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10)(노래)한송이 흰 백합화
(00:00:21)박꽃으로 마을길이 눈부신 밤. 하얀 몸매로 나타나신 이여. 조용한 걸음 옮기시어 우리 서로 만나던 그때부터 당신을 고운 아씨로 맞이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각하 영부인 육영수 여사님은 1925년 11월 29일, 교동 집으로 알려진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교동리 313번지에서 육종관 씨와 이경영 여사의 일남 삼녀 중 둘째 따님으로 태어나셨습니다.
(00:01:16)남 부럽지 않은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하셨건만, 조금도 자만심을 가지시는 일이 없이 겸손하고 오묘한 서민 생활을 통해 현모양처의 부덕을 쌓으셨습니다. 고향의 죽향 국민학교(초등학교)를 다니셨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가난한 친구들과 도시락을 함께 나누던 인정 많은 소녀셨습니다.
(00:02:01)1938년 4월. 그때만 해도 군 소재지에서는 한두 명밖에 없던 서울 유학생이 되어 배화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하셨습니다. 전형적인 한국 여성으로서의 고운 마음씨는 마침내 이 나라 지도자 영부인의 자리에 앉게 되시면서 부터 우리들 온 국민의 가슴 속 깊이 덕과 정을 심어 결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구원의 여인상을 바로 새겨 놓으셨습니다.
(00:02:40)여사님이 박정희 대통령 각하와 결혼하신 것은 6·25 사변이 나던 그해 1950년 12월 12일, 피난지인 대구에서였습니다. 여사님은 삼 남매를 키우면서 검소하고 다복한 가정을 꾸려 오셨습니다.
(00:03:12)61년 5월 16일, 박정희 장군을 중심으로 한 국군장병들은 당시 누란의 위기에 처한 조국의 운명을 바로잡기 위해 분연히 궐기, 온 국민들의 지지와 성원 속에 국가재건의 대과업을 성공적으로 착수하기 시작했습니다.
(00:03:40)실로 5·16혁명은 우리 민족의 중흥을 기약하는 역사의 대전환점이 됐습니다. 이해 11월 1일,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은 대장으로 승진하셨습니다. 62년 11월. 울릉도 섬 어린이들을 맞이하시던 그때부터 여사님은 우아와 인자와 슬기를 겸비하신 겨레의 어머니셨습니다.
(00:04:29)62년 12월 17일, 제3공화국의 기틀이 될 헌법 개정안의 가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됐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인 이 국민투표에서 총 투표소의 약 79프로(퍼센트)의 찬성을 얻어 새 헌법이 탄생됐습니다.
(00:04:55)63년 8월. 육군 제5군단 관하 지포리 비행장에서 박정희 장군의 전역식이 베풀어졌습니다. 야전군 병사들은 분열 행진으로 군인 생활을 떠나는 박정희 장군께 석별의 정을 나누었습니다.
(00:05:32)10월 15일에 실시된 선거에서 박정희 의장은 대통령에 당선되셨습니다. 선거가 끝난 10월 18일, 내외분은 가족과 함께 선산군(구미시) 구미면 상모리 고향의 선형을 찾아 성묘하셨습니다. 꼭 4년 만에 들른 고향 땅에서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이웃 사람들과 서로 손을 잡고 정담을 나누셨습니다.
(00:06:58)63년 12월 17일, 제3공화국의 첫날이 밝았습니다.
(00:07:21)
박정희 대통령 : 선서. 나는 국헌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여사님은 이날부터 박 대통령 각하의 영부인으로서 청와대 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00:08:01)64년 새해 아침. 여사님의 청와대 생활 이후 처음으로 맞은 신년하례입니다. 여사님은 대통령 영부인으로서 부족함이 없도록 부단한 노력으로 지적 수련을 쌓으셨고, 많은 국민과의 대화를 통해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00:08:28)10년을 하루같이 언제나 변함없이 따스하고, 자상하시면서 무던히도 각고하시며, 우아한 지성미를 완숙시켜 오신 그 놀라운 노력의 흔적에 항상 경탄과 부러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거짓된 일을 감내하지 못하시고, 가엾은 이를 외면하지 못하시는 성품이셨습니다.
(00:09:14)이해 12월 6일, 독일 연방 공화국 뤼브케(Heinrich Lubke) 대통령의 초청으로 내외분은 독일 방문 길에 오르셨습니다. 우리나라 국가원수로서는 유럽 방문이 처음일 뿐 아니라 여사님으로서도 처음 가진 해외 나들이셨습니다.
(00:09:34)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나타낸다면 세계 어디를 가나 부끄러울 것이 없다고 하시며, 구김살 없이 자연스러운 생활과 몸가짐을 가지셨던 영부인. 인상 깊은 한국의 모습을 남기려고 노력하셨습니다. 현지 신문들은 영부인을 동방의 가인, 모성적이고 다감한 아름다움으로 극찬했습니다.
