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를 열며
1980년 그해 오월을 기억합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광주 시민의 희생을 기억합니다. 그들의 희생이 오늘 우리가 민주국가에서 민주시민의 몫을 이어가는 토대가 되었음을 기억합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5·18기념재단,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그리고 국가기록원과 손을 잡고 특별전을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전시는 그해 오월 저마다의 자리에서 광주를 목격하고, 지키고, 알리려 애썼던 이들의 뜨거운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수많은 이들의 노고와 분투가 서린 자료들이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다시 보게 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 아픔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금남로를 가득 메운 시위 행렬만큼이나 길었던 시민들의 헌혈 행렬, 대가없이 나누었던 이름 모를 이들의 주먹밥은 ‘연대와 정’이 가진 무한한 힘을 느끼게 합니다.
5·18민주화운동은 모르는 사람이 드물지만, 정작 제대로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가장 위험하고 폭력적이었던 순간에 발휘되었던 뜨거운 용기와 인류애를 몸소 체험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광주 시민의 희생을 기억합니다. 그들의 희생이 오늘 우리가 민주국가에서 민주시민의 몫을 이어가는 토대가 되었음을 기억합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5·18기념재단,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그리고 국가기록원과 손을 잡고 특별전을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전시는 그해 오월 저마다의 자리에서 광주를 목격하고, 지키고, 알리려 애썼던 이들의 뜨거운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수많은 이들의 노고와 분투가 서린 자료들이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다시 보게 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 아픔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금남로를 가득 메운 시위 행렬만큼이나 길었던 시민들의 헌혈 행렬, 대가없이 나누었던 이름 모를 이들의 주먹밥은 ‘연대와 정’이 가진 무한한 힘을 느끼게 합니다.
5·18민주화운동은 모르는 사람이 드물지만, 정작 제대로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가장 위험하고 폭력적이었던 순간에 발휘되었던 뜨거운 용기와 인류애를 몸소 체험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 전시장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 1층 기획전시실, 역사마당, 역사회랑
- 전시기간 역사마당, 3층 기획전시실 2020. 5. 13(수) ~ 2020.10.31(토) 1층 기획전시실 2020. 5. 13(수) ~ 2020. 6. 7(일) 역사회랑 2020. 5. 13(수) ~ 2020. 8. 30(일)
- 관람시간 오전 10시 ~ 오후 6시수요일·토요일 오전 10시 ~ 오후 9시(관람 종료 1시간 전까지 입장 가능)
- 홈페이지 www.much.go.kr
- 관람료 무료
- 관람문의 02)3703-9200
프롤로그 그날의 시그널
그날의 소리에 귀 기울여 봅니다.
그해 오월,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해 오월,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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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
1980년 5월 15일 밤 광주지역에서는 민족민주화대성회가 평화적으로 개최되었습니다. 한편, 5월 17일 밤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 확대 소식이 전해집니다. -
공포의 도시
1980년 5월 18일 일요일 오전 전남대를 시작으로 계엄군의 폭력이 자행되었습니다. 도시 곳곳이 공포로 얼룩졌던 빛고을 광주가 자료 속에서 그날을 증언합니다. -
우리는 보았다
광주 이야기는 통제 속에서도 긴박한 상황을 기록했던 언론인, 전단을 만들어 배포한 학생들, 진실을 알리고자 했던 외신들에 의해 알려지게 됩니다. -
붉은 피, 오월의 꽃이 되다
1980년 5월 광주는 피를 흘렸습니다.
하지만 그 핏빛 기록의 이면에는 함께 나눈 시민들의 연대와 아름다운 ‘대동세상’이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
숨어 쓴 일기
오월의 광주를 글로 써 내려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청 상황실에서 활동했던 여대생, 초등학생, 고등학생, 주부 등 각자의 시선과 방법들로 오월의 그날을 기록했습니다. -
멈춰버린 시계
5월 27일 새벽, 불과 1시간 30분 남짓의 짧은 동안에 수많은 생의 마지막이 쏟아졌습니다.
5월 27일에 멈춘 시계처럼, 광주는 영원히 아프고 처절한 청춘의 도시가 되어버렸습니다. -
살아남은 자의 슬픔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죽은 자는 절규했고, 산 자는 침묵했습니다.
에필로그 역사가 된 5·18
그토록 알리기 어려웠던 광주의 오월 이야기는 사람들의 관심과 증언으로 역사가 되었습니다.
정부기록 속의 5·18
정부기록에는 왜곡된 내용도 담겨 있지만, 한편으로는 가리고 싶었던 진실과 숨은 의도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
봄을 꿈꾸는 사람들
민주화를 위한 국민의 열망은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과 1980년 5월 서울역 앞의 대규모 시위로 분출되었습니다.
12.12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잡은 신군부는 언론을 통제하고 계엄을 선포하여 이 열망을 꺾으려 했고, 이것이 5·18민주화운동의 시작이었습니다. -
명령없는 발포
발포를 명령한 자는 누구인가? 사망자가 몇 명인가? 기록의 부재로 인해 40년이 지난 지금도 밝히지 못하고 있는 질문입니다.
정부가 ‘무자비한 폭도’로 매도하고자 했던 광주시민은 1980년 5월 10일간의 기록 속에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
분수대를 멈춰주세요
5월 27일 이후, 각 지역에서 보낸 성금과 물품이 도착했고 정부는 피해보상금을 지급하여 상황을 마무리 지으려했습니다.
그러나 광주시민이 간절히 원했던 것은 물질적 보상보다 마음의 위로였습니다. -
살아나는 역사
1987년 6월민주항쟁으로 민주화의 열망이 고조됨에 따라 ‘광주소요사태’는 ‘5·18민주화운동’으로 재정의되었습니다. 1997년에는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어, 그 해 5월의 열흘을 민주주의의 역사로 기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