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3)조선조 왕궁의 위용을 되찾은 창경궁. 3년여에 걸친 복원 공사 끝에 새롭게 단장된 창경궁이 명실공이 조선 왕조 5대 궁궐의 하나로써 우아한 자태를 일반에게 선보였다.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많은 전각과 유적들은 도시 한 가운데 또 하나의 시민 고궁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됐다. 창경궁은 조선 초기인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거처하던 수강궁터에 성종 15년인 1484년 성종의 조모인 정희왕후와 생모인 소혜왕후 양모인 안순왕후를 모시기 위해 명정전 등을 지어서 창경궁으로 개칭한 궁궐이다.



(01:30)그 뒤 임진왜란과 이괄의 난, 순조 30년에 대화재 등으로 불탔다가 중건 됐으며 순종을 창덕궁에 유폐시킨 일제가 1911년 이곳에 순종의 위안의 명목으로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고 왕궁의 맥을 끊기 위해 전각을 하나둘 헐어 궁을 원으로 격하시켰다.



(02:06)이후 창경원은 일반 시민들의 위락 장소로 널리 이용되어왔다. 정부는 전통 문화의 계승 발전과 자주 문화의 창달을 위해 창경궁 중창 종합 계획을 수립하고 창경원을 창경궁으로 개정했다. 1984년 3월 전두환 대통령은 이곳 창경원 시찰했다. 문화공보부는 조선 왕궁에 복원 정화 방침을 발표하고 일제에 의해 파손된 사적을 정비키로 했다. 이에 따라 창경원의 각종 동물들이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이주하면서 동식물 사와 유기장 시설 등이 철거됐다.



(03:06)복원에 확실한 고증을 얻기 위해 동궐도 등에 관계 문헌을 토대로 복원 계획과 조감도가 작성됐다. 복원에 앞선 발굴 조사 과정에서 궁의 많은 구조물들이 파묻히거나 뭉개진 것이 발견 돼 옛 건물들에 분포와 지표가 확인됐다. 일제가 철저히 파괴하고 변조시킨 궁의 내부와 잡스러운 흙으로 덮어 없앴던 궁 안의 계곡도 발굴 계획 아래 작업이 시작됐다.



(03:52)1985년 4월 15일 전문가들의 복원 고증을 거쳐 중창을 위한 본 공사가 시작됐다. 새로 복원할 건물은 문정전과 그 부속건물, 행각, 명정전 부속건물, 빈양문 등 456평이며 보수할 건물은 영춘헌과 집복헌을 비롯해 남북 월랑과 남북 십자각 등 371평이다.



(04:31)5천여 미터에 달하는 배수로 정비 작업으로 물줄기는 산언덕을 등지고 북에서 남으로 흐르게 되며, 일제 때 파괴 돼 조잡스러운 잡석으로 축조됐던 옥천교 좌우측에 어구를 장대석축으로 쌓아 맑은 물이 흐르도록 했다.



(04:53)또 일제가 의도적으로 심은 벚나무를 제거하고 우리 고유의 나무를 심었다. 옛날 임금이 정사를 보살피던 명정전 주변 행각의 복원은 창경궁 중창 공사에 핵심 사업 중에 하나다. 우리 고유의 기초 기법대로 판축을 다지고 목재를 조립해 기둥을 세운 뒤 대들보와 서까래를 조립한다.



(05;26)복원할 행각이 윤곽이 어느덧 서서히 자리를 잡아 갈쯤 남북 월랑과 남행각 등에 기와 잇기 공사가 시작됐다. 이번 공사에 소요되는 기와는 총 17만 장으로 기존 기와의 크기와 문양을 실측해 특별히 제작됐다. 명정전 남쪽 문정전이 들어설 자리에 기초 공사가 한창이다. 문정전은 왕의 집무실로 명정전, 통명전과 함께 창경궁 3대 건물의 하나다.



(06:10)겨울이 가고 다시 봄이 찾아왔다. 1986년 3월 29일 우리나라 전통 왕궁을 지을 때 상량 의식을 처음으로 재현한 창경궁 문정전 상량식이 베풀어졌다. 상향식은 관복을 차려 입은 아홉 명의 제관들에 의해 집전됐는데 옛 문헌과 고증에 따라 상량문 봉안의식을 가졌다. 문정전 복원에 쓰인 대들보는 강원 도 명주군에서 벌채한 350년 된 춘향목으로 전통 목공들의 고건축 기술이 총동원됐다. 이로써 문정전은 새 창경궁의 핵심 건물로 등장했다.



