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내 조국 우리 국토가 남북으로 갈라진 지도 어언 36년. 우리 민족이 만국민의 한을 삼켜야 했던 일제 36년과도 맞먹는 긴 세월이 흘렀다.



(00:34)그 비극의 38선 상의 공산 북·중 괴뢰가 무력으로 전면 남침해 온 1950년 6월 25일. 그로부터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혈투가 있었다. 같은 조상을 받드는 한 핏줄기의 동포들끼리 싸워야만 했던 6.25 전란.



(00:55)37개월여에 걸친 전쟁의 대가는 무엇이었던가. 3.8선 대신에 휴전선이 그어졌을 뿐 분단의 비극은 그대로 남았던 것을.



(01:16)휴전 이후의 남북한 관계는 또 어떻게 이어져 왔던가. 6.25를 도발한 전범자 집단인 북한 괴뢰는 휴전선을 비롯한 육상과 해상 공중으로 무려 4만 수천 건에 이르는 각종 도발을 일삼아 왔다.



(01:46)그러나 우리는 무력이 아닌 평화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계속해왔다. 남북이 이대로 남남이 될 수는 없고 하나이던 우리가 둘로 갈라져 살 수는 없다는 비원을 안고 우리는 평화 통일을 위한 적극적이고 끈질긴 노력을 기울여왔다.



(02:05)특히 1970년대 접어들어서는 역사적인 7.4 남북공동성명을 계기로 남북 대화를 가질 수가 있었다. 남과 북의 대표들이 5천만 겨레의 통일 염원을 안고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 서울과 평양을 오고 갈 때 그때의 감격과 기대는 얼마나 컸던가.



(02:30)그러나 북한 측은 대화의 탁자 아래서 남침용 땅굴을 파내려오지 않았던가. 그리고 전쟁 준비에 광분하면서 세계 공산주의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이른바 세습 왕조를 구축하고 있다.



(02:50)1980년 봄에는 남북총리회담을 제의해온 북한 측이 그나마도 일방적으로 중단해버리더니 남북 대화 당시 개설해놓은 서울 평양 간 직통 전화마저 끊어버리고 말았다.



(03:09)이런 상황 아래에서 81년 1월 12일 전두환 대통령은 남북한 최고 책임자 상호 방문을 제의했고 평화 통일을 향한 겨레의 염원은 천만 명 서명 운동 등 갖가지 방법으로 나타났다.



(03:32)우리는 또 제5공화국의 새 시대를 열면서 헌법 기관으로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를 설치하고 이 기구를 평화 통일 노력의 구심점으로 삼기에 이르렀다.



(03:47)분단의 고통은 민족 전체에 대한 고문과도 같은 것. 남북으로 혈육이 갈라진 1,000만 명 이산가족의 고통은 바로 6,000만 우리 겨레 모두의 아픔이다. 이러한 고통과 신음에서 하루 속히 헤어날 수 있도록 하는 일이야말로 남과 북을 가릴 것 없이 오늘을 사는 우리 세대 지상 과제라 할 것이다.



(04:15)그런데도 현실은 소망과 너무나 거리가 멀기만 하다..



(04:47)1981년 6월 5일 서울에서는 제1차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가 열렸다.



(04:35)전국의 지역 대표는 물론 이북 5도와 해외 동포 등 각계각층 9,300여 명의 자문위원들이 몰려서 초당적이고도 범국민적인 통일 여망을 만천하에 알렸다.



(04:55)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의장으로서 개회식에 참석한 전두환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 통일을 지향하는 온 겨레의 의지와 염원을 받들어서 이 기구의 발족을 선언했다.



(05:14)각계각층의 지도급 인사를 광범하게 추천받아 자문위원으로 위촉했고 본인들이 동의를 해서 등록을 마친 인사가 8,919명.



(05:32)맡은 바 사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했다.



(05:37)

남자 : 선서.

객석들 : 선서

남자 : 본 위원은

객석들 : 본 위원은

남자 :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의 자문위원으로서.

객석들 :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의 자문위원으로서.

