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구획 배치 관계철
이 기록물철은 대부분이 1941년부터 1942년까지 각도 지사와 경찰부장 등이 관내 경찰서·파출소·주재소의 명칭·위치·신축·담당구역 등의 변경에 대해 조선총독부 총독 미나미(南次郞)·경무국장 등에게 보낸 보고를 편철한 것이다. 이 밖에 일본 내의각 현 지사 등이 내무대신·각 청부현장관·소재지 지방판소장·소재지 검사국장·소재지 사단장·소재지 해군인사부장·소재지 헌병대장·소재지 각 경찰서장 등이 경찰서관할 구역 개정 등에 대한 보고로 이루어져 있다. 이 문서의 일부는 일본 경시청 등이 총독부 각 도청 부현·도쿄 형사지방구재판소와 동 검사국·근위사단·헌병 및 동부군사령부·도쿄 철도국·도쿄 도시체신국·황궁경찰부·도쿄시 등에 보낸 각도 경찰관서 위치·신축·이름 등의 변경에 대한 허가 문건도 있다. 각 문건에는 문서번호·문서 작성 연월일·문서 발신자·문서 수신자·문서 제목·문서내용·문서 수신 기관인 조선총독부 경무국 경무과의 직인 등이 찍혀 있다. 그리고 대부분 각도에서 작성한 관내 경찰관서의 신설·개설·위치 변경·폐지·관할구역·경찰관 배치 등에 대한 「고시」가 첨부되어 있다. 「고시」는 작성한 도지사나 경찰부장 명의로 되어 있고 고시 번호·고시 연월일·고시 제목·고시 내용 등으로 작성되어 있고 간혹관내 지도가 첨부되어 있는 문건도 있다. 1920년대 말 세계대공황이 엄습하자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대륙침략을 본격화함으로써 일본 독점자본의 돌파구를 찾았다. 이어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으로 침략전쟁을 확대시켜 나아가면서 일본 본국과 식민지 조선 등에 대해 군국주의 파쇼체제를 다져나갔다. 특히 식민지 조선에 대한 파쇼체제의 강화는 군사력과 경찰력의 증강을 통한 곡물·인력·자원 등 전시수탈체제의 정비와 사상통제, 조선 민족말살 정책인 황민화정책 등을 강행함으로써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야만적인 방법을 통해서 진행되었다. 특히 경찰력은 1932년 2,948개 관서에20,229명이었던 경찰수가 태평양전쟁 발발기에는 3,212개 관서에 경찰수가 35,239명으로 증강됨으로써 파쇼통치체제가 강화되도록 했다. 이 기록물철은 일제가 군국주의 파쇼체제기 식민지 경찰기구를 살펴보는데 유용하다. 즉1941∼1942년 기간 각도 지사, 경찰부장 등이 각도 관할 경찰서 직할·파출소·주재소 등의 위치·신설·폐지·배치인원·관할구역 등을 명기함으로써 지방 경찰기구의 분포상황, 임무, 역할 등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1937년 이후 조선에 전시강제동원 체제가 구축되면서 조선에 주둔하는 일본군이 행정관서 등에 파견되어 조선통치의 전면에 부상하는 시기였는데, 이 기록물을 통해 일본군과 경찰 조직의 통치정책 결정과정, 역학관계 등을 비교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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