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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보류” 6·25전쟁 낙동강 방어선 작전명령서 복원 공개

‘다부동전투’ ‘기계·포항전투’ ‘장사상륙작전’ 등  6·25 전쟁 관련 주요 기록물

제1사단 15연대의 연대 명령요도 이미지
제1사단 15연대의 연대 명령요도(1950. 8. 13.)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6·25전쟁 66주년을 맞이하여, 6·25전쟁 관련 작전명령서 및 작전지도 일부를 복원하여 일반에 공개하고, 연말까지 단계적으로 복원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국가기록원이 복원해 공개한 기록물은 1950년 7월~9월까지 6·25 전쟁에서 최후의 보루였던 ‘낙동강 방어선’ 관련 작전명령서로서, 다부동 전투, 기계·안강·포항 전투, 장사상륙작전 등이 포함되어 있다.

낙동강 방어선은 6·25전쟁 시작 후 ‘8월15일 부산점령’을 목표로 불과 7월말에 낙동강까지 내려오는 적을 저지하기 위한 최후의 방어선으로, 지형적방어가 유리한 낙동강을 따라 연결된 지역(마산-왜관-영덕) 240km에 형성

군사편찬연구소 양영조 군사연구부장은 “1950년에 국군이 생산한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낙동강 방어선 관련 기록물은 매우 희소성 높고, 특히 낙동강 방어작전 당시의 전투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핵심자료”라고 강조하고, 특히, ‘작전 명령서 제174호’는 인천상륙작전 직전 후방 교란작전으로 감행된 장사상륙작전과 관련하여 현재까지 확인된 공식 문건이며, 아울러, 당시 희생된 ‘학도병’을 의미하는 ‘유격대’를 언급한 기록이 있어 매우 의미가 있다”라고 평가하였다.
이번 자료 중에는 당시 정일권 참모총장이 친필로 작성한 작전명령서가 포함되어 있다. 이를 통해 당시 긴박했던 전쟁 상황 속에서도 체계적으로 작전을 수립하고, 지휘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이것이 전투의 승리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유추해 볼 수 있다. 또한, 작전명령서들은 갱지에 등사로 인쇄되어 배포되었고, 작전지도 역시 간략히 작성하여 사용된 것으로 보아 당시의 전쟁 상황이나 정세가 매우 급박했음을 엿볼 수 있다.

1「‘낙동강 방어선’ 형성 관련 작전명령서」-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91호(1950. 7. 31.), 94호(1950. 8. 2.), 119호(1950. 8. 11.)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91호 기록물이미지1육군본부 작전명령 제91호 기록물이미지2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91호(1950. 7. 31.) : 제1, 2군단에게 북한군을 저지하면서 7월 31일과 8월 1일 야음(夜陰)을 이용해 낙동강 이남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이 담겨 있다.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119호 이미지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119호(1950. 8. 11.) : 제2군단 제1사단은 8월 12일~13일간 야암에 동지구내 “X”선으로 전진하라.
13~14일간 야음에 “Y(*303고지-수암산-유학산-군위-보현산)”선으로 전진할 준비를 하라. 각 연대는 증강된 1개 대대를 원호대(援護隊)로서
현재선에 잔치(殘置)시켜 주력의 철수를 엄호하게 하라.

작전명령서는 제1, 2군단에게 적을 저지, 낙동강 인근으로 이동명령(제91호), 8월 3일까지 낙동강 방어선으로 철수명령(제94호), 제1사단에게 8월 12~13일에 변경된 방어선 “Y(왜관작오산(303고지)-수암산-유학산-군위-보현산)”으로 이동 명령(제119호) 등 구체적인 작전계획을 시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낙동강 방어선 전투는 국군이 다부동, 기계·포항 등 낙동강 방어선 일대에서 사활을 건 방어 작전을 통해, 대구를 방어하여 6·25전쟁의 최대 위기를 극복하고, 연이어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으로써 연합군의 총 반격 작전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6·25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전투이다.

2「‘다부동 전투’ 관련 작전명령서와 작전지도」-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138호(1950. 8. 17.) 및 139호(1950. 8. 18.), 1사단 15연대 작전지도(1950. 8. 13.)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139호 이미지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139호(1950. 8. 18.) : 적의 주력은 아 제1사단 정면에 지향하고 군위-다부동-칠곡 방면으로 남하를 기도하고 있음.
왜관 약목방면의 적(敵)은 작일 이래 전의는 현저히 저하되고 있음.