(00:10:10)8일 오전. 내외분은 관저로 뤼브케 대통령을 방문하고, 훈장을 교환하며 환담하셨습니다. 이날 밤에 베풀어진 내외분 초청만찬회. 뤼브케 대통령 부인은 한국인은 용감하다는 것만 알고 있었는데, 영부인의 모습을 접한 후는 한국의 미를 두고두고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00:10:55)언제나 고아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푸시던 여사님은 독일 고아원에서도 어버이의 정을 담뿍 안겨주셨습니다. 10일에는 함보른 탄광에 들리셨습니다. 이곳 스포츠 센터에 모인 우리 광부들과 간호원들. 조국을 떠나 고생하는 이들이 애처로워 지으시던 그 눈물은 정녕 어머니의 눈물이셨습니다. 함께 부르는 애국가 속에 모두들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온 장면은 그대로 흐느낌으로 차 버렸습니다.
(00:11:54)광부들의 숙소도 일일이 둘러보시며 그들의 생활을 걱정하시고, 떠나기가 무척 서운하다고 하시던 여사님. 11일 아침. 내외분은 베를린시의 공산 장벽을 시찰하셨습니다. 이 시찰에서 영부인께서는 동베를린시의 회색 거리와 서베를린시의 녹지대는 똑같은 겨울 하늘 아래서도 저쪽이 더욱 어둡게 보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00:13:04)여사님의 여기자 회견.
육영수 여사 : 어려운 일이 있을 적마다 전 국민이 합심해서 내 집의 일을 당하는 것처럼 애처로워하시고 도와주시고 후원해 주셨어요. 얼마나 든든했던지 모르겠어요. 금년에도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이 닥칠지언정 이겨나갈 수 있는 그런 태세를 갖췄으면 좋겠습니다.
(00:13:32)이해 12월 17일 양지회가 발족하였습니다. 130명의 지도층 인사의 부인들이 헌신과 봉사를 다짐하며 슬픔 없는 밝은 사회를 목표로 뭉친 것입니다.
(00:13:59)65년 새해 아침. 내외분은 국립묘지를 참배하셨습니다. 이어서 신년하례. 여사님은 한 나라의 여성으로서, 한 가정의 주부로서, 또 국가원수의 내조자로서 사명을 다하셨으며 항시 나라 사랑의 마음을 불우한 사람들을 돕는데 기울여, 그 고매하신 자비심은 온 국민의 머릿속에 승화되어왔습니다.
(00:15:05)65년 5월 16일, 5·16 4주년을 맞는 날. 내외분은 존슨(Lyndon Baines Johnson) 미국 대통령 초청으로 열흘간의 방미길에 오르셨습니다. 존슨 대통령이 보내준 특별기에서 내외분은 기상과 청와대를 연결한 전화를 이용, 자녀들과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이날 오후. 미국 랭글리 공군 기지에 안착하신 내외분은 윌리엄스 버그(Williams berg) 시장과 많은 교포들의 영접을 받으셨습니다.
(00:16:59)영빈관인 알렌버드하우스에 여장을 푸신 내외분은 정원을 산책하신 후 잠시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방미 이튿날. 내외분은 백악관으로 존슨 대통령을 예방하셨습니다. 세계의 응접실 블레어 하우스에 도착하신 내외분은 토브리너(Walter N. Tobriner) 워싱턴 시장으로부터 순금으로 된 자유의 열쇠를 기증받으셨습니다.
(00:18:06)이어 국무성에서 러스크(David Dean Rusk) 국무장관과 조찬을 같이 하시며 환담하셨습니다. 이날 오후 양국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한편 영부인께서는 시내 미화 광경을 시찰하시고 백악관 뜰에 한국산 목련을 기념으로 식수하셨습니다.
(00:19:08)그리고 적십자사를 방문, 자원봉사단의 작업장과 혈액은행을 둘러보시고 직접 기계를 조작해 보기도 하셨습니다.
(00:19:46)이어 미 재무장관 부인과 함께 포토맥강(Potomac River)에서 관광 유람선을 타고 잠시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방미 중 처음부터 끝까지 영부인을 모시고 안내하던 의전장 부인 핸드(Lloyd Nelson Hand) 여사는 영부인이야말로 자신이 만나는 퍼스트레이디 중에서 가장 활발, 명랑하고 교양 높은 분이었다고 술회했습니다.
(00:20:50)이날 저녁 내외분은 우리 대사관에서 교포들과 만찬을 같이 하시면서 조국의 긍지를 심어 주셨습니다. 2박 3일의 워싱턴 방문을 마치신 내외분은 5월 19일, 뉴욕에 도착, 브로드웨이가를 거쳐 뉴욕 시청을 향해 카퍼레이드를 벌였습니다.
(00:21:49)시청 앞 광장에 도착하신 내외분은 와그너(Robert Ferdinad Wagner Jr.) 뉴욕시장으로부터 뉴욕시의 최고 명예인 금메달을 받으셨습니다. 이날 밤 와그너 시장이 베푼 만찬. 외국에 가실 때마다 영부인께서는 그 나라의 경제, 문화, 사회 전반에 걸쳐 하나라도 더 익혀 영부인으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도록 무던히 노력을 하셨습니다.
