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사 임면 배치철
이 기록물철은1941년부터 1942년까지 조선총독부 순사의 임명과 배치관계를 다룬 서류를 모은 것이다. 조선인 순사 관련문건이 일부 포함되어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일본인 순사를 다루고 있다. 일본인 순사는 경찰관강습소에서 매월 1회 채용시험을 시행하였다. 그리고 일본의 3현(縣) 내지 4현을 하나의 모집구역으로 정하고, 시험장소는 구역내의 도시를 선정하여 파견된 모집관이 채용시험을 주관하였다. 시험 때마다 약 200명을 채용하여 입소교육을 시켰다. 조선인 순사는 각도 경찰부에서 채용시험을 치르는 외에도 지원자의 편의를 고려하여 필요한 경찰서에서 시험을 위탁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결원이 있으면 도에서 채용인원을 정하여 교습을 행하였다. 여기에는 경상남도 경찰관교습소의 교과목 및 일과표가 수록되어 있다. 형식과 내용상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부(府)순사출향(出向)배치건이다. 이 문건은 경무국장이 경찰관교습소장과 각 도지사에게 보내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경찰관교습소장에게는 교습을 마친 순사를 각도별로 몇 명씩 배치할 것인가를 통지하였다. 각 도지사에게는 교습을 마친 순사 몇 명이 해당 도로 배치된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아울러 일본인 순사배치표가 첨부되었는데 정원, 현원, 결원, 결원율, 배치인원 등이 도별로 기재되어 있다. 1942년도 배치표에는 결원에 전시소집응소자(戰時召集應召者) 현황이 추가되어 있다. 참고로 1941년 1월 현재 일본인 순사 정원 13,475명 중에 결원은 2,593명이었다. 1941년 12월 현재 정원 13,178명 중에 결원은 1,076명으로 줄었으나 응소자 1,234명을 포함하면 실결원은 2,319명이었다. 매월 교습생의 수가 120∼170여 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연초와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만성적인 경찰력의 부족현상은 전시소집으로 더욱 심해졌고, 새로 보충되는 경찰이 늘어남에 따라 경찰의 자질은 더욱 하락될 수밖에 없었다. 둘째로 경찰관강습소장이 각 도지사에게 보내는 출향순사통보가 있다. 여기에는 각도에 배치되는 순사의 명단과 출향일시, 출향당시의 봉급과 직명(職名) 등이 기재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임면배치에 관한 기타 문건들이다. 여기에는 사료적 가치 뿐만아니라 주목할 만한 문건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 기록물철은 대부분의 내용이 말단 순사의 임명과 배치, 그것도 도별 배치 현황만을 담고 있기 때문에 사료적으로 주목한 부분은 적다. 그러나 이 문서를 통해서 전시체제기에 일제가 만성적인 경찰력 부족에 허덕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순사 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본인 경찰의 모집에 노력하였지만 커다란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음을 발견할 수 있다. 결국은 전라북도의 사례에서 본 것처럼 충성스러운 조선인 경찰관의 양성을 통해 그 문제를 타개하려 했던 것이다. 이처럼 이 문서는 전체의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전시체제기 경찰이 직면한 문제의 하나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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