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군의 광주시내 진입 시도(5. 25. ~ 5. 27.)
 
△ 5. 26. 22:00 전남도지사는 광주시에 비상근무체제와 함께 광주?목표지역에 거주하는 일본인 14명에 대한 소계를 명령하였다.
 
 
△ 5. 26. 12:00 광주시장은 외곽주둔(상무대, 주월동, 동운동 방면) 계엄군이 시내로 접근함에 따라 불안·공포로 인한 민심의 동요가 예상되므로 이를 방지하고, 더 이상의 유혈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계엄사와 학생측을 설득하라고 지시하였다.
 
 
△ 5. 27. 계엄사 협조지시. ‘군 작전 업무 수행으로 막대한 지장이 있으니 주민들은 일체 귀가하라’는 내용으로 동사무소 옥상방송을 실시하였다.
 
▷ 5. 27. 광주시장은 20사단 62연대장 이병연 대령에게 시민들로부터 회수한 무기 M1 29정, 칼빈 125정, 수류탄 28개를 인계하였다.
 
▷ 5. 27 광주시장은 각 구청에 구호복구상황실을 설치, 24시간 근무를 명하고, 구?동 단위별 인명과 재산 피해상황을 조사하여 보고할 것을 지시하여 피해상황 파악에 노력하였다. 광주시로 들어오는 여객, 화물열차가 30일부터 정상운행되기 시작하였다.
 
시내진입에 성공한 계엄군과 사후처리(5. 28. ~ 7. 18.)
 
 
 
△ 5. 28. 11:10 계엄사 정영식 대위?최영순 문관은 화내동 사무소 방문하여 15통장 개발위원 12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 ‘공수부대 광주진입은 잘못되었다. 폭도라는 용어를 금지시켜 달라. 광주사태이후 수습시까지 모든 사항은 사실대로 발표해 달라. 계엄군의 시내진입은 잘되었다. 연행중인 학생은 관용을 바란다' 등의 여론을 청취하였다. 같은 날 14:00 동구에 주둔하던 계엄군 40명이 서울이동을 위해서 철수하였다.
 
 
△ 5. 29. 14:00 계엄군은 소요사태 수습을 위한 계엄협의회를 개최하였다.
 
▷ 6. 4. 14:30 광주시는 광주사태 연행자 109명을 훈방 조치하였다.
 
▷ 6. 7. 광주시는 광주사태에 대한 행방불명자 조사를 지시, 8일까지 각 구별로 행불자 명단을 보고받았다.
 
▷ 6. 9. 계엄군은 주민계도용으로 <5. 17 전국비상계엄의 배경>이란 책자를 제작, 각 읍면동에 배포하였다.
 
△ 6. 14. 전남북계엄분소장은 <지역내 일부 인사에 대한 계몽당부>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오도하는 자의 명단을 작성하여 계엄본부에 보고할 것’을 지시하였다.
 
▷ 6. 12. 광주시는 사태 수습에 기여한 공무원과 민간인을 유공자로 선정하여 표창을 수여하였다.
 
 
▷ 7. 18. 전남지사는 19일자로 광주사태 피해복구 작업을 완료할 것을 지시, 이후에는 피해신고나 보상신청을 접수·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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