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부근 도서사주에 관한 조사(1911년 4월)
이 기록물철은 1910년에 일제가 한국을 강점한 후, 청국과 러시아와의 국경지역에서 도서·사주의 영토귀속문제를 둘러싸고 빈번하게 일어난 분쟁과 교섭을 다루고 있다. 이들 도서·사주가 역사적으로 한국의 영유권에 들어있다는 근거와 이유를 제공하기위해 1911년에 일본은 압록강·두만강 중에 있는 신도열도(薪島列島), 신택평(新澤坪), 황초평(黃草坪), 유초평(柳草坪), 고이도(古珥島) 및 유다도(柳多島)부근의 사주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에 기초하여 그 자료를 한데 묶어서 편철한 것이다. 그리고 이 기록물철에는 앞부분에 서류의 목록과 함께 활자체로 된 총체적인 조사개요가 첨가되어 있으며, 그 내용에는 청국관헌의 조회문서, 지방관헌과 경찰서에서 작성한 현지에 대한 조사취정서 및 정보문 등 서류가 수록되었다. 그리고 이 기록물에는《신택평관계》(CJA0002291)에 편철되어 있는 서류가 중복되어 있는 부분도 있지만 새로운 사료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 시기에 일제는 한국을 병탄한 후 이미 오래 전부터 발생하고 있었던 청국과 러시아와의 국경문제에 대하여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1909년 11월 일제는 청국과 간도협약을 체결함으로써 간도의 영토문제를 일단 마무리 지었으나 국경지역에서의 분쟁은 비일비재로 발생했다. 이 시기의 국경문제는 주로 압록강·두만강에 있는 도서·사주를 중심으로 발생하였다. 분쟁지는 이주하여 들어간 한인들이 개간하였으므로 한국 영토로 인식되었지만, 경제적 가치와 국방적 가치를 인식한 청·러의 제기로 빈번히 발생하게된다. 이러한 분쟁과 교섭과정에서 일본은 과거의 한국영유권의 보존이란 미명으로 영토 확장의 야심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일제는 청국과 러시아와의 외교적인 교섭에서 우세를 점하기 위해, 분쟁의 대상이 되는 도서와 사주에 대한 실지조사를 진행하게되었고 그러한 조사를 통하여 영토소유권이 한국에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기록물철의 첫 부분에 있는〈국경부근 도주사주에 관한 조사〉는 압록강·두만강의 도서 및 사주를 크게 갑, 을, 병으로 분류하고 있다. 즉 청국국경 압록강 하류의 도서와 사주인 신도열도·신택평·황초평·유초평, 청국국경 두만강 중의 사주인 고이도 및 유다도 부근의 사주, 러시아 국경 두만강구 부근의 사주의 명칭 유래, 연혁, 면적, 인구 및 분쟁과 교섭과정을 개괄하여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압록강 하류 도서·사주에 관한 조사서〉에서는 압록강 하류에 소속되어 있는 도서·사주에 대한 현황조사 기록을 담고 있으나 위의 조사내용과 기본적으로 같다. 요컨대, 이 기록물철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한 국경지대의 도서와 사주에 대한 일본과 청국의 영토소속 분쟁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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