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관계 서류철(국경)
이 기록물철은 조선총독부 경무국(警務局) 경무과(警務課)에서 1937년 당시 함경도, 평안도 등 국경지역을 중심으로 작성된 경비관계 서류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이 기록물철의 생산년도를 1938~1939년으로 적은 것은 잘못된 것이다. 원책의 표지에 있는 연도는 쇼와(昭和) 12년도(1937), 쇼와 13년도(1938)로 되어 있어, 1937~1938년이라고 해야 옳다. 하지만 이 문서의 본문에는 모두 1937년 1월부터 12월까지의 문건들로만 되어 있어서, 보다 정확하게는 1937년도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여기에 수록된 기록물들은 1937년 1월부터 12월까지 주로 함경남·북도와 평안북도 등 국경지역 도(道) 경찰부장이 경무국장 앞으로 보내는 보고 형식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예를 들어 함경북도경찰부장이 경무국장을 위시하여 제 19사단 참모장, 나남(羅南)헌병대장 등에게 보내는 형식의 것들도 수록되어 있으며, 그 밖에 여러 전보문 등도 실려 있다. 1937년이라는 시점은 일제가 그해 7월 7일 발생한 중일전쟁을 계기로 이후 식민지 조선을 그들의 전쟁 수행을 위해 전시 파시즘체제로 전환시키는 출발점에 해당되는 시기이다. 따라서 수록 문건들은 중일전쟁 전후한 시기에 일제가 만주 등 국경지역의 경비대책을 어떻게 강화해갔는가를 보여주는 자료들이라 할 것이다. 1931년 9월 ‘만주사변’을 계기로 한반도를 ‘병참기지화’하고 1937년 7월 중일전쟁으로 아시아지역에서 제 2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을 만든 일본제국주의는 이후 본격적인 침략전쟁을 개시했다. 이로써 일본 국내뿐만 아니라 식민지 조선 역시 그들의 전쟁 수행을 위한 전시파쇼체제로 정비되기 시작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조선의 모든 물적·인적자원을 그들의 침략전쟁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재정비한다는 의미로서, 이를 위해서는 특히 그 동안 식민통치를 통해 확보한 조선인이라는 인적 자원에 전면적인 통제를 가해야만 했다. 특히 국경지역은 전쟁지역과 가장 인접해 있어서 수시로 만주의 항일무장투쟁세력(당시 일제측은 주로 이를 ‘비적(匪賊)’이라 불렀다)과의 접전(接戰)이 있었으며 그들의 출몰(出沒)이 매우 잦았다. 또한 이 때문에 국경지역의 조선인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영향을 받기가 쉬웠고, 따라서 일제측은 그 지역을 ‘사상악화지대’라고 지칭하기도 하였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서 일제측은 1920년대 ‘문화정치’ 시기에 비해 1931년 만주사변 이후 경찰력을 대폭 증대했으며, 특히 국경 근처에는 더욱 많은 경찰관을 배치하여 경비를 철저히 하였다. 그 때문에 수록 문건들은 주로 국경지역의 경비 및 그 수비대에 관한 것이나 그것을 강화하는 것, 군대나 경찰관의 이동에 관한 것, 겨울철 결빙기가 되어 국경지역 강물이 얼어붙는 것에 대해 그 경비대책을 강화하는 것, 경비 관련 회의에 관한 것, 이른바 ‘비적(匪賊)’이라 불리던 만주지역 항일무장투쟁세력의 침투에 대비하는 것 등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 밖에도 제 19사단에 관한 것이나 신의주 비행장에 관한 것, 혜산(惠山)지역 수비대의 증원에 관한 것 등이 수록되어 있다. 모두 1930년대 들어 만주지역 조선인 항일무장투쟁세력과 그 활동이 강화되어간 것과 그 궤를 같이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측으로서는 이들 세력에 대한 경계 경비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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