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비관계 서류철(경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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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물철은 조선총독부 경무국(警務局) 경무과(警務課)에서 1939년도 전국 각지의 경비 관련 서류들을 엮은 것이다.
여기에 수록된 기록물들은 주로 1939년 1월부터 12월까지 전국 각도의 경찰부장이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앞으로 보낸 것들과 경무국장이 각도 경찰부장 등에게 보낸 것이다. 이 밖에도 경무국장이 각도의 도지사에게 보낸 것, 각 경찰서장이 경무국장에게 보낸 것, 또 서한(書翰) 형식의 몇 가지 문서와 상당량의 전보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일제는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줄곧 ‘사태 불확대’ 방침을 표방해 왔으나, 전쟁의 장기화로 결국 이 전쟁은 아시아지역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출발이 되었다. 1938년부터 국민정신총동원운동 등으로 본격화한 식민지 조선의 전시 파시즘체제는 이 시기에 들어와 한층 강화된 국민총력운동으로 전환하면서 조선에서의 인적·물적 동원, 조선민중에 대한 수탈과 압박이 더욱 가속화되었다. 결과적으로 이것이 1941년 12월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는 실질적 기반이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태평양전쟁 이후 더욱 가혹해진 일제의 각종 정책과 조선인에 대한 수탈·압박은 전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라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조선인은 일제가 허용하는 ‘천황제 이데올로기’와 일본의 국가주의, 군국주의 외에는 어떠한 사상도 가질 수가 없었고, 이에 조금이라도 반감을 가지거나 저항하는 일은 가차없는 처단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주 항일무장투쟁세력의 출몰이 잦았던 함경도와 평안도 등 국경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후방의 국내 전 지역도 일제의 치안 및 경비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항만시설이나 군사시설이 밀집해 있는 남부의 요항지(要港地)나 군 관계 특수지역에는 더욱 강력한 경비가 요구되었고, 이는 그 지역에 사는 조선인에게 더욱 강한 통제와 억압을 경험하게 하였다.
여기에 수록된 기록물들이 작성된 1939년이라는 해는 유럽에서 독·소전쟁(獨蘇戰爭)이 일어나고 일본과 독일, 이탈리아가 삼국동맹(三國同盟)을 체결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본격화되는 시기이다. 이로써 전 세계가 ‘파시즘 대 반파시즘 전쟁’이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파시즘진영에 속하는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인 조선의 민중들은 자신의 뜻과는 아무 상관없이 파시즘전쟁에 동원되었고, 일제는 이를 위해 조선 내 치안 및 경비를 더욱 강화하였다. 이 점에서 수록 문건들은 당시의 상황을 잘 반영한다 하겠다. 문서의 형식은 주로 당시 국경지역 뿐만아니라 한반도 남부의 각도에서 도(道) 경찰부장이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에게 보고하는 형식, 혹은 경무국장이 각도의 경찰부장에게 하달(下達)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문서들의 종류는 대체로 그 전 해인 1938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매우 다양하다.
이 기록물철에 수록된 기록물들은 1937년 개시한 중일전쟁이 예상외로 장기전으로 돌입하고 유럽에서는 독소전쟁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발전하던 1939년 상황에서, 일제가 대륙침략의 교두보인 조선의 경비에 대해 어떠한 정책을 취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자료들이다. 문서의 기본적인 형식과 내용은 1937년이나 1938년의 것과 유사하지만, 각 연도의 문서들을 상세히 살펴보면 나름대로 전황(戰況)의 전개에 따른 일제측의 긴박감을 잘 드러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