남자 : 국법을 준수하고

객석들 : 국법을 준수하고

남자 :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의 염원을 받들어

객석들 :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의 염원을 받들어

남자 : 맡은 바 사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객석들 : 맡은 바 사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남자 : 엄숙히 선서합니다.

객석들 : 엄숙히 선서합니다.



(06:18)전두환 대통령은 개회사에서 남북 최고 책임자 회담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의했다.



(06:26)

전두환 대통령 : 본인은 이 자리에서 북한 김일성 주석에게 아무런 부담과 조건 없이 서로를 방문하도록 초청한 지난 1월 12일 자 제의의 수락을 다시 한 번 강조해두는 바입니다.



(06:54)

전두환 대통령 : 북쪽에서 먼저 서울에 와도 좋고 본인이 먼저 평양에 가도 좋으며 그 선후의 선택은 북한 당국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본인의 생각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07:17)

전두환 대통령 : 그리고 이 제의의 취지를 발전적으로 달성하기 위하여 본인은 오늘 이 자리를 비롯, 새로운 제의를 덧붙이고자 합니다.



(07:32)

전두환 대통령 : 만약 북한 측이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본인의 초청을 받아들일 수 없고 또 본인을 북한으로 초청할 수 없는 형편이라면 그 대신 남북한 당국의 최고 책임자가 다른 어떤 장소에서든지 직접 만나 기탄없이 의견을 교환하자는 것입니다.



(08:07)

전두환 대통령 : 판문점이나 제3국을 포함하여 만나는 장소의 선택은 북한 당국에 일임합니다. 만일 이 같은 최고 책임자 회담이 실현된다면 그 자리에서 이미 본인이 제의한 상호 방문 문제와 그동안 남북한 당국이 제의했던 통일 방안을 포함하여 쌍방이 제기하는 모든 문제들을 허심탄회하게 의논하기를 본인은 희망하는 바입니다.



(08:54)

전두환 대통령 : 본인은 만나는 시기도 북한 당국에 일임합니다. 그러나 시기는 빠를수록 좋을 것입니다. 우리는 북한 당국과의 대화를 위한 모든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 당국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한국을 대표하는 인사와 이 문제를 긍정적으로 협의해주기를 희망하는 바입니다.



(09:28)

전두환 대통령 : 그리고 UN 사무총장을 비롯하여 권위 있는 국제기구를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외 6,000만 동포 여러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마는 통일의 주체는 민족 전체, 즉 우리들인 것입니다. 통일은 민족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것은 특정 정당, 특정 체제, 특정 사상만의 전유물일 수가 없으며 마찬가지로 남북한 당국 최고 책임자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10:15)

전두환 대통령 : 최고 책임자 회담은 민족 전체의 통일 의지를 연계하는 계기이자 통로가 될 것입니다. 온 겨레가 강렬한 통일 의지를 정립하고 이 의지가 회담장을 통해 진정으로 반영될 때 비로소 우리는 소망스러운 결실을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10:45)

전두환 대통령 : 그러므로 6,000만 동포 여러분들이 통일 추진의 주역이며 통일 조국의 주인이라는 역사적 사명감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통일을 달성할 것인가, 그리고 통일 조국의 체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는 전적으로 민족 성원 전체의 권리인 것입니다.



(11:30)통일은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일이다. 그러기에 통일의 주체는 어느 누구도 아닌 우리 민족 전체가 돼야 한다. 그리고 통일의 이념은 남의 사상이 아닌 바로 우리 혈관 속에 흐르는 민족혼에 바탕을 두어야 할 것이다. 물론 비극의 국토 분단은 우리 겨레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니고 분단의 책임 또한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12:00)그러나 분단의 비극을 해소해야 할 책임은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12:09)우리 민족사에 국권 상실과 국토 분단의 기나긴 밤을 안겨준 20세기도 이제 20년이 채 남지 않았다. 20세기의 비극을 20세기가 가기 전에 말끔히 청산하고 민족웅비의 새날을 설계하기 위해서도 우리 손으로 평화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 새 역사의 장을 여는 80년대 문턱에 서서 통일을 위한 노력을 우리 함께 다시 한 번 다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