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감사합니다. 다음분, 좋은 말씀하실 분 안계십니까. 말씀하실분 없습니까? 우리 마산시의회 의장님 한말씀 안되겠습니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삼일오의거때 구경만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감히 이 자리에 서고보니까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다 기억이 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만, 심일오의거야 말로 정말 우리 마산시민의 자랑이요, 또 나아가서는 우리 사천만동포의 자랑이라고 저는 이렇게 항상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까 경과보고서에도 언급이 됐고, 의원장 인사말씀에서도 언급이 됐습니다. 불행하게도 중간에 여러가지 국가적인 비운에 걸려서 이 삼일오가 빛을 못보고 어떤 때에는 또 말도 제대로 못하는 그와 같은 어려움을 겪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저끼함을 잠깐 소개해 드리면 아까 위원장이 말씀하던 광전기 의원이 30년간 삼일오를 기념하는 국민대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사람의 권유에 의해서 그걸 내용은 모르고 국민대회 대장을 맡아달라고 해서 제가 맡았습니다. 그때 당시 제가 마산시 사정 자문위원장을 하고 있어서 시장한테 제가 전화를 했습니다. 내일 모레 중앙극장에서 삼일오 기념웅변 대회가 있는데 시장이 좀 착석해주면 어떻겠냐 전화를 했더니만은 꼭 참석하겠다 약속을 했어요. 헌데 그날 나가보니깐 시장이 안나왔어요. 이상하다해서 한참 있으니깐 부시장이 나오더만은 뭐 뚤레뚤레하더만은 자리에 앉지도 않고 설 사라져 버립디다. 그때 제가 아하, 이게 참 이상하구나, 처음으로 알았는데 그와같이 삼일오 동지회 회원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을 제가 그 웅변대회를 통해서 두차례 기함을 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굴하지 않고 그 뜻을 길이길이 보전해서 때를 맞이하는 걸로 생각합니다. 마침 우리 온국민이 바라던 웅변기념관이 들어서서 우리 그, 억울하게 많은 고충을 겪은 삼일오 동지들이 빛을 보게 된 것을 정말 기쁘게 생각하고 다 같이 기뻐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희들 마산시의회가 경제적인 힘도 없고 또 저희들 소명이 두터울 수 있는 그런 위치도 못됩니다만은 여러분과 같이 이 사업에 동참을 해서 마음만이라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참여자로써 열심히 같이 도우고 일해나갈 것을 이 자리를 빌어서 다짐을 드리고 오늘 이 더우신데 이와 같이 좋은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또 같이 삼일오에 대한 여러가지 문제를 토의하고 기쁨을 같이 하는 이 자리에 제가 인사를 드리게 된 것을 대단히 기쁘게 생각을 하고 여러분의, 오늘 여기 참석한 모든 분들의 가정에 평온과 축복이 같이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끝으로 한분만 더 모시겠습니다. 서울에서 오신 우리 삼일오 관련 책자를 또 만드셔서 출판기념회를 했었고 아끼신 우리 박시권 선배님 잠깐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에, 저는 서울에서 왔습니다만은, 사실은 집이 현재 주산동에 있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자주는 못오지만은 한달에 한 두번정도는 꼭 주산동 집을 찾습니다. 저는 교육자입니다. 중고등학교 선생을 오래토록 했습니다. 그래서 준비운영회에서 인사말씀 하신 내용은 역시 우리 마산시민을 대표할 수 있는 모든 말들을 총망라해서 그 말씀에 대해서 저도 같은 의지를 표명하는 바입니다. 그 다음, 제가 오늘 내려온 이유는 이 기념사업회에 대한 발기인으로써 참석을 했지만은, 우리 마산 삼일오가 1960년 3월15일 이후에 1961년 4월 군사혁명 정부에 의해서 대구 228과 마산 315가 419를 전부 419 밑으로 흡수통합 시켰다는 점에 대해서 상당히 불평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제도권에서 국가가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만드는 법령과 대통령이 만드는 시행령, 국무총리령으로 만드는 규칙이, 우리나라 국가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이 419라는 명명하나 밖에 없기 때문에 419상이자에 경남지해, 419유족회 경남지해라는 간판아래 33년동안 흘러왔습니다. 