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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교류와 협력의 한반도, 기록으로 보는 남북회담

2018년 4월 27일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2018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였다. 이날 회담은 2000년 최초 남북정상회담 이후 18년,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11년 만에 이루어진 것이다. 해방과 동시에 분단된 남과 북은 한국전쟁, 냉전체제, 핵개발 등 많은 갈등과 대립을 이어 왔지만, 그 와중에도 교류와 협력을 위해 노력해 왔다. 이에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원장 이소연)은 세계 평화사에 길이 남을 ‘2018 남북정상회담’을 맞아 ‘기록으로 보는 남북회담’ 콘텐츠를 보완하였고, 그간의 남북대화 여정을 기록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2018 남북정상회담

남과 북은 1960년대까지 국제적인 냉전체제 영향 속에서 경직된 관계를 유지해오다 1970년대 초 국제사회의 화해·협력 분위기에 힘입어 대화의 장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1971년 8월 남한의 제의에 따라 분단 26년 만에 남북적십자회담이 개최됨으로써 인도적 분야에서의 남북대화가 시작되었고, 남북고위당국자 간에도 비공개접촉과 방문을 통해 1972년 분단 이후 최초로 합의문인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성명에서는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 3원칙을 비롯하여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적십자회담, 통일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조절위원회 구성 등에 합의함으로써 국내외의 큰 주목을 받았지만, 실질적인 남과 북의 교류로 이어지지 않은 채 중단되고 말았다.

  • 남북적십자본회담회의(1972)

    남북적십자본회담회의(1972)

  • 남북공동성명(1972)

    남북공동성명(1972)

1980년대 중반부터 남북대화가 활발해지고 접촉 창구도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1984년 9월 북한의 대남 수재물자 지원제의를 남한이 받아들임으로써 11월 남북경제회담을 시작으로 적십자회담, 국회회담, 체육회담 등 일련의 남북회담이 열리고, 1985년 9월에는 분단사상 최초로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 교환 방문이 성사되었다. 다만 이때에는 남북 문화교류가 화합보다는 체제 경쟁의 연장선상이어서 남과 북 모두 상대의 공연에 대해 혹평하는 흠집을 남기기도 했었다.

  • 이승만대통령 내외분 크리스마스실 구입 관계자 접견(1957)

    분단40년 만에 남북경제회담(우리측 김기한 수석대표, 북측 이성록 대표 담화)(1984)

  • 제8차 남북적십자회담(1985)

    제8차 남북적십자회담(1985)

  • 조상호 사무총장 박동철 남북체육단일팀 구성 추진 재일모국 방문단과 회의모습(1984)

    조상호 사무총장 박동철 남북체육단일팀 구성 추진 재일모국 방문단과 회의모습(1984)

  •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단(1985)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단(1985)

1990년대 접어들어서는 탈냉전이 가속화되는 국제질서에 영향을 받아 1990년 9월 남북총리를 수석대표로 한 남북고위급회담을 개최하였고, 1991년 9월 UN 남북한 동시 가입,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한이 상호불신이 아닌 서로를 인정하는 관계를 설정했다. 이는 자주적 입장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남북교류·협력에 대한 원칙과 실행방안을 도출하였다는데 의의가 있다. 또한 ‘한반도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은 남북한 쌍방이 “핵무기가 없는 한반도를 만들자”는 약속을 내외에 천명함으로써 한반도를 핵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길을 열어 놓았다.

  •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1992)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1992)

  •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1991)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1991)

  • 노태우대통령 남북기본합의서 및 한반도 비핵화선언서명(1992)

    노태우대통령 남북기본합의서 및 한반도 비핵화선언서명(1992)

  • 임동원 대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문 북측과 교환 기념사진 촬영(1992)

    임동원 대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문 북측과 교환 기념사진 촬영(1992)

2000년 3월 9일 김대중 대통령이 유럽 순방 중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에서 발표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남북화해협력선언’(베를린 선언)은 지구상 유일한 냉전지역으로 남아 있는 한반도에서 냉전질서를 종식시키고 남북이 화해와 협력을 통해 공동번영을 추구하자는 호소이다. 이 선언은 남북한 당국의 직접 대화로 경제협력을 논의하고, 한반도에서의 냉전 상태 종식과 이산가족 문제의 조속한 해결 등을 위한 특사 교환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남북한 당국 간의 대화 재개, 특히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는 정부의 강한 의지가 반영되어 있으며, 실제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이루어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 김대중 대통령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연설(2000)

    김대중 대통령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연설(2000)

  • 김대중 대통령 베를린자유대학교 방문연설(2000)

    김대중 대통령 베를린자유대학교 방문연설(2000)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남한의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에서 만나 회담을 진행하였으며, 그 결과물로 ‘6.15 남북공동선언’을 채택하여 발표하였다. 두 지도자는 공동선언을 통해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힘을 합쳐 해나가기로 하였고, 분단사상 처음으로 남·북한 두 정상이 합의·서명했다. 이 선언 이후 다양한 남북대화의 진행, 인적·물적 교류의 획기적 증대, 이산가족 교류의 활성화, 한반도의 긴장완화 등 다방면에서의 의미 있는 진전이 이루어졌다.

  • 김대중 대통령 김정일 위원장과 악수(2000)

    김대중 대통령 김정일 위원장과 악수(2000)

  •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회담(2000)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회담(2000)

그리고 또 다시 2007년 10월 2일부터 4일까지 남한의 노무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만나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분단의 증거인 군사분계선을 대한민국 정상으로서는 최초로 걸어서 통과하여 한반도 평화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였다. 정상회담 결과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10.4 선언’이 채택되었는데, 이는 ‘6.15 남북공동선언’의 세부 사항에 대한 구체적 이행방안을 담은 합의서였다.

  • 군사분계선 걸어서 통과(2007)

    군사분계선 걸어서 통과(2007)

  • 정상회의 배웅(2007)

    정상회의 배웅(2007)

이후 집권한 이명박 대통령은 ‘상생공영의 대북정책’을 발표하였으나, 북한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거부하고 남북대화의 문을 닫았다. 그리고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을 시작으로 핵실험, 장거리미사일 실험발사, 천안함 폭침사건 등으로 인해 남북관계는 10여 년 동안 경색되었다.

2018년 2월 ‘2018평창동계올림픽’에서 북한의 올림픽 참가와 남북 선수단 공동 입장, 단일팀 구성 등 굳어져 있던 남북 관계가 풀리는 계기가 되었고, 이어 남북예술단, 태권도 시범단 교류 등 서로 간의 왕래도 늘어나고 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한순간의 봄이 아니라 한반도에 지속적인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