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하재훈 박사(경운대 새마을아카데미)
※ 집필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새마을운동은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가 함축하고 있듯이 ‘가난으로부터의 탈출’을 희망하던 국민의 요구와 ‘조국근대화’를 추진하던 국가의 의지가 결합된 ‘잘 살기 위한 운동’이었다. 1970년에 시작된 새마을운동은 해방과 분단, 4·19혁명과 5·16군사정변 유산들이 영향을 미친 역사적 산물이었다.
새마을운동의 태동배경은 첫째, 1960년 5·16을 통해 집권에 성공한 박정희 체제는 국민들로부터 정치적 지지를 얻고 국가 통치의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를 위해 반공주의와 발전주의에 기초한 ‘조국근대화’ 전략을 추진하고자 하였다. 둘째,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성공적 수행으로 연평균 9%대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였지만 경제발전을 향한 국가와 사회의 열망은 여전하였다. 셋째,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탈농현상’과 도시빈민문제 등 다양한 사회 구조적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으며, 이를 치유할 수 있는 사회통합의 국가적 시도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농촌마을의 적극적인 참여와 기대하지 않은 성과로 인해 1972년 새마을가꾸기사업은 농촌환경개선을 위한 하나의 ‘사업’에서 전국민적 참여를 요구하는 ‘농촌새마을운동’으로 확장되어 시행되었다.
1974년부터는 산업현장의 생산성을 높이고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만들기 위하여 ‘공장새마을운동’이 시작되었다.
1976년에는 도시지역의 공동체의식을 높이고 새마을운동의 범국민화를 위하여 ‘도시새마을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되었으며,이로써 새마을운동은 짧은 기간 동안 지역과 세대를 넘어 급속도로 파급될 수 있었다.
1980년대 새마을운동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과 제5공화국의 출범을 맞이 하여 ‘새마을운동중앙본부’를 중심으로 하는 민간주도운동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새마을운동은 권위주의적 체제였던 제5공화국의 정권적 목표를 뒷받침하는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관변운동’이라는 사회적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특히, 1988년 ‘5공 청문회’에서는 새마을운동중앙본부의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새마을운동은 침체기를 맞게 되었다.
하지만 1980년대 새마을운동은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통하여 질서·친절·청결 등 3대 시민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쳐 대회의 성공적 개최에 기여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1990년대 새마을운동은 국민의 무관심과 부정적 이미지를 해소하기 위하여 조직을 정비하고 사회공익활동을 강화하는 등 새로운 운동 방향을 모색하였다.
1991년 ‘새마을지도자 윤리 강령’ 제정, 1996년 지방 조직의 법인화, 정치적 중립 명문화, 1997년 IMF 외환 위기 당시 ‘경제살리기운동’ 전개 등을 통하여 새마을운동의 공공성을 강화하고자 노력했다.
1998년 12월에는 ‘제2의 새마을운동’ 선언하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 구현’이라는 새로운 이념적 지향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2000년 이후 새마을운동은 공공정책적 사업과 저개발국가 지원 사업을 통하여 대내외적으로 높은 관심과 주목을 받게 되었다.
국내적으로는 민간안전망 사업, 지역활력화 및 농촌살리기 사업 등을 실행하여 공동체의식 함양과 지역사회발전에 기여하였으며, 국제사회에서는 북한·필리핀·몽골·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 등의 지역사회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원함으로써 대외적 위상을 새롭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