이런 점을 저는 생각할때 상당히 조금 불쾌했습니다. 물론 국가보훈처에서 담당 상이상태를 보훈처장이 인정하는 범위내에서 신체검사를 한다든지, 그 유족에 대해서는 보훈을 대상하는 것은 상당한 가치가 있지만은, 제가 그 315에 대한 명명이 없어지자 1973년, 1973년 2월7일 유신정권 때입니다. 제가 그때 공무원입니다. 학교선생, 공무원으로써 우리 마산시민의 이 산 증거를, 앞으로 닥쳐오는 이 교육의 산증거를 만들기 위해서는 재정립을 해야되겠다 해서 마산315, 그 당시의 그때 노년과 그때 장년과 그때 청년, 학생들이 오늘에는 60대, 50대 또는 40대 초반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때 당시에 1973년 희애시장에서 약 한 500명 마산시민을 모아놓고 재정립을 위한 창립총회를 315청년 동지회로써 발족을, 재정립을 위해서 발족을 했습니다. 그 발족을 하고 나니까 심지어는 수성동, 그 간판을 다니까 당국에서 와 가지고 간판을 떼려고 그래요. 뗄려고 그러는걸 조건부 현판식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만큼은 내가 요 간판을 달고 내일부터는 이 안쪽에, 사무실 안쪽에서 달겠다 했어요. 근 삼년동안 사무실을 지켜왔습니다. 물론 제 사비로 하다보니까 개인적인 재산 문제도 있습니다만은, 그러나 이 삼일오 의거가 지금 현재 국가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제1장 총칙에 제4조를 보면 제9항, 1항부터 8항은 그동안 3.1독립운동을 했다던지, 625사변에 참전했다던지, 이런 상이자와 이런 내용들이 있지만은 9항과 10항을 보면은 419상이자, 419유족회라는 것은 9항과 10항에 있습니다. 보면은 419전후하여 상이를 입었던 사람이나 또는 사망한 자에 대해서 이런 법적인 보장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산 315는 아무리 시에서 조례 제정을 하고 신 의미를 제정해도 우리마산 시민의 이름으로 그치치 밖에 않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우리의 명명을 전국 곳곳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이 법률적인 보장이 되어야 되지 않겠는냐. 물론 5월8일부터 33년동안 하지 못하는 여러가지 사업 계획, 구상안을 우리 주민들께서 수고를 많이 하셨는데 사실은 가장 중요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관계법 개정을 해야합니다. 둘째는 우리 단체 결성을 해야 됩니다. 지금 마산에는 315는 단체는 없습니다. 제가 임의단체로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명명한 그때부터 지금까지 315 의거동지회지만 이거 임의단체입니다. 항상 국가에서 인정하는 단체에서는 나를 상당히 비웃고 저 사기꾼 같은 놈이다 이렇게 하지만은 저는 1990년 삼십주년이 되는 날, 제 사비 3500만원을 털어가지고 저 책을 만들었습니다. 무료배부했습니다. 그걸 서울에 4월11일 서울에서 먼저 출판기념회를 가지고 그다음 5월1일 마산시민의 날에서 여기 출판기념회를 제2차로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제가 자랑거리가 아니라 마산인이 응집될 수 있는 315의거에 대한 결정을 해야되지 않나 단체 결성을 해야 하고 그 다음 오늘 여러가지 준비해주신 기념사업회를 해주셔야 합니다. 그것이 세가지의 가장 큰 이유인줄 알고 있는데요. 그 대신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내용은 이것이 우리 마산시민의 자긍심을 일으켜줘야 됩니다. 지금 현재 7월1일자 당정협의회에서, 당정협의회에서 315는 의거로 규정하고 419는 혁명으로 규정지었습니다. 그러나 의거와 혁명으로 규정지었다면은 같은 혁명속에서 우리가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의거는 극도로 불리해서 자구를 삽입시켜야만 정당한 마산의 명맥이 유지됩니다. 