(00:23:09)20일 아침에는 꽃수레를 타시고 뉴욕에서 개최된 세계 박람회장을 돌아보셨습니다. 영부인께서는 변변찮은 기재로 공부하고 있는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 이것을 보여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금치 못하셨습니다.
(00:24:01)한국관에 들리신 내외분은 교포들의 마중을 받으시고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시면서 한국관의 이모저모를 살피셨습니다.
(00:24:39)이곳은 미 육군사관학교. 21일 아침. 이곳을 방문하신 내외분은 환영식에 참석하신 후 학교 시설들과 사관생도들의 수업 광경을 살펴보셨습니다.
(00:25:14)이날 박 대통령은 생도들에게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사관학교의 학칙위반자 250명에게 특사령(特赦令)을 내린 것입니다. 이 특사령은 사관학교를 방문하는 국가원수에게만 주어지는 특전입니다.
(00:25:42)22일, 내외분은 미국 우주센터를 시찰하기 위해 케이프 케네디(Cape Kennedy)의 패트릭(Patrick) 공군 기지에 안착하셨습니다. 영부인께서는 그냥 일정대로 다니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나라의 과학기술에서 우리의 것을 생각하셨습니다. 이날 내외분은 보울 우주선(Bowl spacecraft) 발사 광경도 지켜보셨습니다.
(00:26:45)24일 오전. 내외분은 로스앤젤레스에 도착, 미국 방문의 마지막 일정을 보내셨습니다. 영접 나온 요티(Samuel Williams Yorty) 시장은 한국말로 아침의 나라 대한민국의 대통령 내외분을 맞이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영부인의 로스앤젤레스 미술관 시찰입니다.
(00:27:29)이날 저녁 요티 시장이 베푼 만찬. 요티 시장은 박 대통령은 위대한 군인이며 위대한 정치가라고 말하고, 한국인은 용감한 국민이라고 격찬했습니다. 5월 27일 오전. 만 10일간의 방미 일정을 마치신 내외분은 로스앤젤레스를 출발, 귀국하셨습니다.
(00:28:09)원양어업 기술훈련소의 실습선 진달래호 명명식. 이날 명명식에 참석하신 여사님은 훌륭한 기술을 익혀 나라 발전에 이바지해 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00:28:33)65년 추석절. 고향의 오솔길 따라 해마다 성묘를 다니시던 내외분. 그 지극하시던 효성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00:29:11)봄, 가을이면 꽃향기 짙은 고궁 뜰을 찾아 우리 예술의 꽃을 키우자고 격려하시던 여사님.
(00:29:34)65년에 여사님은 양지회관을 마련하셨습니다. 불우한 여성들을 위해 이 회관의 문을 열면서 여사님은 실질적인 봉사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이해 12월 7일, 양지회에서는 처음으로 자선의 밤 행사를 베풀었습니다. 불우한 겨레를 돕기 위한 모금 운동인 이 행사는 이 나라의 음지를 양지로 만들기 위한 여사님의 갸륵한 뜻이었습니다. 이해 11월부터 시작한 수요 봉사활동. 여사님은 불우한 겨레 돕기 위한 상품 마련에도 밤잠을 잊으셨습니다.
(00:30:24)음지를 찾아 그토록 바쁘게 발길을 옮기시던 여사님. 영등포의 재활용사촌. 영접 받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 돕기 위해 왔노라고 하시며, 불편한 이들을 집집마다 찾아 무엇이 아쉽고, 무엇이 필요하며, 어떻게 하면 자립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고 자상하게 묻고 살피셨습니다.
(00:30:54)여사님은 파월장병 가족들도 찾아 아들과 남편을 전장으로 보내고 애태우는 이들에게 선물과 금품을 전달하셨습니다.
(00:31:22)66년. 새해 아침의 신년하례. 1월 2일, 새해 첫 손님으로 방한한 미국 험프리(Hubert Horatio Humphrey) 부통령 접견입니다.
(00:32:03)2월 7일, 온 국민의 따뜻한 환송 속에 내외분은 동남아 순방길에 오르셨습니다. 이날 오후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안착, 이스마일 나시르딘 샤 국왕과 사공 왕비, 그리고 라만 수상의 영접을 받으셨습니다.
(00:32:58)이날 저녁. 숙소인 네가라 궁에서 수상의 내방을 받고 환담하시며 선물을 교환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타머 궁으로 국왕 부처를 방문하셨습니다. 영부인의 그 우아하신 몸매와 정겨운 웃음은 대하는 이의 마음을 훈훈하게 했습니다.
(00:34:08)방문 이튿날. 국왕 부처의 내방을 받으시는 영부인께서는 사공 왕비와 환담하시며 인삼 달이는 법을 설명하기도 하셨습니다. 또한, 영부인께서는 고아원과 결핵 병원을 찾아 이곳에서도 외롭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로하셨습니다.
