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1981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큰 경사가 있었습니다. 동원 이홍근 선생이 팔십 평생을 모아온 문화재를 전부 국가에 헌납하여 특별전을 열게 된 것입니다.



(00:38)전두환 대통령은 이번 동원 선생이 수집한 문화재를 국가에 헌납한 쾌거에 대해서, 문화재의 공익성과 사회성을 모든 사람에게 일깨워 주는 좋은 계기가 됐다고 말하고 동원 선생에게는 국민 훈장 모란장을 추서했으며 유족대표 이상룡 씨에게는 국민 훈장 석류장을 수여했습니다.



(01:13)동원 선생은 평생을 모아온 문화재를 바탕으로 1967년 온습도가 조절되는 시설을 갖춘 사설 미술관을 세우고 이곳에서 문화재와 함께 기거하면서 손수 그 보존관리에 온 힘을 쏟아왔었습니다.



(01:46)동원 선생은 일찍이 회사를 일으켜 사업가로서 성공한 분으로 일찍이 한국 고미술품의 감상과 수집에 비할 데 없는 정열을 쏟았으며 해외로 빠져나가는 문화재를 안타까이 여겨 막대한 재력을 쓰면서 우리의 문화유산을 모음으로써 이를 지켜온 분입니다.



(02:32)동원 선생이 돌아가시자 장남 이상룡 씨를 비롯한 다섯 형제는 아버님의 문화재 국가 헌납의 유훈에 따라, 지체없이 수집 문화재 헌납서를 이광표 문화공보부 장관에게 전달하고 4,941점에 이르는 방대한 수집품을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사회에 선뜻 내놓은 것입니다.



(03:00)이것은 진정 민족 문화재를 아끼고 가꿔 온 이홍근 선생의 참모습을 드러낸 것으로서 수장가의 윤리가 아직도 바로 잡히지 못한 사회현실에 비추어 국민 모두에게 마음 후련한 고마움을 느끼게 해줬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긴 값진 문화재는 어느 개인의 것이 아니라 국가와 겨레의 것이므로 사장돼서는 안 될 것입니다.



(03:23)문화재 5,000점을 수집하자면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한 점씩 사들인다고 해도 15년이란 세월이 걸립니다. 동원 선생이 이 방대한 문화재를 모으는데 얼마만한 사랑과 재력을 투입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동원 선생이 생전에 손수 다루며 만든 소장품 목록에 따라 박물관에 문화재를 옮기는 과정에서 그 아들 5형제는 동원 선생이 일상 기거하던 침실과 서실에 놓이고 걸려있던 것들을 비롯해서 각층 구석구석에 있던 것까지 모두 찾아내서 고스란히 박물관으로 옮겨가도록 함으로써 현장에 나갔던 박물관 연구관들로 하여금 큰 감명을 받게 했습니다.



(04:18)이러한 형제간의 밝고 깨끗한 우애와 자세는 재물과도 바꿀 수 없는 보람이었으며 사회 공헌의 본보기이기도 합니다.



(04:32)동원 선생은 고려 후기의 석학 익재 이재현 선생의 후손으로 1900년 10월 20일 개성에서 태어났습니다. 선생이 이 많은 문화재를 수집하는 데는 민족문화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고미술에 대한 높은 안목 그리고 수집에 대한 집념과 막대한 재력이 있어야 했습니다. 어느 때는 한국 문화를 깔보는 일본인과 싸우고 어느 때는 생활비를 몽땅 털어 한 점 문화재를 수집하는 등 많은 일화들을 남기셨습니다. 그렇게도 애틋한 정성을 쏟아 모은 유산을 한 점 남기지 말고 국가에 모두 헌납하라는 유훈을 남기고 동원 선생은 1980년 10월 13일 서울 성북동 자택에서 별세했습니다.



(05:27)충남 서산에 있는 개심사 주지 김명수 스님은 동원 선생의 지난날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05:35)

김명수 스님 : 제가 뵈어 온 동원 이홍근 선생님께서는 참 훌륭하신 분이십니다. 제가 개심사 주지할 당시에 도난을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개심사에서 보물로 지켜오는 오동 향로 불상이 있었습니다. 그 두 점을 도난을 당하고 몰랐었는데 등기 편지가 와서 뜯어보니까 이홍근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편지였습니다. 그래 그 편지를 받아보고 너무나 기쁘고 아주 감개무량해서 바로 그냥 즉시 이홍근 선생님 댁으로 갔습니다. 갔더니 오동향로하고 불상하고 보관해가지고 계셔서 저한테 돌려주셔서 참 감사히 받아가지고 개심사에 갖다 오늘까지 보관해 있습니다. 그런데 참 그때 그 제가 본 이홍근 선생님께서는 너무 자비스러운 인상을 가지시고 참 너무나 감사한 일을 해주셨기 때문에 제 평생에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아가실 그 직전에는 많은 유물과 보관하셨던 보물, 여러 가지를 나라를 위해서 헌신적으로 다 바치셔서 너무나 그 일에 대해서도 참 훌륭하신 분이시라고 저는 참 느끼고 있습니다. 이홍근 선생님께서는 왕생극락하셨으리라고 저로서는 확신하고 믿습니다.



