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청사(광화문)치안시설·전매시설

전매지국 파출소

『조선총독부 및 소속관서 직원록(朝鮮總督府及所屬官署職員錄)』에 기록된 파출소 직원 목록의 분석을 통해 연도별 파출소의 설치 현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23년 애소 1932년까지의 도면을 보여주는 표
연도 1923 1924 1925 1926 1927 1928 1929 1930 1931 1932
전매지국
파출소
78 92 71 35 33 38 40 41 40 42
1933년 에서 1941년 까지의 도면
연도 1933 1934 1935 1936 1937 1938 1939 1940 1941
전매지국
파출소
44 42 46 47 48 54 58 18 18

직원록의 기록을 살펴보면 파출소는 1923년부터 설치되기 시작하여 1924년 92개소로 가장 많은 수의 파출소가 설치되었으나, 이듬해부터 주요 지역의 파출소가 출장소로 격상되면서 절반이 넘는 파출소가 폐지되어 이 후로는 대략 평균 40여 개소의 파출소가 운영되었다. 한편, 1926년부터 39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파출소 설치는 꾸준한 증가를 보이는데, 이는 1931년 7월 1일부터 연초의 직영 판매를 시행하게 됨으로써 지국과 출장소 등이 판매 사무를 함께 수행하게 된 한편, 1936년 전매지국이 지방전매국으로 개칭되는 것과 더불어, 엽연초 생산 증가, 아편사무인수 등 전매국의 사업이 꾸준히 확장하였던 것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가기록원에는 전매지국 파출소와 관련하여 6개 시설에 대한 27매의 도면이 소장되어 있다. 자세한 내역은 다음의 표와 같으며, 평안남도 1개소, 평안북도 1개소, 함경북도 4개소의 전매지국 파출소와 관련 파출소의 도면이 확인된다.

전매지국 파출소와 관련 파출소의 도면
명칭 연도 지역 도면수
조선총독부 탁지부 전매과 광량만출장소 진남포파출소 1915~1921 평안남도 3
조선총독부 전매지국 강계파출소 1923~1929 평안북도 1
조선총독부 전매지국 삼봉파출소 1923~1945 함경북도 6
조선총독부 전매지국 무산파출소 1923~1945 함경북도 9
조선총독부 전매지국 훈융파출소 1923~1945 함경북도 6
조선총독부 전매지국 회령파출소 1923~1945 함경북도 2

* 연도는 ‘『朝鮮總督府及所屬官署職員錄』, 1910~1941’을 참고로 조사하였다. 다만, 직원록이 1941년까지만 확인 가능하므로, 그 이후는 유지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현재 국가기록원 소장 전매지국 파출소 도면은 1923년에 작성된 회령 전매국 파출소 현관 설계도와 1923년에서 1925년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평양전매지국 강계파출소 신축배치도 2매를 제외한 21매가 모두 1934년과 1935년에 작성된 도면이며, 전매국 설립 전 1919년 작성된 진남포파출소 관련 도면이 3매 있다.

전매지국 파출소는 청사 1동, 관사 1동을 소규모로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도판 1]은 1935년에 작성된 삼봉파출소의 배치도 및 청사의 계획변경도이다. 배치도를 살펴보면 관사 1동과 청사 1동이 독립적으로 계획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관사와 청사가 독립적으로 계획된 배치는 무산파출소와 훈융파출소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1920년대 초중반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강계파출소의 경우 관사와 청사가 한 건물로 계획되어 차이를 보인다.([도판 2] 참조) 이렇게 관사와 청사가 한 건물에 있다가 분리되는 계획적 변화는 다른 관영시설의 지방청사 계획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한 예로, 측후소의 경우, 1910년대 후반에 이러한 양상이 확인된다. 무산파출소의 경우 창고를 배치한 것이 특이한 점인데, 무산이 유명한 담배 생산 지역이었던 것과 청사에 판매소가 계획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창고는 수매한 담뱃잎의 보관과 판매를 위한 담배를 저장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도판 3] 참조)