(00:35:00)국립현충기념비 제막식. 이날 밤의 수상 주최 만찬회.
(00:36:09)또한, 이곳 국립미술관에 마련된 한국미술전시회를 관람하시면서 관계자들을 격려하셨습니다. 내외분이 베푸신 만찬. 국왕을 비롯해서 200여 명의 귀빈이 참석, 양국의 번영과 무궁한 우의를 축원하는 축배를 들었습니다.
(00:36:53)2월 10일, 두 번째 순방국인 태국의 무앙 공항에 도착, 아둔야뎃 국왕과 끼띠카 초른 수상 등 많은 인사의 영접을 받으셨습니다. 박 대통령 각하와 함께 우방들을 순방하시면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영부인의 그 늠름하시던 모습. 우리는 그때 무한한 긍지를 느꼈습니다. 한국 여인의 전형을 거기서 찾을 수 있었고, 겨레를 감싸 기르시는 자모의 상을 거기서 볼 수 있었습니다.
(00:37:57)이날 오후 내외분은 국왕 부처를 방문, 훈장을 교환하고 환담하셨습니다. 왕비의 안내로 적십자 협회와 병원, 그리고 견직공장 등을 두루 살피시며 적십자 사업을 위해 금일봉을 하사하시고, 왕비로부터 적십자 훈장을 받으시기도 하셨습니다.
(00:38:54)이날 밤에 있던 예술제의 참관. 12일 아침에는 에라완 호텔에서 교포들과 조찬을 같이 하시며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셨습니다.
(00:39:34)2월 15일, 내외분은 홍콩을 거쳐 마지막 순방국인 중화민국에 안착, 장개석 총통의 영접을 받으셨습니다. 영부인께서는 외교부장 부인의 안내로 대북(타이베이) 시내 화홍육아원과 영민 병원을 방문, 이곳에서도 불우한 어린이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베푸셨습니다.
(00:40:30)행정원장 부인이 마련한 오찬회에 참석. 자유중국의 여류 명사들과 환담을 나누시며 민속무용을 관람하셨습니다. 내외분은 숙소인 그랜드호텔에서 교포 100여 명을 초청, 다과회를 베푸시고 유능한 민간 외교관이 돼 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만 12일간의 동남아 순방에서 한국의 인상을 깊게 심으신 내외분은 2월 10일, 서울로 돌아오셨습니다.
(00:42:14)이해 2월 말. 세계 최초로 우주 랑데부에 성공한 두 우주인 일행의 접견을 하셨습니다.
(00:42:31)4월 초. 여사님은 독립유공자 미망인들을 청와대로 초청, 오찬을 같이 하시면서 독립투사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셨습니다.
(00:42:48)섬 어린이들의 코 묻은 손을 잡으시고, ‘여러분은 불우한 조건에 놓여있으나 그럴수록 남보다 열심히 공부하며 힘써서 오히려 불우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훌륭한 사람이 돼 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00:43:15)여사님의 월남 파병 당시의 회고다.
육영수 여사 : 모든 것을 종합해서 판단을 하시고 결정을 하셔서 또 책임을 지시는 것은 역시 이분 혼자시지 않겠어요? 그런 거 볼 적에 처음 옆에서 저도 안타깝기도 할뿐더러 그분도 더 참 외로우신 거 같은, 이렇게 보일 적이 또 있어요.
(00:43:46)여사님은 도와도 도와도 끝이 없고, 때로는 원조가 공으로 흩어지는 것 같다 하시며, 개별적인 원조보다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업을 시작하셨습니다. 그것이 곧 여성회관 건립이었습니다. 양지회에서 마련한 자선 파티. 불의에 닥치는 재해에 대비하기 위한 모금 운동입니다.
(00:44:20)양지회에서 벌인 사랑의 열매 가두모금. 여사님의 그 온화한 미소는 파월 부상 장병들의 시름을 덜어주셨고, 양지회에 나오셔서 손수 위문품을 마련하셨습니다. 그리고 영하의 전선으로 달려가 그 위문품을 전하시면서 따스한 모정을 베푸셨습니다.
(00:45:38)10월 31일, 박 대통령 각하의 초청을 받은 존슨 미국 대통령이 부인 버드 여사와 함께 우리나라에 왔습니다. 이날 시청 앞 광장에 마련된 환영식장에는 많은 시민들이 운집, 존슨 대통령 일행을 환영했습니다.
(00:47:13)이날 밤. 존슨 대통령 부처는 박 대통령 내외분을 예방하고 선물을 교환하며, 환담을 나누셨습니다. 그 숱한 바쁜 나날들 속에서 외빈을 맞으시며 한국의 얼을 심어주시던 영부인.
(00:48:13)외빈을 접대하시던 그 알뜰한 보살핌은 언제나 한결같았습니다. 존슨 대통령 부인 버드 여사는 영부인을 지극히 비범한 여성이며, 부드러움을 느끼게 하면서도 지성적인 분이라고 말하고, 워싱턴에서 처음 만나 뵀을 때부터 그 인품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얘기했습니다.
