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청사(광화문)치안시설·전매시설

충청북도 무덕전

무덕전(武德殿)은 1895년 무도교육을 통한 국민의식 일치화를 목적으로 일본에서 설립된 대일본무덕회(大日本武德會)의 연무장에 붙여진 이름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군비확장과 국력신장에 힘을 쏟았던 세계적 흐름 속에 일본에서는 부국강병의 일환으로 전통무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1895년 청일전쟁의 승리로 일본 내 국가주의가 크게 대두되고, 일본 정부가 강력한 중앙집권적 체제 구축의 일환의 하나로 무도를 통한 국민의식 일치화를 내세우게 되면서, 무도교육을 전담할 통합적인 조직 체계의 필요성이 강조되었다. 대일본무덕회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군부와 경찰이 중심이 되어 창설되었으며, 1909년 재단법인화를 거치면서 전국적인 조직으로 발전하였고, 1942년에는 정부의 외곽 단체로 재편되기에 이른다. 대일본무덕회는 전국의 무도단체를 통합하여 통일된 조직 체계를 만들고 각 지부에 무덕전을 건립하여 본부 및 연무장으로 삼고, 무도 단체들을 직간접적으로 통제하였다.

대일본무도회는 1924년 조선에 지방본부를 설치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조선 내 무덕전이 건립된 지역을 신문기사를 통해 살펴보면, 경성, 경상남도 부산, 경상북도 대구, 전라북도 전주, 전라남도 광주, 충청북도 청주, 평안남도 평양, 평양북도 선천, 함경남도 함흥, 황해도 송화 등에 설치된 무덕전이 확인된다. 신문기사는 무덕전의 신축, 낙성식 등 무덕전의 건립에 관한 소식과 무덕전에서 있었던 행사 개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에 따르면 무덕전에서는 강연회, 좌담회, 무도대회, 도의회 등 많은 수의 사람이 실내에 모일 필요가 있는 행사들이 열려, 무덕전의 규모와 그 쓰임새를 짐작하게 한다.

현재 국가기록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무덕전 관련 도면은 모두 11매로 모두 충청북도 무덕전과 관련된 도면이다. 1932년 12월 9일자 동아일보에는 충청북도 무덕전 건설을 위해 모금을 계획하였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려 있으므로 충청북도 무덕전은 도면이 작성된 1933년에 착공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충청북도 무덕전 관련 도면의 현황은 다음과 같다.

충청북도 무덕전 관련 도면
명칭 연도 지역 도면수
충청북도 무덕전 1933~1945 충청북도 청주 11

국가기록원에 소장된 충청북도 무덕전 관련 도면은 모두 11매이다. 이 중 8매가 무덕전 신축을 위한 설계도이며, 각각 단면도 1장, 입면도 1장, 평면도 1장, 상세도 3장, 철근상세도 1장, 설비도 1장(전등)이다. 이 외에 정문 및 숙사와 관사의 건립에 관련된 도면 3장이 있다.

충청북도 무덕전은 건축 면적이 165.37평이고, 연면적이 210.37평에 달하는 비교적 대규모 건물이다. 평면은 장방형으로 장변 120척(尺)(약 36.36m), 단변 52척(尺)(약 15.76m)의 규모이며, 지붕을 제외한 벽체의 높이가 25.65척(尺)(약 7.77m)으로, 전체 건물의 높이는 대략 10m 정도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도판1], [도판2] 참조)

평면 계획도인 [도판1]을 살펴보면, 무덕전은 중앙에 112평의 넓은 도장을 두고 양 옆으로 부속실을 두는 구성으로 계획되었음을 알 수 있다.[도판1]에는 무덕전의 기초 및 1층과 2층 평면도가 기재되었으며, 각 층에는 공간의 용도가 기록되었다.

도장은 무덕전의 중심 공간으로 내부에 기둥이 하나도 없는 단일한 대형 공간이다. 바닥은 나무판을 깐 마루로 만들었으며, 천정도 높게 하여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도록 계획되어 있다.([도판2] 참고) 또, 정면 현관의 반대쪽 벽에는 감실이 계획되어 있고, 건물의 오른쪽으로는 무대가 설치되어 있다. 흥미로운 점은 감실과 무대가 장축과 단축의 축성을 형성하여, 건물 내부에서 두 개의 정면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두 정면은 그 성격에도 차이를 보인다. 감실의 건축형식을 살펴보면 바깥에 미닫이문을 설치하고 그 내부에 홍송(紅松)과 장식철물 등 고급 재료를 사용한 벽장을 두는 등의 매우 위계가 높은 계획 방식으로 되어 있다. 즉, 오른쪽에 마련된 무대에 비해 권위적인 성격이 큰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무대가 가지는 정면성이 실용적인 측면을 고려한 것인 반면, 감실은 매우 상징적으로 계획된 것임을 알려준다. 두 정면은 무덕전에서 행해진 행사의 성격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도장이 통층의 단일 공간으로 계획된 반면, 양 옆의 부속실은 2층으로 구성되었다. 도장의 오른편부터 살펴보면, 1층은 건물 측면으로부터 진입이 가능하도록 현관을 만들고, 현관 안쪽으로 홀을 두었다. 오른쪽에 별도의 현관을 둔 것은 건물의 왼쪽 내부에 무대가 있기 때문으로, 무대를 정면으로 하여 행사가 진행될 때를 고려한 계획으로 볼 수 있다. 홀의 양 옆으로 사무실과 대기실(控室)을 두었는데, 대기실에는 다다미가 깔려 있다. 2층은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왼편에 마련된 계단을 통해 진입이 가능하다. 2층은 벽을 치지 않은 빈 공간으로, 도면에는 예비실로 기재되어 있다. 건물의 측면 쪽으로 5개의 창이 설치되었고, 정면과 배면방향으로도 2개씩의 창을 두었다. 흥미로운 점은 건물 내부 도장 쪽으로 뚫어놓은 5개의 구멍이다. 이 구멍은 영사(映寫)와 시찰(視察)을 위한 구멍으로 표기되어 무덕전이 도장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용도로 계획되었음을 보여준다.([도판4] 참고)

