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낙동강 방어선의 최후의 보루 포항 적의 8월 총공세가 가해져 단숨에 부산까지 밀어붙일 기세였다. 바로 이때 영남지방에 모인 한국의 젊은 학도들이 분연히 궐기해서 학도병으로 자원입대했다. 포항지구의 공방전은 자그마치 한 달이 넘도록 계속되는 치열한 전투였다. 못다 핀 꽃송이처럼 이곳에서 죽어간 수많은 학생들 그들의 피는 산을 적시고 강을 물들였다. 조국의 엄숙한 이름으로 그대들에게 책을 던지고 총을 들게 했노라 의당 있어야할 군번도 주지 못한 채 젊은 그대들을 전선으로 보내놓고 수많은 어버이들은 그렇게 통곡했었노라 결국 북괴군은 형산강을 넘지 못하고 숱한 패잔병을 남겨놓은 채 북방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여기는 대구 북쪽의 낙동강 전선 9월 초순 북괴군의 대 공세로 한때 전선은 대구 근교 12km까지 압축돼 유엔군이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그러나 한미 양군은 이곳에서 북괴군과 배수의 진을 치고 최후의 결전을 벌여 전세를 역전시켰다. 적진지가 무너지고 투항하는 패잔병들이 늘어났다. 북괴군 포로들 중에는 국민학생 또래의 어린 병사들도 많았다. 사상을 위해서 또 누구를 위해서 싸웠다기보다 어쩔 수 없이 전선으로 내몰린 처지여서 이제는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으로 식욕을 되살리는 표정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