(00:48:52)시민회관에서 있은 환영예술제.
(00:49:17)존슨 대통령이 바쁜 일정을 보내는 동안 부인 버드 여사는 영부인을 예방하고 담소했습니다. 영부인께서는 버드 여사를 미술전람회장으로 안내, 우리 문화를 자랑하셨습니다. 또한, 경복궁에 마련한 민속 잔치에도 함께 나가셔서 우리의 민속예술을 널리 소개하셨습니다.
(00:50:55)존슨 대통령 부처의 이한(離韓)인사. 혈맹의 우의를 다진 방한일정을 마치고 존슨 대통령 부처는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00:51:53)박정희 대통령 각하 취임 3주년을 기념하는 경축연으로서, 1966년은 저물어갔습니다.
(00:52:20)67년 3월 2일, 독일 연방 공화국의 뤼브케 대통령 부처가 박 대통령 초청으로 우리나라에 왔습니다. 독일에서 따뜻한 영접을 받으셨던 내외분은 뤼브케 대통령 부처를 초청, 두 나라의 우의를 다지는 데 온갖 정성을 다하셨습니다.
(00:53:22)이튿날 밤. 내외분은 뤼브케 대통령 부처를 위한 환영 리셉션을 베푸시고 두 나라의 우의를 다지셨습니다. 리셉션이 끝난 후 양국 대통령 내외분은 시민회관에서 베풀어진 환영예술제를 관람했습니다.
(00:54:43)세 차례에 걸친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대통령은 두 나라가 숙명적으로 결합된 정치적 동반자임을 재확인했습니다. 조선호텔에서 뤼브케 대통령 부처가 베푼 만찬회. 한독 두 나라의 우호를 다진 뤼브케 대통령 부처는 박 대통령 내외분의 따뜻한 환송 속에 귀국했습니다.
(00:56:21)67년 7월 1일, 제6대 박정희 대통령 각하 취임식 날. 이날 중앙청 광장에서 취임식이 베풀어졌습니다.
(00:57:18)
박정희 대통령 : 선서. 나는 국헌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00:57:40)이 역사적 순간부터 박 대통령은 두 번째로 이 나라 지도자가 되셨고 영부인께서는 또다시 사랑과 봉사의 정을 베푸시는 바쁜 나날들을 보내시게 됐습니다.
(00:58:08)경회루에서 베풀어진 취임 축하 연회. 이날 밤 내외분은 국내외 인사들을 초청, 만찬을 베푸시고 평화와 번영을 위해 일하자고 다짐하셨습니다. 축복과 환희의 코러스는 뜻깊은 이날의 축제를 더욱 빛내고 있었습니다.
(00:59:32)67년 봄. 청와대를 일반에게 공개했습니다. 수 십 만의 상춘객으로 붐빈 청와대에서 여사님은 밝은 미소로서 찾아온 국민들과 옷깃을 스치며 담소하시고, 기념 사인도 해주셨습니다.
(00:59:54)고향의 봄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01:00:23)이해에도 고향의 선영을 찾으셨습니다.
(01:00:59)성묘 후 내외분은 박동희 옹을 찾아 재회를 기뻐하면서 동네 사람들과 옛정을 나누셨습니다.
(01:01:18)어린이들의 천진한 모습을 무척이나 사랑하시던 여사님. 멀리 낙도에까지 그 사랑을 베풀어 수없이 많은 편지를 받곤 하셨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라는 어린이들이지만 까만 눈동자를 그려보며 일일이 답장을 보내셨습니다.
(01:01:42)봉사활동을 하시면서도 언제나 어린이들 걱정을 하셨습니다. 어린이들의 점심 급식으로 보릿가루를 이용하면 좋겠다고 하시던 여사님.
(01:02:06)여사님은 어린이 월간지 어깨동무를 펴내셨습니다.
육영수 여사 : 어린이들의 벽촌에 책이 없겠구나, 우리 부모님들이 일일이 참 경제문제…. 경제상…. 사줄 수도 없고, 책을 못 보겠구나 해서, 아이디어를 그런 데서 얻어 가지고 한 3년 동안 책을 쭉 보내주고 있었죠.
(01:02:32)용사들의 잃어버린 팔다리가 되어주자고, 그리고 슬픈 운명을 행복으로 이끌어주자고 마음 다하시고, 사랑의 천사에게 훈장을 달아주시기도 했습니다.
(01:02:56)여사님은 도움을 준다는 즐거움보다는 그와 같은 도움을 받게 되는 사람들이 의욕적으로 여러 사업을 추진해가면서 항상 고마움을 느끼는 그 마음씨가 더욱 대견해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01:03:21)외로운 사람, 불우한 사람, 어려운 환경에서 큰일을 해야 할 사람들을 위해 내일의 결실이 있음을 격려하시고 위로하신, 이 나라 모든 가정의 슬기로운 어머니셨습니다. 이 땅 위에 평화의 나무 심어 물 주시던, 티 없이 곱던 손길. 약자에 현애(賢愛)롭고 서민에 다정하여 촌부의 소박과 학의 고귀를 함께 지니셨던 여사님.
