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공사의 6.25 특집프로로 시작된 이산가족 찾기 운동, 6.25 동란이 빚은 민족의 비극 그 악몽을 33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에 다시 한 번 일깨워 준 계기가 됐습니다. 혈육과 떨어졌던 이산가족들의 통한은 이를 지켜보는 우리의 온 국민들이 같이 치러야 할 아픔으로 인식됐고 30여 년 만에 극적으로 재회하는 감격의 기쁨은 온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진행된 방송과 혈육을 찾으려는 10만여 장이 넘는 벽보의 물결은 이산가족의 갈망이 어떤 것인가를 웅변해줍니다. (어머, 누님이세요? 네. 누님 손이 너무 아프시겠어요. 너무 꼭 잡아서 빨개지셨네요. 친 누님이세요? 네. 누님하고 동생하고 만나셨는데요, 어머님은 어디 계세요? 서울에요. 그러니까 누님은 어머님을 모르고 계셨다가……. 아니에요. 저만 떨어져 있다가. 남동생 만요? 네. 같이 고아원에 있다가 저는…….) 6.25 남침으로 고아 아닌 고아가 됐다가 33년의 기막힌 인고의 세월 끝에 중년이 돼서 꿈에 그리던 혈육을 찾는 데 성공했습니다. (아버님은 어떻게 되셨어요? 아버님은 군대 가셔서 전사하시고. 그때 저 누님하고 저하고 육군병원까지 갔었죠? 그래, 육군소위로 전사하시고. 전사하셨어요? 그래.) 북녘 하늘 아래 남아 있는 부모·형제들의 생사조차 몰라 애타 하는 이산가족들. 1971년 8월 12일 대한적십자사가 남북 이산가족 재결합을 위한 회담을 제의해서 남북대화가 이루어졌으나 북한 측의 배신으로 끝내는 결렬되고 말았습니다. 북녘 땅에 남아 있는 혈육과의 상봉은 뜻을 이루지 못했어도 우리는 재일조총련 교포의 모국방문을 실현시켰고 소련과 중공 등 공산권 지역에 있는 모든 동포들에게도 모국방문의 문호를 활짝 열어놓고 있습니다. 국내외 어디서든 살아 있는 혈육은 찾기만 하면 서로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인공위성으로 연결되는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미국에 일본에 독일에 살고 있는 동포들도 고국의 혈육과 상봉하는 감격을 갖게 됐습니다. 지난 8월 6일부터 만남의 광장이 개설됐습니다. 여기에는 이산가족들의 재회를 위한 모든 편의시설들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밖에서 비를 맞으며 노숙하며 혈육을 찾아 헤매던 이산가족들은 이제 서둘지 않고서도 차분하게 피맺힌 사연들을 풀어나가게 된 것입니다. 이제 소련도 사할린 교포의 만남을 허용할 뜻을 비쳤고 교황 바오로 2세도 분단 한국과 아픔을 함께한다고 말했으며 국제적십자사 등 온 세계가 우리의 이산가족 찾기 운동을 적극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공산집단은 이 감격마저도 미리 꾸민 조작극이라고 모략하면서 계속 무장간첩을 남파하는 등 도발을 일삼고 있습니다. 세계의 이목도 민족의 양심도 동포애도 외면하고 있는 북한 공산집단, 우리는 북한 괴뢰가 또다시 전쟁을 도발하게 되면 6.25 보다도 더 처참한 민족의 비극이 야기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북한 괴뢰를 훨씬 능가하는 국력의 신장, 이 길만이 중단된 남북대화의 탁자에 북한 괴뢰를 나오게 하고 6천만 동포가 한결같이 열망하는 평화통일의 그날을 앞당기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