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사관 왕복
이 기록물철은 조선총독부 총독관방 외무부에서 1937년에 조선주재 각국 영사관 관계 자료를 편철한 것이다. 문서의 생산기관인 외사과는 7월「조선총독부사무분장규정」의 개정 결과 외무부로 변경되었다. 문서는 재경성 영국총영사, 재경성 미국총영사, 재경성 프랑스총영사, 재경성 소련총영사, 재경성 중국총영사, 재신의주 만주국영사, 재따렌(大連) 독일영사, 재경성 네덜란드명예영사 등이 외무부에 보낸 문서와 외무부에서 각 국 영사관에 보낸 것들이다. 문서는 영사관별로 편철되어 있고, 각 문서에는 외무부와 경무국, 재무국, 철도국, 식산국 등 총독부 부서들과 충청남도지사 등 지방관헌 등과 주고받은 부속문서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기록물철은 1937년 일본이 자국과 영사관계를 맺고 있던 나라들과 조선을 둘러싸고 전개된 외교관계 즉 친선을 목적으로 한 외교관계나 무역통상관계, 조선에 거주하는 외국인에 관한 문제 등과 관련된 자료이다. 특히 이 문서들은 1937년 7월 루거우차오(蘆溝橋) 사건을 계기로 발발한 중일전쟁과 이로 인한 급박한 극동정세 속에서 변화해 가는 일본의 대외정책은 물론, 이에 대응하는 국제적 이해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1931년 만주를 침략한 일제는 식민지 조선을 대륙병참기지로 전환시켜 가는 가운데 본격적인 대륙침략을 준비하였다. 1930년대 중반 이후 일본, 독일, 이탈리아 세 나라는 서로 다양한 조약을 맺으며 동맹관계를 구축해 나갔다. 1937년 7월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8월초 텐진(天津)과 베이징(北京)을, 12월에는 국민당정부의 수도인 난징(南京)을 차례로 점령하였다. 일제의 중국침략으로 변화된 정세에 대해 구미 열강들도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여 나갔다. 즉 독일과의 서부 전선에 관심이 집중되었던 소련은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오히려 일본을 중국과의 전쟁에 묶어두어 동부전선을 안정화시키려 하였을 뿐, 일본과의 전면적인 대립을 원치 않았다. 한편 전통적으로 일본과 제국주의적 동맹 관계를 유지해 온 미국, 영국도 일본의 대륙침략에 대해 유화적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이 기록물철은 이러한 국제적 이해관계를 배경으로 일본이 점차 독일 등과 관계를 강화해 나가는 대외정책의 추이를 그대로 보여주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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