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령없는 발포 - 상황일지
발포를 명령한 자는 누구인가? 사망자가 몇 명인가?
기록의 부재로 인해 40년이 지난 지금도
밝히지 못하고 있는 질문입니다.
정부가
‘무자비한 폭도’ 로 매도하고자 했던 광주시민은
1980년 5월, 10일간의 기록 속에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전남대 200여명 동대학 정문에서 계엄군과 투석전, 100여명이 스크린을 치고 도청쪽으로 진출 중에 있음
카도릭쎈타 앞에서 도로에 전남대학생 200여명 앉아서 연좌대모 및 구호 외침 (계엄령 해제, 전두환 물러나라)
기동경찰 깨스차 앞세우고 3겹으로 방패들고,
도로 인도 통해 도청쪽에서 카도릭쎈타 앞으로,
광주은행에서 카도릭쎈타쪽으로 좁혀서 깨스폭발
학생 10여명 경찰(사복)이 연행
한일은행 앞 200여명 집결.
카도릭센타 앞으로 이동하면서 시위.
경찰은 최루탄을 쏘아 분산시키며 주동자 검거중에 있음
연행학생 6명
광주 CBS 방송국 앞에 학생 다수 및 소수 시민 등 약 2,000여명이 운집
무장군인 20명을 카도릭센타 앞 배치로 시민들 흥분 야유
무장군인 약 25명이 동구청 앞과 광주은행 사이 시민들을 해산코자 곤봉으로 시민들을 때리고 있음
학생 200여명이 관광호텔 앞에서 경찰과 대치 (학생 100여명이 경찰 쪽으로 화염병 투병 후 도주)
탱크 2대, 군용차 15대 카도릭쎈타 앞 배치, 군용차량 1대에 학생, 시민 반죽음 싣고감
금남로지역 100명, 충장로 거리 200명, 모였던 학생 전원 해산
300여명 학생은 대임동 공용터미널 앞에 모여 가드레일과 공중전화박스를 파괴하고 있음
광고에서 계림파출소 사이 장갑차 고장으로 있을 때 시민에게 총 발사로 국교생 2명, 중학생 1명, 고교생 1명 부상, 계엄군 차량으로 후송
현재 신역 및 공용터미널을 통과한 택시 200여대는 버스 2-3대를 앞세우고 2,000여명의 군중이 도청으로 향하고 있음
버스 8대, TAXI 50여대 10톤 화물 트럭 1대, 구청 앞까지 도착, 시위군중 앞 집결, 버스 1대 남동쪽에서 분수대까지 진출, 군중 4,000~5,000명
계엄군 집압 시작, 최루탄을 던지고 있음으로 시민들 후퇴, 운전기사 1명 축 처진 것을 2명이 끌고 가고 남자 3명 머리에 타박상, 계엄군에 00 가고 있으며 여자 1명도 데리고 가며 뻐스 및 택시 유리창 및 비상 라이트 깨고 있음 (곤봉)
일부 인원은 mbc앞을 통과하면서 화염병을 mbc에 던지며 mbc 샤다를 부수고 있고 공용터미널 부근의 5,000여명은 화학탄 발사로 분산
폭도들이 그레이하운드 1, 추럭 1, 담프추럭 1을 몰고 송정리쪽으로 시민 선동
데모대표 시장과 면담하기 위해 도청으로 갔음 시민들 데모대에게 빵, 콜라, 음료수 등 제공
데모대 도청으로 진격, 계엄군 뚫고 계엄군 사격(4~5발) 계속 사격
폭도에 의해 전남도청 및 도경 점거
계엄군이 충금지하상가쪽 데모대에 사격, 시민 1명은 동구청 부근 옥상에서 계엄군에 사격, 양2동에서 남아 1명(15세)이 총상으로 사망
진돗개2발령 ‘진돗개 경보’는 무장공비
침투 등 북한의 국지도발 가능성에 대비한 국군의
방어준비태세로, 총 3등급으로 구분된다.
* ‘진돗개2’는 무장간첩 침공이 예상 될 때
발령된다.
자칭 학생대표 2~5명과 전남부지사회의
-학생요구사항
· 발포명령 철회
· 인명피해 보상
· 책임 묻지 말것
· 3일간의 여유 줄 것
· 000 물러가라, 계엄해제
· 구속 학생 석방
국무총리 전교사 방문지시
-공수부대 성격
및 훈련상태 등을 광주시민에 이해시켜라.
-군 작전은 현지 지휘관에 모든 권한을 위임한다.
* 전교사: 전투교육사령부
전남일보사 건물에서 온건파 학생들은 총을 가지고 신문사를 지키며 수습대책 본부 설치하고 무기 회수 중
회수된 무기는 신분이 확실한 대학생들에게 지급하여 질서유지 전담. 여학생들은 "수습학생" 휘장을 두르고 질서 회복 방송
도청 앞 광장에 학생, 깡패간 의견 대립 충돌 직전, 폭도들은 기관총 2정, 소총, 몽둥이 휴대하고 도청 경비
운암동 420번지 앞 노상에서 데모대 찦 1대, 학생 3명과 군인차 1대가 만나 군이 발사 (학생 2명 사망, 1명 생포)
차고야 별장쪽에서 총격, 드드드 15분
총기 오인사고
효천역 북방 1킬로 지점 11공수여단이 20사단 61연대 책임지역을 인계하고 케이-57 비행장으로 복귀도중
상기 장소에 배치되어 있는 보병학교 병력과 충돌,
보병학교 병력이 90미리 무반동총 4발을 사격하여 APC 1대 전소,
11공수여단 9명 사망
광주 공단 입구 폐차량으로 설치된 바리케이트 제거했으나 과격분자들의 공장 폭파 위협에 의해 16:00 재설치
사람 통행은 통제로 통행 불능 한사람씩 통행 가능, 3인 이상 통행 불가
시민, 학생 15,000여명이 도청 앞 광장에서 시민 궐기대회 개최 (ABC 기자 3명이 취재중)
도청 상무회관에 사체(40여구 미확인) 안치, 시민들이 계속 줄지어 분향
도청안 미확인 시체 20구(관에 넣어 있음)
시 군 사람
현재 도청에는 장례식을 준비하기 위해 사람이 왔다 갔다 한다.
도청앞 광장, 3~4만 여명 전국 학생에게 보내는 글 낭독,
광주시민에게 보내는 글 낭독
* 5.25부터 매일 15:00 시민대회를 실시한다는 첩보임
시민 약 5만명 집결 최후까지 투쟁결의, 전시민 호응 함성
* 매일 오후 3시에 도청 앞에서 시민궐기 대회 개최함
시민 군중 3만여명이 도청앞 광장에서 궐기 대회
- 궐기 대회를 마치고 시가 행진에 돌입
시민 제4차 궐기 대회 13:10부터 가두시위 인원 약 3만여명
작전개시
3공수 도청 도착 교전
11공수 관광호텔 전일빌딩 도착
점령 완료
...외곽지대배치 완료
대의동 옆 골목에 고등학생 시체 1구
김기창 내과앞 도로변 시체 1구 (가마니에 덮혀 있는)
광주고교 서무과 직원 숙직실로 가는 도중 총에 맞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