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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대국민 기록정보 서비스 및 기록문화 확산을 위해 매월 시의성 있는 주제를 선정하여 관련된 기록을 소개합니다.

  1. 01월
    매주 수요일, 토요일을 '분식의 날'로 지정
  2. 02월
    부흥부 산업개발위원회 경제개발 3개년 계획
  3. 03월
    3월 22일 '물의 날'
  4. 04월
    4월 20일 '장애인의 날'
  5. 05월
    5월 8일 '어버이날' 제정
  6. 06월
    1950년 유네스코 가입
  7. 07월
    1971년 그린벨트 첫 지정
  8. 08월
    1974년 서울지하철 1호선 개통
  9. 09월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10. 10월
    1957년 10월 9일 '조선말 큰사전' 완간
  11. 11월
    1986년 남극조약 가입
  12. 12월
    1968년 광화문 복원
본 콘텐츠는 2007. 6월 ~ 2017. 12월 개발된 콘텐츠입니다.
2009년 12월

1968년 광화문 복원

1968년 12월 11일 광화문이 복원되었다.

폐허로 남아있던 광화문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光被四表 化及萬方(빛이 사방으로 덮고 교화가 만방에 미치다)"라는 『서경(書經)』 구절에서 유래한 광화문(光化門)은 태조 8년(1399) 조선 왕실과 국가의 권위를 상징하던 경복궁의 정문으로 세워졌다.

광화문 앞에는 의정부와 육조의 관청들이 늘어선 육조대로가 있었는데, 이처럼 광화문은 궁문이라는 건축학적 의미와 관청들을 거느리고 왕실의 의식을 거행하는 자리라는 상징적 의미의 정치공간이었다. 이후 6백여 년 동안 광화문은 세워지고 해체되기를 반복하면서 한국사의 정치적 기억들을 간직한 무대가 되어왔다.

1968년 12월 11일 광화문이 복원되었다.

폐허로 남아있던 광화문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光被四表 化及萬方(빛이 사방으로 덮고 교화가 만방에 미치다)"라는 『서경(書經)』 구절에서 유래한 광화문(光化門)은 태조 8년(1399) 조선 왕실과 국가의 권위를 상징하던 경복궁의 정문으로 세워졌다.

광화문 앞에는 의정부와 육조의 관청들이 늘어선 육조대로가 있었는데, 이처럼 광화문은 궁문이라는 건축학적 의미와 관청들을 거느리고 왕실의 의식을 거행하는 자리라는 상징적 의미의 정치공간이었다. 이후 6백여 년 동안 광화문은 세워지고 해체되기를 반복하면서 한국사의 정치적 기억들을 간직한 무대가 되어왔다.

광화문은 임진왜란(1592) 때 불탄 것을 1865년 고종 때 중건되었으나 일제강점 후 일제가 조선총독부 청사를 경복궁에 짓기로 결정하면서 광화문이 총독부 앞을 가린다는 이유로 완전 철거가 추진되었다. 그러나 반대여론에 부딪히자 일제는 이듬해인 1927년 광화문을 헐고 경복궁 동문인 건춘문(建春門)의 북쪽(현재 국립민속박물관 정문 자리)으로 광화문을 옮겼다.

경복궁 안에 청사를 짓는 계획은 경성(서울)의 중심부라는 기능성도 있지만 무엇보다 조선의 정궁 파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었다. 그후 광화문은 전쟁(1950) 중 폭격으로 경복궁 동편에 석축만 남고 불타 없어졌고 20여 년 동안 폐허로 방치되어 있었다.

일제에 의해 제자리를 잃어버리고 전쟁으로 흉물스럽게 방치된 광화문을 경복궁 앞으로 다시 세운 사람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1968년 광화문이 복원됨으로써 폐허로 남아있던 광화문이 제자리를 찾는 과정이 시작되었지만 목조건물이던 누각은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상징물이었던 철제 콘크리트로 대체되었다. 또한 복원된 광화문은 당시 중앙청으로 사용하던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가리기 위해 총독부 청사 축에 맞춰지면서 원래 위치에서 북쪽으로 11.2m, 동쪽으로 13.5m, 경복궁 중심축에서 3.75도가 틀어졌다.

1968년 광화문 복원은 온전한 복원은 아니었지만 일제식민지배의 상징인 조선총독부라는 일제의 잔상을 해체하고 국가재건·경제건설을 표상하고자 했던 시도였다.

1990년대 들어 경복궁, 광화문, 육조대로로 이어지는 공간을 복구하기 위한 일련의 작업들이 시작되었다. 1991년 ‘경복궁복원기공식’, 1995년 조선총독부 첨탑 제거, 그리고 1996년 10월 조선총독부 건물 완전 해체가 이루어졌다. 조선총독부 건물이 사라지게 되면서 경복궁의 정전(正殿)인 근정전과 광화문이 공간적으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1865년 광화문 중건과 같은 날인 2009년 11월 27일 광화문 상량식(上梁式)이 거행되었다. 광화문은 서쪽으로 10.9m, 남쪽으로 14.7m 떨어진 창건 당시의 원래 자리에 복원될 예정이다. 또한 누각은 문화재급 목공장들에 의해 19만 재(가로 세로 각 3cm, 길이 3.6cm의 목재를 나타내는 단위)의 목재를 사용한 소나무 누각으로, 각도도 지금보다 남서쪽으로 5.6도 정도 재조정되어 2010년 완공될 예정이다.1960년대 이후 오늘까지 진행된 일련의 광화문 복원은 광화문의 제위치를 찾아가는 동시에 비틀어졌던 우리의 역사·전통을 바로잡아 가는 과정이었다. (공개서비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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