제1사단의 주저항선 확보 및 북방공격 명령(제138호), 적의 남하(군위-다부동-칠곡)기도 정황·적의 사기 저하 및 10연대의 1사단 배속·동석(東石)이동 명령(제139호), 제1사단 15연대의 작전지도 등과 같은 상세한 전시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동석 : 다부동 남쪽 9km 위치의 동명초등학교 소재지로 1사단 사령부 설치 장소

6·25전투 중 치열한 전투에 속하는 다부동 전투(1950. 8. 3.~ 9. 22.)는 낙동강 방어전선의 요충지이며, 최대 격전지로 대구로 향하는 길목(경북 칠곡군 가산면 일대)에서 국군 제1사단이 적 3개사단에 대응하여 벌인 전투로서, 대구 방어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3「‘기계·안강 및 영덕·포항 전투’ 관련 작전명령서와 작전지도」-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116호(1950. 8. 11.), 120호(1950. 8. 11.), 134호(1950. 8. 15.)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116호 기록물이미지1육군본부 작전명령 제116호 기록물이미지2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116호(1950. 8. 11.) : 포항지구 전투사령관은 서기 1950년 08월 11일 14:00를 기하여 작전투명도 상에 표시된 지역 내의
적을 공격 섬멸하고 그의 남하를 저지하라.

제120호는 안강에서 미군과 협동 공격 및 기계방면의 공격 계획, 병력의 이동, 제26연대 배치·포항지구 적 섬멸 명령 등을 담고 있다. 제116호와 134호에는 작전지도와 함께 적의 섬멸과 남하의 저지 명령, 수도사단의 전투 지경선(地境線)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일권 참모총장의 친필로 작성된 작전명령서가 남아 있다. 기계·안강, 포항 일대의 전투는 북한군이 포항방면을 통하여 부산으로 진출하려는 기도를 저지하고 반격의 발판을 마련한 중요한 전투이다.

4「‘장사 상륙작전(1950. 9. 14.)’ 관련 작전명령서」-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174호(1950. 9. 10.)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174호 이미지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174호(1950. 9. 10.) : 육본 직할 유격대장은 예하 제1대대를 D일 H시 P장소에 상륙을 감행시켜 동대산(東大山, 해발791m)을
거점으로 적의 보급로를 차단, 제1군단의 작전을 유리케 하라(동대산 : 경북 포항시 북구 위치의 산)

제174호는 “육본 직할 유격대장은 예하 제1대대를 상륙 감행시켜 동대산(東大山/포항북부 소재)을 거점으로 적의 보급로를 차단, 제1군단의 작전을 유리케 하라”는 당시 정일권 참모총장의 친필명령서이다.
장사상륙작전은 인천상륙작전(1950. 9. 15.)을 위한 후방 교란 작전으로 포항 북부 장사리에 주로 학도병으로 구성된 부대를 투입한 전투로 알려져 있다. “이 전투에는 알려지지 않은 많은 어린 학도병들의 희생이 있었는데, 작전명령 174호의 ‘유격부대’는 학도병을 지칭하는 것이며, 이것은 당시 투입된 학도병을 언급한 현재까지 확인된 유일한 공식 문건이다”라고 양영조 군사편찬연구소 부장은 설명했다.

국가기록원은 앞으로도 당시 전쟁 중의 열악한 기록재료 사용과 66년의 시간 경과로 인해 산성화되거나 물리적으로 훼손된 6·25 전쟁관련 중요 기록물의 복원 작업을 차질 없이 진행해 나갈 예정이다. 우선 금년 말까지 낙동강 방어 전투관련 작전명령서 274매의 복원 작업을 완료할 예정이며, 2017년 이후에도 나머지 9천여매에 대한 수선·복원 작업을 연차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국가기록원은 1950년~1953년 동안 생산된 작전명령서 등 282권(9,960여매)을 소장하고 있으며, 춘천전투, 백마고지 전투 등 그간 총 172매를 복원 완료(2014년)

작전명령서 및 작전지도 복원 과정
테이프 제거 모습
테이프 제거 모습
결실부위 보강 모습
결실부위 보강 모습

홍윤식 행정자치부장관은 “이 기록물들을 통해 6·25전쟁 당시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전투를 치른 선열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소중한 계기가 되길 바라며, 앞으로 행정자치부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보존된 작전명령서와 작전지도 등 6·25전쟁 관련 중요 기록물들을 우리 후손들에게 안전하게 보존·전승될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