(01:04:04)연한 비둘기의 음성으로 오고가는 이웃들을 돌보아 고매한 치마 결로 알뜰히 보살폈듯이 흰 샘물의 미소로 이 땅의 갈증을 풀어주시던 그 생은 보람차고 또 벅찼습니다. 여사님의 생활과 생애는 그대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길이 남을 것입니다. 그 진지하시던 심정과 아름다운 생애 표현은 가고 오는 세대에 여성의 귀감이 되셨습니다.
(01:04:55)우리 함께 마음 모아 어려움 이겨내자 시던 그 자애로운 말씀으로 이 땅 온 겨레는 한마음이 될 수 있었습니다. 불우한 사람을 돕는다는 것에 앞서 불우한 사람을 만나는 일, 그것이 중요하다고 하시며 그들을 방문, 격려해 주시는 일에 끊임없는 성의를 다하셨습니다.
(01:05:37)어려운 사정에 일일이 공감을 표시하며 함께 걱정하시는 모습은 바로 이웃에 사는 부인 같은 느낌을 주셨습니다. 불우한 그들도 마음에 있는 말을 거리낌 없이 터놓을 수 있었고, 그것을 여사님은 무척 흐뭇하게 생각하셨습니다.
(01:06:18)67년의 내외분의 다정한 모습입니다.
(01:06:29)68년의 어버이날. 여사님은 모범 어머니들을 초청, 여성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성장기의 자녀를 올바르게 이끌어주고 교육시키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때로는 나라를 빛내는 예술인들을 가까이서 격려하시기도 했습니다.
(01:07:04)청와대 뜰에서 여류 문인들과 환담하시던 여사님.
육영수 여사 : 어린이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이런 생활을 해 줬으면 좋겠고요. 양심의 가책을 하지 않는 생활. 자기 분에 맞는 생활. 바꿔서 말하면 현실에 맞는 생활이라 할 수 있을까요? 이론이 앞서기보다는 실천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갖춘 국민이 다 같이 됐으면 좋겠어요.
(01:07:49)여사님은 성실한 주부와 아내로서, 또한 자애롭고 섬세한 어머니로서 조금도 남김없이 정을 나누시고 희비의 환을 함께 할 수 있는 정다운 한 여성으로서 우리와 마음을 통할 수 있는 친근한 한 인간으로서의 영부인이셨습니다. 이 나라 기둥이 될 젊은이들에게는 희망과 긍지를 일깨워주시고 의지와 신념을 심어주셨습니다.
(01:08:23)충무공 동상을 제막하시며 나라 지킨 성현(聖賢)들의 얼을 기리시기도 했습니다. 뉴 서울 슈퍼마켓의 개점 테이프를 끊으시고 내외분은 함께 몇 가지의 일용품을 구입하시면서 나쁜 상품은 언제나 고발할 수 있는 그런 자세가 있어야 소비자가 보호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01:09:12)(노래)동무생각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01:09:16)이해 여름. 호남 지구에 극심한 가뭄이 들었습니다. 33도의 무덥던 여름 어느 날. 여사님은 점심도 거르신 채 전남 나주 한해(旱害) 지구로 향하셨습니다. 한해민의 딱한 사정은 바로 자신의 아픔이요 괴로움이었습니다. 외롭고 괴로운 국민의 형제가 되어주시던 따뜻한 미소는 어려움을 이겨내는 의지가 되어주셨습니다.
(01:09:54)전라북도 여성회관. 여성의 미덕은 희생정신과 덕을 갖추는 데에 있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일러주셨습니다. 여사님은 늘 남편이 어떤 요직을 맡으면 아내도 그 자리에 어울릴 수 있도록 애써야 하며, 훌륭한 내조자는 못 될지라도 최소한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01:10:31)북괴 무장공비의 만행으로 피해를 입은 울진 삼척지구에도 들러 유가족과 주민들을 위로하셨습니다. 건설의 벅찬 숨결 속에 바쁜 걸음 옮기시던 여사님. 국민과 함께 발전하는 이 나라의 참모습을 지켜보셨습니다.
(01:11:23)뉴질랜드 수상 부처의 접견. 청와대 손님 가운데는 외국인들도 많았습니다. 여사님은 그 많은 외국인 중에서도 한국을 이해하고 한국을 알려고 애쓰는 사람들에 대해 언제나 다정하셨습니다.
(01:11:46)68년 5월. 에티오피아의 셀라시에 황제가 박 대통령 각하의 초청으로 우리나라에 왔습니다. 도착 첫날 오후 셀라시에 황제 일행은 청와대로 내외분을 예방했습니다. 그리고 서로의 정표로 선물을 교환했습니다.
