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구획 배치에 관한 철
이 기록물철은 1937년 1월부터 12월까지 강원도지사 손영목(孫永穆), 김시권(金時權)·경상남도지사 하지(土師盛貞), 아베(阿部千一)·경상남도 경찰부장·경상북도지사 카미타키(上瀧基)·전라남도지사 마츠키(松木伊織)·전라북도지사 김시권(金時權), 손영목(孫永穆)·충청북도지사 김동훈(金東勳)·충청남도 경찰부장·함경남도지사 유무라(湯村辰二郞), 사사카와(笹川恭三郞)·함경남도 경찰부장·함경북도지사 코지마(兒嶋高信)·함경북도 경찰부장·경기도지사 간쇼(甘蔗義邦)·황해도 경찰부장·가나가와현(神奈川縣)지사·아이치현(愛知縣)지사·오사카부(大阪府)지사 등이 관내 경찰관서의 신설·개설·위치 변경·폐지·관할구역·경찰관 배치 등과 읍면 폐치와 경찰관할 등에 대해 조선총독·경무국장 및 일본 각지 관계 행정기관과 군부 등에 보낸 보고이다. 그리고 총독·정무총감·경무국장·경시청 등이 경찰관서의 신설·개설·위치 변경·폐지·관할구역·경찰관 배치 등에 대해 충청남도·평안남도·함경남도·함경북도 등의 경찰부장과 각 총독부 도청부현 및 일본 각지 관계 행정기관, 군부 등에게 보내는 통고가 있다. 1930년대에 들어와 일제는 세계공황으로 궁지에 몰린 일본 독점자본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대륙침략을 본격화해 갔다. 1931년 ‘만주사변’에 이어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으로 침략전쟁을 확대하면서 철저한 군국주의 파쇼체제로 나아갔다. 파쇼체제의 강화는 식민지 조선에서 군사력과 경찰력의 증강에서 시작되었다. 경찰병력은 1932년 2,948개 관서에 20,229명에서 태평양전쟁 발발기에는 3,212개 관서에 35,239명으로 증강시켜 파쇼통치체제를 뒷받침하도록 했다. 1937년도 13도 각 경찰서의 경찰관서의 신설·개설·위치 변경·폐지·관할구역·경찰관 배치 등 의 경찰제도 정비는 그 일환이었다. 이 기록물철에는 <경찰구획 배치 및 도순사정원 배치에 관한 건> 등의 보고서가 수록되어 있어 1937년 당시 각 도지사와 각도 경무부 경찰부장 등의 변동상황과 각도 경찰서의 직할·파출소·주재소 등의 위치·관할구역 등을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조선총독부 경찰제도의 전국적 분포양상을 살펴보는데 매우 유용하다. 또한 1937년이 조선에 전시강제동원체제가 구축되면서 조선에 주둔하는 일본군이 행정관서 등에 파견되면서 조선통치의 전면에 부상하는 시점이어서 이 시기 조선군과 경찰조직의 통치정책 결정과정, 역학관계 등의 변화를 추적하는데 기초자료로 활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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