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의 상처가 재회의 감격으로 끝없이 확산되고 있는 이산가족 찾기 운동, 1남1녀의 어엿한 어머니가 된 지금까지도 부모·형제를 그리며 애태우던 그 쓰라렸던 고아원 시절의 노래는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매일같이 얼굴까지 대하면서 중매까지 서준 이웃사촌이 그렇게도 찾고자 했던 혈육일 줄이야. (주차장이 이제 여러 사람이 들락날락하고 그러지만, 그 친구 하나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와가지고 자기 부인이 시청에 다니는 사람인데 차를 여기 잠깐 보관 좀 해달라고 그래서 그걸 보관해 준 지가 10여 년이 지났거든요. 그래서 그동안에도 그 사람 이삿짐도 날라주고 뭐도 날라주고 이래가지고 있다가 저번에 저 KBS에서 이산가족 찾는다고 이래가지고 거기 가서 냈더니 만나고 보니까 예전에 내가 이삿짐도 날라주고 뭐 날라주고 했던 이 동생인 줄을 정말로 몰랐다. 이게 이런 6.25나 이런 난리가 아니었으면 이런 비극이라는 것이 있지 않았느냐 이런 생각이 들어가지고...) 바다 건너 일본에서 외롭게 살던 재일동포도 우리의 이산가족 찾기 운동으로 모국의 형님과 만날 수 있게 됐습니다.(헤어질 때 어떻게 헤어지셨어? 난 만주에 가 있었고...) 서독의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교민도 KBS의 이산가족 찾기를 신청해서 우주 중계를 통해 조국의 가족과 연결되어 옛날의 모습을 더듬으며 재회하는 광경입니다. (우물이 있는데 그 옆에 무화과나무 같은 게 있고 포도나무 넝쿨이 같이 올라가는 데가 있고. 네 지금 포도나무가 우물가로 올라갔었다는 그 말씀을 하셨는데요. 네 코 옆에 점이 있는 것...) 다시는 전쟁의 비극이 없어야 한다고 호소하는 재회한 남매. (우리 가족을 산산이 흩어지게 했던 6.25의 전쟁의 비극이 다시는, 다시는 없도록 노력해야 될 것이며...) 1,050만 이산가족에게 재회의 기쁨을 안겨주고 아직도 이 땅의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현실을 새롭게 일깨워준 혈육 찾기 운동은 이제 세계적인 관심사로 더욱 부각되고 있습니다. 소련에서도 사할린에 거주하는 한국 교포의 혈육 재회를 허용할 용의를 표명했으며 서독의 장관도 동독의 예를 들면서 한국이 꾸준히 이산가족 찾기 운동을 전개하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면 북한이 응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세계 여론이 이산가족 찾기 운동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있는데도 이를 외면하는 북한 공산집단은 전 세계의 규탄을 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또 우리의 줄기찬 노력은 끝내 결실을 맺고야 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