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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기세관지서

웅기세관지서는 1908년 함경북도 경흥군에 원산세관 산하로 개설된 웅기세관감시서(監視署)를 계승하였다. 1921년 5월 27일에 조선총독부령 제95, 96호에 의하여 웅기세관지서로 승격되었고, 이전까지 청진세관지서의 관할 구역어었던 함경남도 경흥군과 경원군을 담당하였다. 1922년부터 웅기세관지서의 청사, 상옥(上屋), 하장장(荷場場), 잔교(棧橋) 등의 시설물이 준공되어 운영이 시작되었다. 현재 국가기록원에는 웅기세관지서에 관련된 14매의 도면이 소장되어 있다.

명칭 연도 도면수
웅기세관지서(원위치) 1921 ~ 1940 7매
웅기세관지서(이전후) 1940 ~ 1945 7매

1922년에 개원한 웅기세관지서의 배치 계획은 [도판1]에서 살펴볼 수 있다. 대지는 바다에 면하여 바다와 육지의 양쪽에서 바로 출입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2,435평의 사각형의 부지 내부는 십자 가로로 구획되었다. 바다 쪽에 면한 곳에는 옹벽을 설치하여 간조에 대응하도록 하였고, 육지에 면한 삼면에는 철조망을 세웠다. 부지의 좌측하단에는 세관을 통과하는 물품들을 보관하는 상옥(上屋, 또는 上家, 임시건물)을 가로로 길게 배치하였으며, 세관지서의 청사는 우측 상단 모서리 부분에 배치되었다.

청사 건물의 계획안은 [도판2]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면너비 48척(14.4m), 측면너비 36척(10.8m)의 규모를 가진 단층 목조 건물로 계획되었다. 변소를 측면에 독립되어 계획되었고, 본 청사와 복도로 연결되었다. 박공지붕이 설치된 중앙 현관을 경계로 오른쪽 부분에는 세관지서의 주요 업무를 담당하는 사무실과 검사실을 크게 계획하였고 왼쪽 부분에는 탕비실, 숙직실, 응접실 등의 부속시설을 배치하였다. 사무실과 검사실 칸막이벽에는 큰 창문을 두어 사무실에서 검사실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였으며, 검사실은 바닥 높이를 낮추어 외부와의 출입이 용이하도록 계획하였다. 검사실은 외부로부터 2개소의 출입문을 통해 출입할 수 있었으며, 응접실과 사무실로도 출입할 수 있는 여닫이문이 설치되었다. 전면 현관의 왼쪽 부분에 부속실인 탕비실이 크게 독립된 실을 갖추고 배치되어 있는 것은 특징적이다. 탕비실에는 바닥에서 불을 지피는 로(爐)가 계획되었다. 청사의 입면은 시멘트모르타르로 마감되었는데, 창문 아래쪽의 벽체는 타일로 마감된 것으로 보인다. 청사에 부속된 화장실은 누름대비늘판벽으로 마감되었다.

통관 물품을 보관하는 상가(上家)는 길이 120척(36m), 너비 30척(9m) 규모의 목조 건물로 계획되었다.([도판3] 참조) 앞뒤로 세 쌍식 총 6개의 양쪽개폐 여닫이문을 계획하였고 출입용 여닫이문에는 작은 눈썹지붕을 설치하였다. 지붕가구는 9m의 경간에 대응하기 위해서 짧은 보를 주먹장부로 연결하고 볼트로 긴결하도록 하였다. 외벽은 독일식 비늘판벽으로 마감되었다. 이후 구조적 보강을 위해 외벽에 등간격으로 버팀대를 설치하도록 설계안이 변경되었는데, 해당 도면에는 ‘대정11년(大正11年)’이라는 문구가 기재되어 있어, 1922년 시설물들이 준공되었다는 기사와 일치함을 확인할 수 있다.([도판4] 참조)

1940년에는 웅기세관지서의 신축계획안이 작성되었다. 당시의 계획안이 같은 장소에 개축하기 위한 것인지 또는 새로운 장소에 신축하기 위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1940년에 작성된 [도판5]의 배치도에서는 이전과 다른 형상의 청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새로 계획된 청사구역은 세관지서의 정문 바로 옆에 청사를 두었고 청사 남쪽으로 세관구역을 설정해 두었다. [도판6]에서는 규모가 확대된 새로운 청사건물의 계획안을 확인할 수 있다. 현관부분이 따로 없는 것이 특징이며, 실제로 건물의 출입은 검사장을 통해서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검사장은 사무실 및 감시계사무실과 서로 인접하게 배치되었고, 각각은 복도를 통해서 출입하도록 계획하였다. 감시계사무실, 사무실, 응접실 겸 신문실(訊問室)은 지면보다 높은 마룻바닥으로 계획되었고, 검사장을 비롯한 부속공간 부분은 콘크리트 바닥판으로 계획되었다.([도판7] 참조) 특히, 사무실 부분에는 지붕의 일부를 들어 올려 고창(高窓)을 만들고, 채광이 용이하도록 계획하였다.([도판8] 참조) 다만 고창 아랫부분에 천장으로 추정되는 구조물이 기재되어 있어, 실제의 채광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벽체는 벽돌조를 채택하고 목조트러스의 지붕가구를 받도록 하였다. 외벽은 이전의 웅기세관지서 청사와 마찬가지로 시멘트모르타르로 마감되었고, 창문 아랫부분의 벽체는 타일로 마감되었다.

[참고도판]
  • 도판1. 웅기세관지서청사문신설설계도/7, 1921-1922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2. 웅기세관지서청사기타설계도/1, 1921-1922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3. 웅기세관지서상가신축공사설계도/3, 1921-1922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4. 웅기세관지서청사기타신축공사내설계변경도/2, 1922상세보기
  • 도판5. 웅기세관지서청사시타신축공사배치도, 1940상세보기
  • 도판6. 웅기세관지서청사(기타신축)공사설계도/2, 1940상세보기
  • 도판7. 웅기세관지서청사기타신축공사설계도/3, 1940상세보기
  • 도판8. 웅기세관지서청사기타신축공사설계도/4, 1940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