(07;14)문정전과 명정전 주위에 회랑 및 행각이 복원됨에 따라 조선조 궁궐의 정전 중 가장 오래된 명정전 일곽이 원형을 되찾아갔다. 정문인 홍화문에 기단과 홍화문 좌우의 담장 보수됐다. 특이한 것은 다른 모든 궁궐들이 남향인데 비해 창경궁은 동향으로 건립된 것이다. 명정전은 임금이 국가 의식을 치르던 곳으로 임금이 다니는 어도를 비롯해 매정을 박석 포장해 품위를 되살렸다. 골격에 드러난 문정전 남쪽에 담장을 쌓기 위한 기초 작업이 시작됐다. 단청 작업도 순조롭게 진행이 되면서 단아한 고궁에 풍치와 한국 고유의 건축미를 잘 드러내 주었다.



(08:07)임금의 침전이던 통명전을 보수하고 그 전면에 역시 박석 포장을 하는 등 기존 건물들도 말끔히 보수했다. 새로 복원된 문정전에 달 문짝을 만들고 다듬는 작업이다. 한국 고유의 모양에 유난히도 문설이 많아 손질이 많이 가야 했다. 개관 날짜가 다가오면서 공정을 마무리 짓는 단계에서 목공들의 정성이 더욱 모아졌다. 문정전은 정면 세 칸 측면 세 칸의 겹처마, 단층 팔각집으로 재생됐다. 행각의 작은 문을 지나 궁의 안뜰에는 소나무와 느티나무 철쭉과 같은 고유 수종을 심어서 전통적인 풍치를 되살렸으며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었다.



(09:27)새롭게 복원된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을 들어서면 400여 평의 행각과 옥천교가 눈길을 끈다. 명당수가 흐르는 어구 위에 설치된 옥천교는 옛 석교의 조형미를 잘 나타내준다. 명정문을 지나면 말끔히 복원된 명정전이 있다.



(10:00)질서정연한 행각의 기둥, 옛 궁궐의 중창 기법 그대로 복원된 문정전. 창경궁에 평전인 문정전에 현판은 일제 때 헐리기 전에 것을 그대로 달았다. 문정전 앞 동쪽에 담장과 문정문이 복원됐고 서쪽엔 숭문당이 있다. 새로 복원된 명정전 뒷면 복도와 빈양문을 나서면 함인정이 있는데 영조가 장원급제한 사람을 접견하던 곳이다. 그 뒤로 순조의 친필이 걸린 경춘전, 환경전. 말끔히 보수된 통명전은 왕의 침전으로 지붕에 용마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 옆에 아름다운 장방형에 지단이 있다. 이 밖에 양화당 등의 기존 전각이 말끔히 보수됐다.



(11:25)변형된 지형을 복구해 조경과 관람루를 정비했다. 고풍어린 정취를 풍겨주는 춘당지. 한국 전통식 석축으로 새로 조성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식물원인 대운실은 한국 고유의 자생 식물 전시장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외에도 천문관측용 관천대와 풍기대 등의 보물이 잘 보존되고 있다.



(12:05)1986년 8월 23일 노신영 국무총리를 비롯한 많은 내외 귀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역사적인 창경궁 중건 개공식이 열렸다. 이 날 명정전 앞 광장에서는 우리나라 전통의 궁중 주악과 무용이 공연돼 이날의 경축 행사를 더욱 빛내 주었다.



(12:40)한편 조선 시대 임금의 행차를 재현한 동가행렬이 창덕궁 돈화문을 출발, 종로를 거쳐 창경궁에 이르는 연도 변에 펼쳐졌다. 대한 제국 동가도 고증에 따라 처음으로 재현된 이 어가 행렬은 시민들에게 깊은 관심을 모았으며 민족 문화재 복원의 중요성을 널리 인식시키는데 기여했다. 총 공사비 51억 원을 들여 일제 잔재를 말끔히 씻은 창경궁은 수도 서울의 새로운 명소로 써, 조선왕조의 대표적 문화유산으로써 시민들에 산 역사 교육장으로 활용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