아무리 일으킨 사업이라고 떠들어대도 이것이 우리 법적인, 국회의원들이 발의해가지고, 국회의원이 발의를 하든 보훈처에서 정부발의를 하든간에 발의를 해서 법원으로 승한이 통과되어야만 이것이 우리 마산시민이 사는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무의미합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모든 지금까지 준비한 내용중에서 419와 별도로 분리하자는건 아닌데, 419 그건 국가의 제도권에서 하는 내용을 그대로 마산지구로 하되 단지, 단체결성은 419, 315 상이자회. 옛날엔 다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315 유족회, 315 의거동지회, 이 세가지 단체가 복합적으로 맞물려 돌아가야만 됩니다. 그래서 앞으로 기념사업회 할때도 유족회에 할 사업이 있고 동지회가 할 사업이 있고 그 다음 상이자회에 할 사업이 있습니다. 그것이 맞물려서 기념사업회에서 분과를 맡아서 오늘 일곱가지 큰 항목을 두고 사업을 해야되고 이 사업의 승한에 대한 것은 참 대단히 작성을 잘 했습니다. 상당히 추진위원들이 치밀하게 했습니다. 지금 현재 광주 518은 일천억원을, 물론 보상금도 있겠지만 일천억원을 투자하고 서울에 419혁명은 시비70억 국비 80억을 투자해서 150억을 해서 이번에 확장을 합니다. 물론 우리 315에 모여있는 성역화도 하기 위해서는 많은 땅을 해지만은 그걸 곁들여서 생각해볼때 상당히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그래서 마산시민의 자긍심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서는 419는 그때 4월18일 부산 동래고등학교나 고려대학교에서 전부 마산학생 뒤를 따르자, 마산시민을 따르자, 마산의 시신을, 참시를 주시하라. 이러하면서 모든 사실, 외신, 종합해서 마산으로 근거를 해서 일어났기 때문에 어느 누구가 419 있기 이전에 315를 생각해야지, 지금 외부사람들 물어보면은 419는 안답니다, 분명히. 그대신 315는 부정선거만 알지, 315가 의거가 일어났다는 내용은 전혀 모릅니다. 전 서울에서 가끔 그런 이야기를 이렇게 여러사람한테 조사를 해보면 대게 부정선거로 인해서 419가 일어났다는 내용은 압니다. 이것을 역사적으로 재조명하기 위해서는 다시 우리가 그런 관계법 개정에 대해서, 아마 조례에 재정을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국가가 인정한 법률제정을 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대통령 시행령이 나와야 되고 그 다음에 총리가 하는 규칙이 나와야만 이것이 제대로 우리가 법적으로 보장되는거지 315는 필요없습니다. 제가 두서없는 말을 했지만은 사실 이것을 곰곰히 해서 오늘 사실 거기에 대한 서명운동을 하기 위해서 서명호소문도 다 만들어 왔습니다. 다 만들어 왔습니다. 이것이 국회의원 두사람이 계시지만은 국회의원이 할 수가 없으면 마산시민의 청원으로써 충분히 우리가 제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현재 내 한가지 말씀을 드린 것은 김대통령한테 죄송합니다만은 저도 거기 존경하고 마산은 자기고향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제가면 자기가 낫다고 여겨지고 부산은 부산서 키워줬다고 했고 마산은 자기 어른이 계시니깐 마산이 고향이라고 다 자기 동네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작년 1992년 3월26일 모당 후보의 지원유세를 할때 3월15일이였습니다. 저 매립현장, 그 장소에서 모든 국회의원들은 315에 대한 내용을 일일이 열거하면서 거의 유세내용의 60프로가 315에 정신이였습니다. 그러나 김대통령께서는 3월15일날 오지, 왔더라도 3월15일 이야기를 하지 않고 우리처가가 마산이다, 하는 인연이 깊다는 그런 내용하고 10월,11월달에 한번 만납시다 하는 고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습니다. 다 들어서 알겁니다. 그러나 이 315가 419, 4월19일 현장에 가서 이걸 성역화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산 315 애기봉에 와봤습니까? 물론 지나가다 왔겠지만은 그것은 우리가 차원이 다릅니다. 그래서 마산을 애껴줬던 그분에 대해서 우리가 다시한번 재고를 해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또 소명운동 우리가, 국회의원들이 자기 의견발의를 할 수가 없으면은 우리 마산시민의 청원으로써 충분히 합니다. 