(07:15)또 이런 일화도 있습니다. 한 일본 실업가가 사업차 우리나라에 왔을 때 동원 선생을 사흘 동안 연거푸 방문하고 값을 얼마나 치러도 좋으니 수집 문화재 중 이조백자 한 점을 양도해 달라고 간청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생의 완강한 거부로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출국하게 됐는데 출국 직전 김포공항에서 전화로 선생에게 다시 한 번 생각해달라고 간청하자 선생은 화를 내며 호통을 친 일도 있었습니다.



(08:02)동원 선생 헌납 문화재가 박물관으로 실려서 떠나는 마지막 순간, 유족들에게는 또 한 번 아버님을 떠나보낼 때 느꼈던 아픔과 서운함을 간직해야 했습니다.



(08:28)80년 10월 13일 동원 선생의 1주기에 맞춰 국립중앙박물관은 136평에 달하는 상설 동원기념실을 마련하여 값진 헌납 문화재를 교대로 국민에게 모두 공개하게 됐습니다. 동원 선생이 수집한 문화재는 고고 자료, 불교 공예품을 비롯해서 고려자기 477점, 이조 자기 1,306점, 회화 1,100여 점 등 5,000점에 이르러 양으로나 질적으로도 엄청난 것입니다.



(09:06)이렇게 다양한 한국 문화재의 수집품은 질과 양에서 능히 하나의 독립된 박물관으로 활용하기에 충분한 내용입니다. 이들 문화재는 대부분이 미공개 유물이어서 새롭게 일반에 공개됨으로써 우리나라 고미술의 새로운 측면을 밝힐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09:28)동원 선생이 생존해 계실 때 그분의 수집 문화재 중 다섯 점이 한국 미술 5000년 전에 출품되어 2년여에 걸친 미국 나들이를 떠나게 됐습니다. 그때 동원 선생은 이 미술품들을 생전에 다시 보게 될 수 있을는지를 헤아리시며 석별을 아쉬워했다는 것입니다.



(09:50)이제 비록 그 주인은 가셨지만. 이들 유품은 멀리 해외에 나가 한국 전통문화의 뛰어남을 과시하고 돌아온 자랑스러운 문화 사절입니다.



(10:08)고려자기는 그 내용도 다양하여 전 종류에 걸쳐있으며, 순청자, 상감청자, 철화청자 등 학술적으로 다양한 자료가 많이 있습니다. 그중 12세기 초부터 중엽에 걸치는 가장 세련된 작품들이 포함돼 있고, 기형과 장식, 기법 등 매우 풍부한 자료를 갖추고 있어서 고려청자 연구에도 좋은 보고 구실을 하게 됐습니다. 이밖에도 신라 말, 고려 초로부터 고려 말기에 이르는 전 기간 동안의 각종 토기, 도기, 자기가 망라돼 있습니다.



(10:52)조선시대의 도자기는 동원 수집품 중에서도 수적으로 가장 많으며 수집내용도 매우 다양하고 우수합니다. 뿐만 아니라 학술적인 자료 가치가 높은 것이 많아서 앞으로 조선 시대 도자사 연구에 크게 이바지할 것입니다. 그중에는 국보로 지정된 백자청감, 연당초문대접을 비롯해서 조선 시대 중기와 초기의 청화백자, 철회문백자, 분청사기 등은 동원 수집품 중에서도 매우 비중이 큰 분야입니다.



(11:31)선생의 수집품 중 회화와 서예가 수적으로 거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예는 조선시대 초기에 초성으로 불린 황고산의 초서를 비롯해서, 조선시대 한국 서예 사상 기념비적인 존재로 돼 있는 추사 김정희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12:03)회화 또한 조선 시대 명가들의 작품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단원 김홍도, 오원 장승업, 소치 허유의 가작들이 두루 갖추어져 있습니다.



(12:39)동원 수집 미술품은 이렇게 우리 문화재 전반에 걸친 소중하고도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수집된 이들 작품 하나, 하나에는 동원 선생의 민족문화에 대한 비길 데 없는 사랑과 정열이 깃들어 있으며 또한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들이 해외로 흘러 들어가 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 정성과 시간과 막대한 재력을 투입하여 국민 앞에 오늘의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집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3:33)고 동원 이홍근 선생은 이렇게 막중한 값어치의 문화재를 국가에 헌납했을 뿐 아니라 그 유족 측은 약 1억 원에 이르는 동원기념학술기금을 내놓아 한국 고고 미술 연구에 도움이 되도록 했습니다. 동원 선생이 사회에 환원한 값진 민족 문화재는 돈으로 따질 수 없을뿐더러 설사 그런 돈이 있더라도 다시는 이룰 수 없는 어려운 사업입니다.



(14:11)동원 이홍근 선생의 깨끗한 유지는 문화재 수집에 대한 국민의 올바른 윤리가 무엇인가를 시범으로 보여줬으며 우리에게는 국민 윤리의 한 귀감으로서 그 값진 유산과 함께 길이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