(01:13:23)중앙청 홀에서 베풀어진 환영 리셉션. 셀라시에 황제는 재한(在韓) 기간 중 한국의 아름다움을 구경하고 생활방식을 배우겠다고 말하고, 에티오피아 국민의 친선의 뜻을 전했습니다.
(01:14:51)리셉션에 이어 베풀어진 만찬회. 아시아-아프리카 간에 가교를 놓은 셀라시에 황제의 방한을 축하하고, 또 에티오피아 병사들이 이 땅에서 흘린 피로 두 나라는 한층 더 그 유대를 다졌습니다.
(01:15:19)이날 밤에 공연된 민속예술제.
(01:16:05)한국에서 보내는 마지막 저녁에 셀라시에 황제는 영빈관에 만찬회를 마련하고 내외분을 초청했습니다. 양국 원수는 경제, 사회, 문화 등의 협조와 유엔에서의 협조를 다짐했습니다.
(01:18:00)나흘간의 방한일정을 마친 셀라시에 황제는 이한 인사에서 따뜻한 영접에 감사의 뜻을 표했습니다.
(01:18:27)이곳은 호주의 수도 캔버라. 68년 9월 16일, 내외분과 큰 영애의 호주 방문 실황입니다. 이날 수도 캔버라 공항에는 케이지(Richard Gavin Gardiner Casey) 총독 부처와 고든 수상 부처 등 많은 정부 인사들이 내외분을 영접차 나와 있었습니다. 여사님은 이 여행에서 보고 느낀 것을 두 편의 기행문으로 쓰셨습니다. 하나는 호주·뉴질랜드 방문 소감이었고, 또 한편은 남극 일기였습니다.
(01:19:10)남극 일기에서 여사님은 이렇게 적으셨습니다. 무슨 일에나 조촐하고 성의 있는 풍습의 나라임을 느끼게 했다. 만찬에 참석한 각료의 부인들이며 대사 부인의 입음새(옷 입은 모양새), 차림새 또한 그랬다. 화려한 옷매무새는 없고 분수에 맞고 허황되지 않은 주부들의 모습이 그랬고, 남편들은 또, 거기에 어울리게 성실하며, 꾸준하고, 근면하게 사는 면모를 보여주었다.
(01:20:08)우리나라 대사관에 들르신 내외분은 많은 교포들과 함께 그리운 고국의 정을 나누었습니다. 메리메이드 홈 아동보호소. 여사님은 또 이렇게 적으셨습니다. 60명 정원 시설에 45명밖에 안 찼다. 부모가 일시 부부싸움을 했거나 먼 곳으로 일하러 가게 되었을 때 맡기고 간 아이들이지, 근본적으로 버려진 아이는 없다고 한다. 말하자면 장기 탁아소 겸 유년 기숙사 같은 곳이다. 인구가 이만큼 된다면 우리 대통령께서도 잘 살 수 있게 다스릴 수 있으시겠다고 잠깐 생각해보았다. 이곳은 항구도시 시드니. 캔버라 방문일정을 마치신 내외분은 시드니에 도착하셨습니다. 박 대통령 각하께서는 큰 영애와 함께 약 한 시간 동안 시드니의 항만시설을 둘러보셨습니다.
(01:21:41)뉴질랜드의 오하케(오하케아, Ohakea) 공항에 도착하신 내외분은 폴레트(Arthur Espie Porrit) 총독 부처와 홀리오크(Keith Holyoake) 수상 부처의 영접을 받으셨습니다. 내외분은 홀리오크 수상의 안내로 수도 웰링턴으로 오셨습니다. 이날 저녁 내외분은 폴레트 총독을 예방하셨습니다. 뉴질랜드 도착 이튿날. 내외분은 뉴질랜드의 전쟁기념비를 찾아 헌화하셨습니다.
(01:23:14)남극 일기에서 여사님은 해밀턴 농장은 자가용 비행기로 목초 비료를 줘야 할 만큼 넓은 곳이었다. 그들에게는 일상에 지나지 않는 이 양털 깎는 목가의 풍경이 왜 그렇게 아름답고 좋아 보였을까, 이렇게 목장 시찰의 소감을 적으셨습니다.
(01:23:48)호주와 뉴질랜드를 방문하신 내외분은 우리도 개척자다운 정신과 의욕으로 우리의 경제건설을 밀고 나가면 머지않아 참된 번영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01:24:13)산하에 깃든 향기. 님의 덕행 되새기며 골골이 구비마다(굽이마다) 님의 손길 따스한데 네게서 알뜰한 정에 흠뻑 젖어 볼 건고. 안에서는 현모양처 밖에서는 만인의 벗. 백합의 고운 후냥, 한국처럼 고고하고 메마른 시정을 적신 절세의 정 그립니다.
(01:24:51)복된 땅 가꾸기 위해 나무뿌리 감싸며 꽃씨 심으시던 여사님. 69년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남산 중턱에서 어린이회관이 기공됐습니다. 첫째 재미나게, 둘째 튼튼하게, 셋째 위험하지 않게, 여사님의 이 세 가지 지침 아래 4천여 평의 공사가 시작됐습니다. 알뜰하고 착한 이 땅의 어머니 되자시며 발걸음 닿는 곳마다 여성회관을 마련하셨습니다.