청사는 모두 단층 양식목조 건물로 계획되었다. 그러나 시기별로 입면의 마감방식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1923년 작성된 회령파출소의 도면은 건립된 청사의 전면에 현관부를 증축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 상세도를 통해서 벽체가 비늘판벽으로 마감되어 있음이 확인된다. 반면, 1934년과 1935년에 작성된 다른 파출소의 도면에서는 모두 모르타르 바름 방식이 사용되고 있음이 확인된다.([도판 4], [도판 5] 참조) 이러한 입면마감의 변화는 세관시설 중 세관출장소 도면에도 나타나는 것으로,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선호되었던 입면마감이 달랐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를 통해 시대의 흐름에 따른 계획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 다른 전매지국 파출소 청사의 계획적 특징으로는 공통도면의 사용을 들 수 있다. 도면을 확인해 보면, 삼봉파출소와 훈융파출소 청사의 평면 계획은 완전히 동일하다. 이 밖에도 두 파출소의 표문과 게시장의 계획 역시 동일하다. 이는 다른 소규모 관립 시설의 신축에서도 나타나는 조선총독부 건축기구 설계 방식의 특징이기도 하다.([도판 6] 참조)

이를 바탕으로 일반적인 전매지국 파출소 청사의 평면 계획을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전면에 큰 공간의 사무소를 두고, 뒤편에 온돌방, 탕비실, 화장실 등의 부속가를 두는 특징을 보이며, 전면의 사무소의 규모를 가장 크게 계획하므로 전체적인 평면 형태가 凸자 모양을 가지고 있다. 다만, 무산파출소의 경우 판매소를 겸하고 있었으므로 청사 전면을 더 크게 계획되어 있는 점이 조금 다르며, 이를 양분하여 각각 사무소와 판매소로 사용하였다.([도판 7] 참조)

한편, 삼봉, 훈융파출소의 청사 설계변경도의 주요 내용은 사무실과 온돌방의 창문에 창을 하나 더 덧대어 시설하는 것이었다. 이 뿐만 아니라 삼봉, 훈융, 무산파출소 관사의 설계변경에는 난로 시설에 관한 사항도 포함되어 있다. 이는 청사가 설치되는 함경북도의 추운 날씨를 고려한 설계변경으로 초기계획이 1년 후 현실적으로 조정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한편, 국가기록원 소장 도면 중 진남포 파출소 관련 도면 3매는 1919년에 작성된 것이다. 이 도면에 계획된 진남포 파출소는 전매국이 설치되기 전 탁지부 전매과 광량만출장소 휘하의 파출소이며, 1921년 전매국 설치 이후에도 잠시 유지되다가 1925년 출장소로 격상된 것으로 파악된다.

1919년 작성된 도면에서 보이는 진남포 파출소는 양식목조 단층 건물로 누름대 비늘판벽으로 마감하는 등 구조나 입면 마감에서는 앞서 설명한 전매지국 파출소와 차이가 없지만 평면의 형태와 사용면에서는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이는 진남포 파출소가 수행한 업무에 기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진남포 근처 광량만 일대는 천일제염업이 일찍부터 발전한 지역으로 일제강점기 주요 소금산지였다. 담배를 주요 품목으로 다룬 삼봉, 무산, 훈융, 회령, 강계 등과는 달리 진남포 파출소는 광량만 일대에서 생산되는 소금의 전매와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도판 8]은 진남포 파출소 주변의 상황을 보여주는 배치도로 파출소 주변에는 세관과 함께 1호부터 10호까지의 소금 저장 창고가 배치되어 있어, 진남포 파출소의 업무를 추측케 한다. [도판 9]를 통해서 대규모 시설단지 내에 시설된 파출소의 평면계획을 살펴 볼 수 있다. ‘ㄴ’자 평면으로 구성하여 전면에 사무실과 응접실 겸 표품실(標品室)을 두고, 표품실 뒤로 길게 숙직실, 전화실, 변소, 탕비장 등을 복도로 연결하여 계획하고 있다.

[참고도판]

  • 도판1. 전매국삼봉파출소청사급관사신축기타공사지내일부설계변경도 / 일부설계변경도 / 7, 1935 상세보기
  • 도판2. 평양전매지국강계파출소신축배치도, 1923~25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3. 전매국무산파출소청사기타신축공사정호기타입지변경도 / 입지변경도 / 10호, 1935 상세보기
  • 도판4. 회령전매국파출소현관설계도, 1923 상세보기
  • 도판5. 전매국삼봉파출소청사신축기타공사설계도 / 건도평면기타도 / 2, 1934 상세보기
  • 도판6. 전매국무산파출소청사기타신축공사설계도 / 건면급평면각부기타도 / 2호, 1935 상세보기
  • 도판7. 전매국훈융파출소청사급관사신축기타공사지내일부설계변경도 / 일부설계변경평면급상세도 / 5, 1935 상세보기
  • 도판8. 진남포파출소청사기타신축공사배치도 / 7, 1919 상세보기
  • 도판9. 탁지부전매광량만출장소 / 진남포파출소신축공사설계도 / 5, 1919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