가능하리라고 보입니다. 그래서 이것의 역사적인 정립이 의거냐 혁명이냐 이 놓기 전에 보훈법, 국가적용대상, 예우대상에 대해서는 반드시 315가 의거가 되던 혁명이 되던 반드시 419 앞이여야 됩니다. 7항,8항 같은 경우를 한번 보면은 625사변에 저는 1950년 6월25일부터 1953년 7월27일 휴전이 될때까지 상이를 입었던자, 또는 사망입은자로 이렇게 기간을 두고 했는데 우리 마산315가 없어지기 위해서 419전후하여 이 이상한 자구입니다. 이 자구가 반드시 고쳐져야 된다는 것은 평소의 소신이고 저게 책, 삼백몇페이지 책을 만들때 관계법을 개정, 30주년 이전에 만들라고 이미 오래전부터 부르짖고 지금까지 제도권에서 그것을 손을 대지 않으니까 제가 마지막으로 우리 마산시민의 청원에 의해서 한번 호소할 수 있다는 이런 것을 만들어 주시고 앞으로 기념사업회가 관계법 개정, 그 다음에 단체 결성입니다. 단체결성을 반드시 해야 됩니다. 앞으로 315의거 동지회 있어야 되고, 상애자회도 해야 되고, 유족회도 있어야 됩니다. 마지막으로 기념사업회를 성역화를 위해서 기념사업회를 해야된다는 것을 밝히면서 두서없는 말씀을 전달하는 것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예, 우리 지금 박시권 선배님이 말씀하신대로 지금 오늘 우리 마산시의회에서 속기사 잘 적고 있습니다. 저걸 풀이해서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산시의회에서는 대정부 건의안으로 국가기념일로 재정해달라고 일단 건의안을 저희들이 관계위로 올렸습니다. 자 다음에는 우리 부상자 대표로 계신 맹승기 우리 준비위원님께서 한말씀.
안녕하십니까. 맹승기입니다. 많은 선배님 앞에 제가 이렇게 외람되게 마이크 앞에 선 것에 대해서는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만은, 사실 이 자리에서는 제가 제일 막내동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이 마지막 시간이 될런지 몰라서 제가 한두가지 생각나는 일들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당시 마산상업고등학교 1학년이였습니다. 마산시청 앞에서 총을 맞고 마산도립병원에서 한 1년, 그 다음에 서울 부산쪽으로 한 6개월, 1년6개월 가까이 병원에서 병상생활을 했습니다. 제가 도립병원에 아침에 눈을 떴을 적에 제 옆에는 마산고등학교를 졸업한 김영준 형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다리 대퇴에 총상을 입었고 김영준 형은 복부관통을 입었습니다. 저는 정신이 조금 돌아왔고 그래서 옆에 형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보니까 총이 복부를 관통을 했기 때문에 장이 배에서 흘러 조금 나온것으로 제가 기억이 됩니다. 그래서 이삼일 후에 그 형은 수술을 했는데 아마 관통하면서 장을 너무 많이 손상을 시켜버려놔서 수술하고 나서 삼일 후에 돌아가셨습니다. 지금 33년이 지났지만은 그 형은 가고 저는 살아남아 있습니다. 33년이 지나고 저희들이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지만은 지금은 뭔가 이룰라고 손톱자국이나마 남길라고 저희들은 이 자리에 모여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러나 33년동안 저희들이 꾹 참고 기다린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암흑의 시절에 군사쿠테타가 일어나고 자유가 말살되고 315를 없애버리고 4월 혁명을 의거로, 나중에는 상이자라고 이렇게 격하시키는 이런 과정에서도 저희 마산시민들은 손톱자국을 남기기 위해서 몇가지 사업을 계속해왔습니다. 아까 우리 위원장님께서 말씀하셨지만은 315기념 웅변대회는 지금 27년? 몇년이지, 28년? 27주년을 계속해왔습니다. 얼마만큼 그 웅변대회를 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는 여러분들께서 잘 아셨을 겁니다. 박정희 정권에서 부터 전두환씨, 노태우,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웅변대회를 개최해 왔고 그리고 또 지금부터 9년전에 전두환 군사시절에 315 백일장을 면면히 이어왔습니다. 1회 하고 나서 2회 때는 안기부 쪽에서 하지 말라고 학생들이 그 데모현장에 오게 되면 다시 마산시민 전역화 데모가 되게 되면 어려울거다 하면서 예산관계 이런 모든것을 다 이렇게 불식시키면서 못하게 했습니다. 