한편, 도장의 왼편으로는 중앙에 무대가 시설되었고, 그 양 옆으로 부속실이 마련되었다. 1층에는 내빈실(來賓室) 2개가, 2층에는 예비실 2개가 계획되었으며, 1층의 내빈실 중 건물의 전면 쪽에 있는 내빈실은 무대와 직접 연결된다. 이는 무대 행사가 있으면 이 내빈실이 행사를 준비하거나, 참여하는 사람들의 대기실로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더욱이 무대 뒤에는 6척(尺)(약 1.8m) 폭의 복도가 마련되었고, 내빈실과 연결되어 무대행사를 위한 동선이 고려되었음을 알 수 있다. 2층은 복도에 설치된 계단을 통해 올라가도록 하였다. 1층의 내빈실 상부에는 준비실이 있으며, 1층에 무대가 설치된 부분은 다락처럼 구성하고, 복도와 준비실에서 접근할 작은 문을 두었다.([도판3] 참고) 이 다락에는 조명 등의 무대설비가 시설되었다. [도판7]은 전등 설비를 위한 상세도로 무대 단면과 함께 천정 조명 및 무대 조명의 상세와 위치 등이 기재되었다.

입면 계획에는 관(官) 주도의 행사가 빈번하게 개최되었던 무덕전의 관립 시설로서의 위상이 잘 표현되었다. 2.9척(尺)(약 0.9m) 높이의 석조로 마감된 기단이 건물 전체를 받치고, 정면에는 도장의 폭 만큼을 등분하여 반원형의 콘크리트 기둥을 만들고, 그 사이를 창으로 마감하였다. 이 정면 중앙의 벽체는 가로로 긴 처마로 나뉘어 2단으로 구성되는데, 마치 한국이나 일본의 중층 목조 전각을 떠올리게 한다. 또, 기와로 된 처마, 지붕 끝단에 표현된 서까래, 기둥의 머리, 그 사이에 표현된 주두 및 창방과 평방, 거대한 우진각 지붕에 표현된 용마루와 내림마루 등 한국 혹은 일본의 전통적인 권위건축물의 외양이 보여 눈길이 간다. 이는 무덕전의 관립시설로서 위상을 전통적인 권위건축물의 양식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도판3], [도판5] 참고)

한편, 무덕전의 구조는 벽돌조와 철근콘크리트조의 혼합 구조로 계획되었다. 도장이 계획된 건물의 중앙부는 철근콘크리트 기둥을 사용한 구조지만, 그 양 측면의 부속실들은 벽돌조를 기본으로 계획되었다. 이외에, 기초, 층 사이의 보와 바닥판은 철근콘크리트로 계획되었다. 건물의 몸체부가 철근콘크리트의 구조를 지녔던 반면에, 지붕은 목조 트러스로 경사지붕을 구성하였다. [도판8]은 배근 상세도로 보와 바닥판의 철근 배근 방법을 기재한 도면이다.

충청북도 무덕전 신축 계획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특징적인 점은 건물을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기 위한 계획이 반영되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특징은 도장 내부의 두 개의 정면 설정, 정면과 오른쪽에 설치된 두 개의 현관, 오른쪽 부속실 2층에 시설된 영사창(映寫窓) 등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실제로도 무도대회 이외에 좌담회·강연회·도의회 등 관 주도의 여러 가지 행사들이 열렸음을 신문기사를 통해 확인한 바 있다. 또 하나 특징적인 점은 정면에 전근대 시기의 전통적인 중층 목조 건축의 양식을 사용하여 그 권위를 표현한 점이다. 특히 이러한 표현을 콘크리트가 가지는 자유로운 조형성으로 해결하는 점은 근대기 양식건물에 반영된 전통 건축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참고도판]

  • 도판 1. 충청북도무덕전신축공사설계도 / 각평면기타도 / 1, 1933 상세보기
  • 도판 2. 충청북도무덕전신축공사설계도 / 구계기타도 / 3, 1933 상세보기
  • 도판 3. 충청북도무덕전신축공사설계도 / 정면급배면좌우측면각복기타도 / 2, 1933 상세보기
  • 도판 4. 충청북도무덕전신축공사설계도 / 7, 1933 상세보기
  • 도판 5. 충청북도무덕전신축공사설계도 / 각상세도 / 4, 1933 상세보기
  • 도판 6. 충청북도무덕전신축공사설계도 / 각부상세기타도 / 6, 1933 상세보기
  • 도판 7. 충청북도무덕전신축공사설계도 / 전등중심식기타도 / 5, 1933 상세보기
  • 도판 8. 충청북도무덕전신축공사설계도 / 철근상세도 / 8, 1933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