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남침이 빚은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생생하게 확인케 한 이산가족 찾기 운동. 우리 민족은 결코 서로 헤어져 살 수 없고 또 다른 전쟁을 치러서도 안 된다는 온 민족의 부르짖음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성도 이름도 모습도 모른 체 30여 년을 떨어져 살던 혈육의 만남. (여기는 철길에 놀다가 돌멩이로 칼 같은 걸로 찍혀서 흉이 진 거예요. 어릴 적에 생긴 흉터입니까? 네 돌멩이로 맞아서 그런 거예요. 아버님과 아드님이 만나셨어요. 네, 손녀분이 지금 할아버지를 안고 할아버지 할아버지 하세요. 지금), (그전에 여기 다쳐서 흠집이 있었는데 아빠 이름이 뭔데? 박현택이요. 동생이름은? 박성길이요. 아유~ 맞아!) 자유가 얼마나 소중하고 그리운 것인가는 공산치하에 있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실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자유를 찾아 죽음까지도 각오한 탈출의 행렬,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방황한 수많은 고아들, 30여 년이 지난 오늘 이제 어른이 되어 꿈에서도 그리던 부모 찾기에 나섰습니다. 1.4 후퇴 당시 평양 대동강에서 헤어졌던 부녀의 상봉입니다. (6.25때 피난 나와서 피난 가운데 애를 9살 때 잃어버렸지. 지금 42살 때 만납니다. 나는 죽은 줄 알고 말이죠. 그냥 포기했는데 텔레비전에 나오잖아요. 그래 그때 모습하고 지금 모습하고? 모르겠어요. 아까 보니까 말이지 저 엄마 좀 닮은 것 같아요. 모습이. 그리고 지금 모습 보면 모르겠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이런 일은 다시는 없어야겠어요. 이거 얼마나 우리 민족의 비극입니까?) 6.25 당시 국군 상사의 부인이었던 전쟁미망인이 피난길에서 잃어버렸던 아들을 찾았습니다. (오 중사가 있었는데 그 오 중사가 가져 왔는기라예, 10월 달에 돌아가셨어... 온 동네를 찾아다녀도 못 찾아가지고...), (아버지 고향이 지금 두 가지 얘기가 있는데요, 아버님이 남기신 수첩입니다. 유일한 유품인데요. 사진도 갖고 나오셨어요. 사진도 한 번 봐보세요. 네 저기 황해도 옹진군 둔위면 강명리가 있고요 여기 뒤에 보면 또 용연면 용연리도 나와 있습니다. 네... 맞아요, 맞아.) 아버지가 남긴 유품과 사진을 가지고 큰아버지를 찾은 조카, 조카는 찾았어도 그렇게도 찾아 헤매던 동생은 만날 길이 없습니다. KBS가 벌인 이산가족 찾기 운동은 전파를 타고 중공에 있는 가족도 연결시켰습니다. (올해 70세인데 우리와 함께 참여해서 하시는 말씀이 나 죽기 전에 동생들이 모두 살아 있다는 말만 들으면 눈을 감고 죽을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여의도에서 미국으로 온 세계로 퍼져 나간 이산가족 찾기 운동은 유엔도 호응하게 했습니다. 케야로 유엔사무총장은 남북한 이산가족들의 재결합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하고 구체적인 방안과 실천방법을 곧 강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나도 만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차분하게 이산가족 명부를 통해 혈육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만남의 광장도 새로 마련됐습니다. 날이 갈수록 재회의 기쁨을 누리는 가족은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이산가족들의 끝없는 절규도 외면만 하는 북한 공산당들에게 우리가 민족적 양심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북한 괴뢰를 월등하게 능가하는 국력의 신장만이 평화통일의 길임을 우리 온 국민은 한 번 더 마음속 깊이 되새겨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