 함께할 수 있는 색과 음악의 조화를 이루어나갔다. 여기에는 총 13,625명의 학생, 전문단체, 군인, 외국인이 출연했다. 34개 경기장에서 진행된 경기 프로그램은 역대 어느 대회에서도 찾아볼 수 없던 질서 속에 차질 없이 진행됐다. 23개 정식종목, 237개의 세부종목, 1030개 경기에서 정해진 시간에 시작된 경기가 천 건이었고, 경기지연이 30건이었는데 1분 지연 15건, 30분 이상 지연된 것은 1건에 불과했다. 서울올림픽은 신기록 양산에도 신기록을 세웠다. 12년 만에 만난 동서 양 진영 맞수의 대결은 필사적이었으며, 그래서 기록이 더욱 좋아졌다. 전 경기를 통해서 세계 신기록 33개, 세계 타이기록 5개, 올림픽 신기록 227개, 올림픽 타이기록 42개 등 각종 신기록 307개를 기록하며 올림픽 영웅들을 탄생시켰다. 세계 신기록은 수영과 역도에서 각 11개씩과 육상 4개, 사격 3개, 사이클과 양궁에서 각각 2개씩이 나왔다. 역도 60kg급의 터키의 나임 슐레이마놀루는 6번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고, 동독의 여자 수영선수 크리스틴 오토는 6관왕의 위업을 달성, 서울올림픽의 영웅으로 탄생했다. 미국 남자수영의 매트 비욘디가 5관왕, 소련의 체조선수 블라디미르 아르테모프가 4관왕이었으며, 여자 육상에서 미국의 그리피스 조이너스 등 4명이 3관왕을 차지, 신기록을 세웠다. 특히 한국의 여자양궁 김수녕의 2관왕은 한국 체육사상 최초의 일이다. 요트 경기는 올림픽 경기종목 가운데 바다에서 열리는 유일한 종목으로써 60개국 685명의 선수가 참가한 가운데 부산 수영만에서 분리 개최됐다. 부산에는 조직의 부산 사무소가 설치됐고 선수촌 분촌이 운영됐다. 개회식도 별도로 열려, 항구도시 부산은 축제 분위기로 가득했다. 각국 선수들은 9월 20일부터 27일까지 설비가 우수한 경기장에서 힘껏 기량을 발휘했다. 서울올림픽 시상식은 시상식 운영센터가 조직되어 경기전용관사 하나에 편입, 독자적으로 업무를 수행했다. 시상은 12개팀 358명의 이동시상팀이 각 결승경기장에서 팀장, 선도요원, 입?시상안내요원, 메달요원, 국기게양요원, 팡파르요원으로 나누어 시상식을 거행했는데 시상횟수가 270회였다. 대회기간 중 옥의 티라 할 벤 존슨의 약물복용판정으로 인한 금메달 박탈, 복싱경기장에서 심판판정에 대한 불복과 그에 따른 소란행위 등이 있었고, 요트 경기장에서 취재 헬리콥터가 추락하는 불행한 일도 있었다. 이번 대회의 국가별 메달획득 순위를 보면 소련 1위, 동독 2위, 미국 3위, 한국 4위로서 한국은 당당히 스포츠 열강으로 부상했으며 올림픽 개최국으로써의 역량을 전 세계에 과시했다. 한국이 차지한 메달 수는 10개 경기종목에서 금 12, 은 10, 동 11로 올림픽대회 참가사상 최대의 성과를 올렸다. 10월 2일 오후 7시부터 90분간에 걸쳐 공식행사와 공연행사가 펼쳐진 폐회식은 스포츠를 통하여 맺어진 우정을 재확인하고 헤어짐의 아쉬움과 다시 만남을 기약하는 한국의 따듯한 마음을 예술성 높게 표출했다. 선수들은 만나는 기쁨, 헤어지는 아쉬움, 사랑과 즐거움과 보람으로 점철된 서울의 위대한 파란 하늘을 기약하면서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장내로 들어섰다. 폐회식의 공연행사는 세계인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문화와 인종의 벽, 분단의 벽, 경제적 격차의 벽. 그 모든 벽을 넘어 오직 이 순간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전 인류의 염원이 여기에 모아졌던 것이다. 박세직 조직위원장의 폐회사가 낭독됐고, 사마란치 위원장의 폐회선언으로 이어졌다. 김영래 서울시장이 사마란치 위원장에게 올림픽기를 반납했고 사마란치 위원장은 파스칼 마라갈 바르셀로나 시장에게 올림픽기를 인도했다. 서울 시립무용단과 바르셀로나 무용단의 무용이 공연되는 가운데 올림픽기가 내려지고 16일간 서울올림픽대회를 비춰주던 하늘의 불이 서서히 꺼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이별을 아쉬워하며 한창인데 호돌이와 코비의 풍선이 서서히 떠올라 어깨동무를 하며 밤하늘로 사라진다. 올림픽 주경기장의 상공에는 무수한 불꽃이 서울의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제 24회 올림픽대회는 이제 완전히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