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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 여성기록 전시콘텐츠 Women’ s History Exhibit content

35208 대전광역시 서구 청사로 189 , 2동
Copyright (c) National Archives of Korea. All rights reserves.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다

대한 독립을 외치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참여한 여성들은 특별한 소수의 사람들이 아니었다.
학생, 교사, 주부, 여공, 행상 심지어 기생까지 각계각층의 평범한 여성들이었다.
식민지 치하에서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민족의식 고취를 위한 계몽운동과 군자금 모집 등 독립운동의 지원활동을 펼쳤다.
또한 직접 총칼을 들고 일제에 맞서 싸우는 무장운동을 전개하는 등 독립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계몽운동

3·1운동 이후 문맹퇴치운동과 함께 민족교육을 실시하는 등 항일투쟁의 일환으로 여성 계몽과 교육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여성 계몽운동가로는 [근우회]의 조신성, 「대한민국애국부인회」의 김마리아, 최초의 여자비행사 권기옥, 『상록수』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농촌 계몽운동가 최용신 등이 있다.
  • 조신성 (1873~1953)
    조신성

    한국 최초 조선부인회를 조직하고, 근우회 중앙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였으며 여성 실업장려회와 조선교육학교를 설립하여 청소년 교육에도 헌신하였다.- 독립기념관 소장

  • 김마리아 (1892~1944)
    김마리아

    2·8 독립선언에 참여하였으며,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과 상해 임시정부에서 황해도 대의원으로 활약하였다. 이후 미국에서 유학 중인 여학생들을 중심으로 「근화회」를 조직하는 등 여성독립운동에 앞장 섰다.- 독립기념관 소장

  • 권기옥 (1901~1988)
    권기옥

    중국 운남육군항공학교 제1기생으로 입학하여 중국 공군에서 10년간 한국 최초의 여류비 행사로 복무하였다. 평양청년회 여자전도대장으로 비밀공작을 전개하였고 1943년 한국애국부인회를 재조직 하여 여성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권기옥과 동료들 (가운데)- 독립기념관 소장

  • 최용신 (1909~1935)
    최용신

    식민지 농촌 수탈에 저항해 농촌계몽운동을 펼쳤으며, 특히 마을교육사업, 농가부업, 환경개선, 저축장려 등의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협성신학교 시절 최용신과 친구들 (앞줄 오른쪽) 1929- 독립기념관 소장

독립운동 지원

여성 독립운동가 상당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독립운동 자금 모집을 비롯해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들을 보살피며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대한애국부인회」의 김순애, 「애국부인회」 이애라, ‘임시정부의 어머니’라 불리웠던 정정화 등 수 많은 여성들의 희생과 헌신은 조국의 독립에 큰 디딤돌이 되었다.
  • 김순애 (1889~1976)
    정신여학교 졸업 당시 김순애

    정신여학교 졸업 당시 김순애
    1909- 독립기념관 소장

    김순애와 김규식의 결혼사진

    김순애와 김규식 (독립운동가)의
    결혼사진 1919- 독립기념관 소장

    상해 「대한애국부인회」를 조직하여 독립자금을 모집하고,
    적십자 간호원 양성소를 설립하여 독립전쟁에 대비해
    의료인력을 양성하는 등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 정정화 (1900~1991)
    정정화

    상해에서 국내를 오가며 독립자금 모금 활동을 펼쳤으며 한국부인회 재건 등 임시정부와 독립운동가를 지원해 ‘임시정부의 어머니’로 불렸다.정정화와 아들 자동- 독립기념관 소장

  • 이애라 (1894~1921)
    이애라

    3·1운동 직후 임시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국민대회 소집에 참여하였고 애국부인회를 결성하여 군자금을 모집, 임시정부에 전달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독립기념관 소장

무장운동

국권회복의 뜻을 품고 많은 여성들이 직접 총칼을 들고 일제와 맞서 싸우며 항일 무장투쟁을 펼쳤다. 3·1운동의 주역 유관순, 여성광복군으로 참여한 오광심, 조선의용대 박차정 등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항일운동의 최전선에서 온 몸을 바쳐 조국의 독립을 외쳤다.
  • 유관순 (1902~1920)
    유관순

    유관순- 독립기념관 소장

    이화학당 시절 유관순과 친구들

    이화학당 시절 유관순과 친구들(뒷줄 맨 오른쪽)- 독립기념관 소장

    1919년 3·1운동의 주역으로 천안 아우내 장터의
    만세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옥중에서도
    저항운동을 전개하다가 결국 일제의 고문으로
    서대문 감옥에서 18세의 나이로 순국하였다.
  • 박차정 (1910~1944)
    박차정

    「근우회」 중앙집행 위원으로 활동하다 중국 북경으로 망명하여 의열단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또한 민족혁명당 남경조선부녀회를 결성하고 조선의용대 부녀복무단장으로 활동하는 등 항일무장투쟁에 앞장섰다.- 독립기념관 소장

  • 오광심 (1910~1976)
    오광심

    조선혁명군, 민족혁명당, 중국 남경의 대한애국부인회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1940년 9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창립 당시 지복영, 조순옥 등과 함께 참여하여 무장투쟁을 펼쳤다.

  • 남자현 (1872~1933)
    남자현

    3·1만세운동 직후 만주의 서로군정서에 입단하여 항일무장운동을 시작하였다. 1925년 조선총독 암살 기도와 1933년 만주 주재 일본대사 암살 기도 등 무장투쟁과 군자금 조달 등에 큰 공을 세웠다.- 독립기념관 소장

  • 비밀결사 혁신단 단원 (1919)
    비밀결사 혁신단 단원 이창규와 이혜수

    조선총독 암살과 적기관 파괴 등을 위해 결성된 혁신단 단원 이창규와 이혜수- 독립기념관 소장

  • 중국 서안으로 이동중인 여성 광복군 (1940)
    중국 서안으로 이동중인 여성 광복군 조순옥, 오광심, 지복영

    중국 중경에서 서안으로 이동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를 따라 이동하는 여성 광복군 (왼쪽부터 조순옥, 오광심, 지복영)- 독립기념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