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6)건널목. 여기가 건널목지기 내가 일하는 곳입니다.



(01:31)하루 2교대. 이번 주에는 아침 6시 30분부터 저녁 6시 30분까지가 제 근무시간입니다.



(01:54)건널목 지기란 얼핏 보면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단조로운 일 같지만은 시간표와 시계를 확인해가며 잠시도 마음이 느슨해져서는 안 되는 그런 직업이랍니다.



(02:23)평소에는 한없이 평온하고 서로 만남의 정겨운 얘기만이 잠시 머무는 곳이지만은, 하찮은 잘못이 엄청난 사고를 불러일으키는 현장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항상 수칙에 한 치의 어김도 있어서는 안 되지요. 성급한 사람, 느긋한 사람, 지나가는 사람들의 성미까지도 이제 훤히 알게 된 것도 10여 년의 건널목지기로서 헤아린 세월이 있기 때문입니다.



(02:58)지나가는 사람들을 돕고 보살펴야 하는 것은 여가로 하는 일이 아니라 이제 나의 직무의 하나가 돼버렸습니다.



(03:33)내 철도원 생활도 어언 35년입니다. 가끔 옛날 생각이 떠오르죠. 나이 탓이라고나 할까. 15년 전 증기기관차가 퇴역하면서 난 정든 철마의 고삐를 놓았죠.



(04:03)어느새 큰애에게서는 손자를 봤고, 직장인 군청이 있는 읍에 분가해서 제 앞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어디 가나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는 제 뜻을 잘 새겨 열심히 근무하고 있다는 소식이 이웃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제 귀에까지 전해오니, 저로서는 그저 큰애가 대견할 따름입니다.



(04:31)이젠 그 박봉으로도 막내 학비 뒷바라지까지 해주니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04:42)읍내 농협에 다니는 딸아이.



(04:49)죽은 어미 대신 집안 살림 돌봐주고 집 앞 텃밭을 일구어 김장 걱정 없고, 오히려 내다 팔아 가계를 돕기까지 한답니다.



(05:08)막내 놈은 현재 대학 2학년입니다. 큰 애는 살림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말았지만, 막내 놈은 그 걱정은 덜었습니다. 들리는 말로는 열심히 공부하고 있답니다.



(05:54)

남자 : 아니, 저놈들!



(05:57)철 없는 애들이라고 봐 넘길 수는 없죠.



(06:15)요즘 부모들은 귀엽다고 지나치게 응석을 받아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는 안 되는데. 혼내줄 때는 혼내줘야지. 그래야 커서도 길 잘못 들지 않지. 이것은 결코 이 사람의 부질없는 생각만은 아닙니다.



(06:48)요새 신문을 보면 학생들의 어수선한 얘기들이 제 마음을 온통 들쑤셔놓고 만답니다. 이 도대체 어쩌자고 이러는 건지. 막내 놈 혹시나 엉뚱한 데 휩쓸리고 있진 않을까, 참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07:14)그놈 대학 진학이 온 가족의 바람이었죠. 그 합격을 얼마나 축원했는지, 그놈은 아마 모를 겁니다.



(07:25)만에 하나라도 길을 잘못 든다면 이거 생각만 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요.



(07:40)나라 안팎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시기에 폭력을 휘둘러 어떻게 하자는 건지, 에이고 참.



(07:50)나는 이 건널목을 지키면서 늘 이런 생각을 해본답니다. 기차는 제 철길을 따라 달리고 오가는 사람들은 신호에 따라서 제 깃발에 맞춰 움직여주고 질서란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제 지킬 일을 다 착실히 지켜주기에 언제나 이렇게 건널목은 안전하고 평화로운 전경을 지킬 수 있다고 말입니다.



(08:23)여기 누구 하나 이 규칙을 무너뜨리면 이것은 삽시간에 무서운 참변의 현장으로 바뀌고 말 게 아니겠습니까.



(08:42)내 집에 가면은 내 생각을 학교 다니는 막내 놈에게 꼭 편지 써 보낼 것입니다. 그놈은 부질없는 아비의 걱정이라고 결코 가볍게 들어 넘기지는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