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일 하와이로 나오는 본국 여자들을 보면 그들이 다 학교의 바람을 쏘이지 않았으면 태반이나 예수교회의 공기를 먹은 사람이라. 당초에 만리밖에 신랑을 구할 때에는 그 희망이 한이 없고 우선 본국을 떠나면 일인의 압제도 면하고 외국에 나가면 본국의 내정도 말하며, 또한 공부도 더 할 수가 있고, 혁명도 운동할 수가 있고……”
『국민보』 1914년 3월 7일자 기사 중초기 하와이 이민자들의 결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사진결혼’이었다.
1910년부터 1924년 미의회 동양인배척법이 제정되어 더 이상 하와이에 사진신부가 들어올 수 없을 때까지 약 600~1000여 명의 사진신부가 결혼을 위해 하와이로 건너갔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들이 목걸이처럼 걸고 다녔던 신분증으로 일명 ‘반고’라 불렸다. 반고는 일본말로 번호라는 뜻으로 당시 하와이에서 고유명사처럼 사용되었다.
갤릭호는 1885년 아일랜드에서 건조된 4,206톤 규모의 배로, 모두 6회에 걸쳐 한인 이민자를 수송했다. 1905년 매각되어 이름이 칼라오(Callao)로 바뀌었다.- 크리스천헤럴드 소장
사진신부 여권 (1918)- 한국이민사박물관 소장
같은 마을 출신의 사진신부(1920)- 크리스천헤럴드 소장
마지막 사진신부들 (1924)- 크리스천헤럴드 소장
사진신부 단체사진
배우자를 찾아 여러 섬으로 흩어지기 직전 찍은 단체사진
(1913)- 크리스천헤럴드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