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폐사 관계철
조선총독부의 신사 정책은 신사에 관한 각종 규칙이 개정되는 등 남차랑총독 시기 크게 변하였는데 경성신사와 용두산 신사가 관폐소사로 격이 높아진 것도 이 무렵이었다. 총독부는 1937년 5월 대구신사와 평양신사를 국폐사로 고시하고, 1941년에는 광주신사, 강원신사를 그리고 1944년에는 함흥신사와 전주신사를 국폐사로 승격시켰다. 한편, 1939년 6월 총독부는 이른바 기원(紀元) 2천6백년을 기념하여 부여에 5개년 계속사업으로 총독부가 관폐대사 부여신궁을 창립하기로 결정(조선총독부고시 제503호)하였는데, 당시 부여신궁에는 ‘반도와 가장 인연이 깊다’는 이른바 응신(應神)천황, 제명(齊明)천황, 천지(天智)천황,신공황후(神功皇后)가 모셔질 예정이었다. 부여신궁은 패전으로 말미암아 완공을 보지 못했으나, 패전 직전 시기까지 조선에는 2개의 관폐사와 8개의 국폐사를 포함하여 1141개의 신사가 운영되고 있었다. 이 문서철에 편철된 39개의 문건은 대부분 관국폐사의 신축이나 운영과 관련한 문서(총독부 지령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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