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제1선 제2선 경찰배치표
이 기록물철은 조선총독부 경무국(警務局) 경무과(警務課)에서 1930년부터 1936년까지 국경지역 경찰의 배치상황에 대해 조사해 전반적인 통계표로 작성해 놓은 것이다. 2책으로 분책(分冊)되어 있는데, 문서 전체가 거의 표 형식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는 주로 〈국경경찰기관 일람표〉 등의 명칭으로 하여 1931년부터 1936년까지 ‘국경 3도’라 불리는 평안북도, 함경북도, 함경남도의 경찰배치 상황이 기재되어 있다. 조선총독부 경무국에서 각 도별로 〈국경 제1·2선 경찰관 배치표〉를 작성해 제출하라는 명에 따라 각 도별로 작성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평안북도지사, 함경북도지사, 함경남도지사가 〈국경 제1·2선 경찰관 배치표 제출의 건〉 등의 명칭으로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에게 보고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1920년대부터 두드러진 경찰관의 증가 현상은 1930년대 이후 일제가 대륙 침략을 감행하고 조선이 일제 침략전쟁의 병참기지로 전화하면서 더욱 뚜렷해졌다. 한편 이는 조선내와 국경 근처의 치안 및 경비계획의 강화와도 밀접히 관련되어 있었다. 일제가 1931년 강압적으로 만주를 침략한 이후 일본 내에서 전시체제에 대한 준비가 진행되고 식민지 조선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각종 정책이 변화하면서 만주와 한반도의 국경지대와 조선 내에 대한 경비가 강화되기 시작했다. 1936년도는 아시아지역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 되는 중일전쟁이 일어나기 한 해 전으로서 일본제국주의가 본격적 인 대륙 침략을 감행하기 위한 준비가 강화되던 시점이었다. 따라서 일제로서는 중국 대륙을 침략하는 발판이자 일본 본국과 ‘괴뢰 만주국’을 잇는 가교로서 한반도 지역이 제 기능을 다 해야만 자신들의 목적을 충실히 이룰 수가 있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1930년대 중반부터는 민족주의건 사회주의건 일체의 민족운동이나 사회운동이 모두 극심한 탄압을 받으면서 좌절되는 경우가 많았고, 조선 내의 치안과 경비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했다. 사회주의운동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민족주의계열의 브나로드운동 등 계몽적 색채를 띤 운동도 발붙일 여지가 없어졌다. 모든 사회활동은 일제의 어용적인 관제조직으로 포섭되어 가는 상황이었다 할 수 있다. 사상적으로도 일본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천황제 파시즘이나 군국주의 외에 민족주의나 서구의 자유주의 사상, 기타 여러 종교적인 사상 일체가 부정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주에서는 본격적인 항일무장투쟁이 준비되고 있었고, 이에 따라 일제측은 만주와 국경을 접한 한반도 북부지역에 대한 경비대책을 집중적으로 수립해야만 하였다. 함경남도와 함경북도, 평안북도는 이른바 ‘국경 3개도’라고 하여 그 계획이 가장 강화된 지역이었다. 이 기록물철은 1930년부터 1936년까지 일제측이 이 3개 도에 대한 경비대책을 어떻게 마련했는지를 알 수 있는 기본적인 자료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지역 특히, 국경 제1선, 제2선으로 설정된 지역에 배치된 경찰관원의 총수와 그 기관 등을 알 수 있는 집계표가 각도별로 작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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