그렇지만은 4월 혁명 동지회 경남지회와 마산문인협회는 그 어려움을 무릅쓰고 합포국민학교에서 매년 3월달, 맨 마지막 일요일날 계속 9회까지 연장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지금부터 5년전에 마산 육상연맹에서 마산 단축마라톤 대회를 계속 지금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아무리 길을 막고 눈을 멀게 해도 315의거 정신은 면면히, 봄이면 바위 틈 사이를 샘솟고 나오는 그 물, 물줄기 새순처럼 지금까지 살아와 있습니다. 그게 지금 오늘에 어떤 우리 기념사업회를 연장을, 기념사업회를 이루는데 연장을 해온게 아닌가 저는 생각됩니다. 그리고 또 이 앞에 박시권 선배님께서 말씀하신 현실적인 그 세가지 문제, 그 문제는 전 당사자로써 대단히 공감하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너무 시간이 길어지는 것 같아서 더 짧게 여기서 마무리 짓겠습니다만은 꼭 제가 마지막으로 막내로써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이 기념사업회를 결성함에 있어서 어떤 사사로움, 어떤 명예, 물질적이고 어떤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것을 목적을 두고 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 선배님들께서도 반드시 저희들 사사로움이 없었고 마산 315정신을 영구히 빛내기 위해서 살아있는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이 큰일을 하지 않으면 누가 아무도 만들어 줄수가 없다는 그런 깊은 뜻을 염두에 두시고 혹시 잘못이 있으면 꾸짖고 또 격려해주셔야 한다는 그런 간곡한 말씀을 제가 마지막으로 말씀 드리면서 막내둥이 물러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예, 대충 좋은 말씀을 마감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우리 준비위원회는 본회가 창립될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맡은 바 임무를 다할 것 입니다. 마지막으로 준비위원장님께서 마무리 인사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조금 시간이 오래되서 날씨도 어둑할때, 이렇게 진지하게 임해주셔서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될런지, 오늘 세분 선생님께서 말씀 해주신 것은 저희 준비위원회가 창립 발기인 그 모임까지 반입시켜서 열심히 일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 선생님 내년에 건강하시고 댁에 모두 행복이 가득하시길 빌겠습니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아, 잠깐만 자리에 앉아주시길 바랍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잠깐만. 315 당시에 부상자를 찾고 있습니다. 이웃에서 찾으시면은 연락처는 43국에 0315 4월혁명동지회, 또는 315기념사업회로 연락을 좀 해주시고 오는 7월22일날 10시 서울 세종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되는 419혁명 학술대회에 참석하실 분은 기념사업회에 신청해주시길 바랍니다.
예, 폐하기 전에 긴급동의 하나 하겠습니다. 발기인 대회를 했으니까 우리가 창립준비, 자리에 앉아주시기 바랍니다,회를 해야합니다. 그래서 이 창립준비위원장만 좀 선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나 제안하겠습니다. 이순환 준비위원, 지금까지 준비해준 이순환 위원장님을 다시 창립때까지 위원장을 다시한번 더 수고해달라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상있으면 박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기념촬영이 있습니다. 시청정문에서 기념촬영이 있겠으니 거기에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밖에 좀 안내라도..바깥에서. 여 좁아서.
네, 다시한번 알리겠습니다. 시청정문에서 기념촬영이 있습니다. 한분도 빠짐없이 기념촬영에 임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