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새마을운동은 시련과 침체,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 모색의 시기였다. 제5공화국의 출범과 더불어 새마을운동은 ‘새마을운동 중앙본부’ 체제로 전환되어 민간주도운동을 시도하였다. 그동안 새마을운동을 담당하였던 행정기구가 축소 및 폐지되는 과정에서 새마을운동 관련 업무가 새마을운동중앙본부로 이관됨에 따라 민간주도체제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조직 및 사업에 대한 영향력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막강하였으며, 이로 인해 새마을운동 추진은 외형상으로는 민간주도라고 하여도 반관반민(半官半民)의 형태를 유지하였다.
1980년대 초반 새마을운동은 ‘사회정의구현’이라는 제5공화국의 정권적 목표에 이용됨으로써 사회적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즉, 민주주의 토착화, 복지사회 건설, 정의사회 구현, 교육혁신과 문화창달 실현이라는 제5공화국의 국정 지표를 뒷받침하는 역할과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새마을운동의 ‘정치화’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되었다.
특히, 1980년대 중후반 새마을운동은 사회민주화의 흐름 속에서 정부 지원의 폐지, 새마을지도자의 위상 저하 등으로 인해 활동의 제약을 받게 되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던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으로 새마을운동의 동력이 감소되었으며, 새마을운동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증대됨에 따라 새마을지도자와 새마을단체 회원들의 활동력이 위축되었다. 또한 새마을운동 지원을 담당하였던 정부의 행정기구가 축소 또는 폐지되었다. 1981년 내무부 지방행정국의 새마을기획과, 새마을지도과, 새마을담당관 체제에서 1984년 내무부 새마을기획과, 새마을지도과 등 2개과 체제로 전환되었으며,
1988년 제6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새마을’ 명칭을 사용하는 행정기구가 모두 폐지되었다.
새마을운동의 조직 역시 재정을 정부 출연금 및 보조금에 의존함으로써 조직적 독립과 자율성을 마련하는데 실패하였다.
1980년대 새마을운동 중앙본부 산하에는 16개 시·도지부, 269개 시·군·구·출장소 지회 그리고 2개 연수원이 설치되었으며, 산하 회원단체로는 새마을지도자중앙협의회·새마을부녀회중앙연합회·직장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공장새마을운동추진본부·새마을문고중앙회·새마을금고연합회 등 6개 단체가 가입되어 있었지만 순수 민간단체 운동으로 거듭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였다.
하지만 새마을운동은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계기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아시아경기대회와 올림픽을 통하여 새마을운동은 친절·청결·질서의 사회기풍조성, 건전 생활 및 건강 사회 구현을 위한 폭넓은 봉사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봉사활동을 통하여 새마을운동은 새로운 운동방향 설정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1980년대 새마을운동의 역점 과제는 건전한 사회풍토조성, 경제발전, 환경정비에 맞추어졌다. 1980년 제5공화국의 출범과 86아시안게임 및 88올림픽 개최는 1980년대 새마을운동의 역점 과제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