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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중학교 평양분교
경성중학교 평양분교


경성중학교는 총독부중학교의 1913년에서 1925년 사이의 학교 명칭이었다. 이 총독부중학교는 통감부가 들어서면서 많은 일본인들이 조선으로 이주하고 그들의 거주지역이 확장됨에 따라 일본인 자제들을 교육하기 위해 설립된 ‘거류민단립중학교’의 후신이었다.
일본 제도에 준한 5년제의 거류민단립중학교는 독립문 옆의 옛 독립관에 1903년 3월 31일에 설립되었는데, 한일합방과 동시에 1910년 3월 31일 이 중학교는 폐지되었고 통감부에서 인수하였다. 통감부가 총독부로 바뀌면서 총독부중학교로 개편되었으며, 총독부 소유가 된 경희궁터에 기존 궁궐 건물들을 대부분 헐고 지형을 조정하여 교사를 신축하였다. 이후 1913년 경성중학교로 개칭되었고, 1925년 관리청이 경기도로 이관하면서 경성공립중학교로 개칭되었다. 해방 이후, 이 학교는 1947년 교명을 서울중학교로 개칭하였고, 1951년 서대문중학교로 다시 개칭하였다. 1953년 다시 서울중학교로 교명을 환원하였지만 1971년 중학교 평준화 시책에 따라 서울중학교를 폐교하고 고등학교 36학급을 편성하게 되었다. 이후 1979년 서초동 신축교사가 완성됨에 따라 1980년 경희궁터를 떠나게 되는데, 떠난 자리에 1984년 8월부터 정전인 숭정전지를 중심으로 발굴조사를 시행하여 숭정전과 그 주위의 전각들을 복원하였다.

경성중학교 평양분교는 경성중학교의 명칭을 사용하였던 1913년에서 1925년 사이인 1915년에 평양에 설립된 학교이다. 그러나 이 학교는 조선총독부관보에 의하면 1916년 4월 1일 폐지되었다. 학교가 설립된 후 이렇게 이른 시기에 폐지된 이유는, 1916년에 평양중학교가 설립되어 이 학교에 흡수통합되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현재국가기록원에 보존되어 있는 도면은 1915년경의 도면으로 가교실과 가기숙사 및 변소 관련 도면이다.
가기숙사는 당시 대대부 장교 합동숙사 부지의 모서리에 위치하였다. 당시 부지는 일본군 주둔지로서 그 대지의 일부에 가기숙사가 있었다. 그러나 이 건물은 당시에 평양분교를 위해 새로 신축한 건물이 아니라 군부대에서 사용하던 건물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추정의 이유는 우선 부지내의 정문의 위치가 합동숙사와 가기숙사 건물의 중앙에 있고 정문 쪽에서 철책이 설치되어 있는 형태가 추후에 설치한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숙사 건물의 좌측에 이미 변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변소를 새롭게 중축한 것은 이 건물의 사용 주체 및 인원이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 기숙사 건물을 위해 좌측에 따로 문을 설치한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가기숙사 건물이 완공되고 변소가 증축되는 상황에서도 아직 기숙사 대지의 정문이 없었다는 것(보통 다른 학교 건물공사에는 정문을 먼저 신설하거나 건물공사와 동시에 신설한다)은, 이 건물의 사용 주체가 달라짐에 따라 주변의 철책과 담을 구획하고 문을 새롭게 신설할 계획이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도판1] 참조)

가기숙사 건물은 일자형 건물로서 1층의 조적조 건물이다. 좌측은 숙소이고 우측은 취사장 등의 시설들이 위치하였다. 중복도를 중심으로 배열된 숙소는 두 가지 타입을 가졌다. 중복도의 위쪽은 큰실이 6실, 작은실이 2실 있고, 아래쪽은 작은실이 10실이 있었다. 따라서 당시 건축된 다른 학교의 기숙사들이 모두 같은 숙소의 타입을 가진 것과 비교할 때도 이 건물이 원래 학교 기숙사건물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좌측에는 변소가 있었고, 추후에는 따로 회랑으로 연결된 변소가 증축되었다.([도판2] 참조)

가교실의 건물은 평복도의 목구조 건물로서 중앙의 직원실을 중심으로 좌우측에 교실 1실이 위치하였다. 출입구는 복도의 단변 및 장변의 두 곳에 있었고, 외부에는 독립된 교실용 변소가 있었다.([도판3] 참조)
이를 통해 경성사범학교 평양분교를 추정해 볼 때, 이 학교는 1915년 당시에 완성된 학교건물을 가지지 않았다. 단지 목구조의 가교실과 군부대의 시설을 빌려 사용한 기숙사 건물이 있었을 뿐이었다. 개교한지 1년만인 1916년에 평양중학교가 개교하면서 그해 4월 1일에 평양분교실이 폐지되었고, 기숙사 건물은 다시 군부대 시설로 사용 되었을 것이다.

참고 : 한국교육시설학회, 한국 근대 학교건축 발달사(전편, 1895-1945), 2004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 http://www.history.go.kr



도판1. 경성중학교평양분교가기숙사변소기타신설배치도, 1915년경


가기숙사의 배치도이다. 가기숙사는 당시 대대부 장교 합동숙사 부지의 모서리에 위치하였다. 당시 부지는 일본군 주둔지로서 그 대지의 일부에 가기숙사가 있었다. 그러난 이 건물은 당시에 평양분교를 위해 새로 신축한 건물이 아니라 군부대에서 사용하던 건물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추정의 이유는 우선 부지내의 정문의 위치가 합동숙사와 가기숙사 건물의 중앙에 있고 정문 쪽에서 철책이 설치되어 있는 형태가 추후에 설치한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숙사 건물의 좌측에 이미 변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변소를 새롭게 중축한 것은 이 건물의 사용 주체 및 인원이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 기숙사 건물을 위해 좌측에 따로 문을 설치한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가기숙사 건물이 완공되고 변소가 증축되는 상황에서도 아직 기숙사 대지의 정문이 없었다는 것(보통 다른 학교 건물공사에는 정문을 먼저 신설하거나 건물공사와 동시에 신설한다)은, 이 건물의 사용 주체가 달라짐에 따라 주변의 철책과 담을 구획하고 문을 새롭게 신설할 계획이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도판2. 경성중학교평양분교가기숙사평면도, 1915년경


가기숙사 건물의 평면도이다. 이 건물은 일자형 건물로서 1층의 조적조 건물이다. 좌측은 숙소이고 우측은 취사장 등의 시설들이 위치하였다. 중복도를 중심으로 배열된 숙소는 두 가지 타입을 가졌다. 중복도의 위쪽은 큰실이 6실, 작은실이 2실 있고, 아래쪽은 작은실이 10실이 있었다. 따라서 당시 건축된 다른 학교의 기숙사들이 모두 같은 숙소의 타입을 가진 것과 비교할 때도 이 건물이 원래 학교 기숙사건물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좌측에는 변소가 있었고, 추후에는 따로 회랑으로 연결된 변소가 증축되었다.


도판3. 경성중학교평양분교가교실모양체급가변소신축공사설계도, 1915년경


가교실의 건물의 평면도 및 상세도이다. 이 건물은 평복도의 목구조 건물로서 중앙의 직원실을 중심으로 좌우측에 교실 1실이 위치하였다. 출입구는 복도의 단변 및 장변의 두 곳에 있었고, 외부에는 독립된 교실용 변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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