(01:26:01)이스마엘 나시르딘 샤 말레이시아 국왕 접견. 슬기와 지혜로 귀빈을 맞으시고 내 나라 내 겨레를 자랑하셨습니다.
(01:26:32)니제 대통령 접견.
(01:26:45)그토록 자상하신 마음과 자유로운 품성이 경애의 전념을 솟게 하시고 누구나 대하기 쉬운 소박과 학처럼 우아하신 몸가짐에 만물이 손짓할 듯 만인의 가슴에 신비로운 등불을 켜주셨습니다.
(01:27:08)알뜰 주부들을 접견하시고 낭비를 일삼는 지각없는 여성에게 알뜰 경험을 널리 알려 알뜰한 여성 기품을 펴나가자 당부하셨습니다.
(01:27:26)가난과 재난에 허덕이는 겨레 구하려고 그토록 알뜰히 더 마련하시던 자선의 행사들. 숱한 겨레가 그 은혜를 입었습니다.
(01:27:37)(노래)그네
세모시 옥색치마 금박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차고 나가...
(01:27:52)수재민 돕기 바자회. 이날 뉴서울 슈퍼마켓에 있은 바자회는 양지 회원들이 출품한 4만여 점이 전시 판매됐습니다.
(01:28:25)원호병원에서 있은 파월 전상자 복지기금 마련을 위한 바자회.
(01:28:39)배움터의 젊은이들이 마련한 자선행사. 여사님은 뭐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최선을 다하지 못했을 때는 숙제를 못 한 학생의 기분이라고 하셨습니다.
(01:29:25)재활용사촌에 세워진 양말 공장. 69년 겨울 여사님은 서울 용산역에 있는 장병 휴게소를 방문, 휴가 장병들에게 간식을 만들어 주시고, 고향으로 가는 장병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 주셨습니다. 전선의 참호에서, 그리고 해안의 초소에서 불철주야 국토방위에 여념이 없는 국군장병과 전투경찰들에게 언제나 따스한 손길을 베푸셨습니다.
(01:30:49)이해에 있었던 개헌투표 때의 여사님의 모습입니다.
(01:31:08)청와대 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시던 내외분.
(01:31:27)여기는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69년 8월. 내외분은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셨습니다. 이날 공항에는 닉슨 대통령과 정부 요인들이 영접을 나와 있었습니다.
(01:32:32)두 나라 대통령은 성 프란시스 호텔에서 두 차례에 걸친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한미 두 나라의 보다 굳은 유대를 전 세계에 거듭 밝혔습니다. 내외분은 이튿날 우리 교포들과 조찬을 같이 하시면서 그들을 위로, 격려하셨습니다.
(01:33:22)올해에도 튼튼한 체력 길러 착한 삶과 행복된 길 열어 보자시던 여사님.
(01:33:53)이해 조선호텔이 그 문을 열었습니다.
(01:34:16)서울대교와 남산1호 터널 준공식.
(01:35:09)비원의 보수 정화 준공식.
(01:35:22)숭고한 어머니 신사임당의 옛 얘기 더듬어 기념비를 건립하시고, 장한 대한의 딸 유관순 소녀를 기려 여성들의 등불로 본받게 하셨습니다.
(01:36:07)젊은 기능공들이 일하는 공장마다에도 자활의 길 축복해 주시고, 나라의 숨은 공로자 찾아 상을 내리시기도 하셨습니다.
(01:36:57)70년 5월 5일, 제48회 어린이날을 맞아 여사님은 남산 중턱에 어린이회관 머릿돌을 제막하시고, 이 복지 회관이 하루속히 완공돼 모든 어린이들의 지혜와 슬기가 이곳에서 움트도록 기원하셨습니다. 또한, 가난한 아동을 위해 마련하신 어린이 독서실. 그 지혜의 샘은 여사님의 웃음과 더불어 온 누리에 번져갔습니다.
(01:37:45)이해 7월 말. 그토록 소망하시던 어린이회관이 준공됐습니다. 모범 어린이들의 접견. 여사님은 틈 있을 때마다 새싹들에게 건전한 꿈과 슬기, 그리고 용기와 사랑과 지혜를 가르쳐주시고, 내일의 이 나라 기둥이 돼야 한다고 큰 뜻 전해주셨습니다.
(01:38:58)세계 하늘 아래 태극기 나부끼게 힘이 되어주시던 여사님. 열 사람이 모이면 열 사람의 형제 되고, 백 사람이 모이면 백 사람의 친구 되셨습니다. 현대의 내조란 옛날부터 내려오는 아내의 본분에 더해서 창의적인 지혜를 발휘하고, 민주 방식의 교육을 알며, 남편과 더불어 나눌 대화의 슬기를 찾는 여성이어야 한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01:39:34)여사님은 더 많은 사람을 만나 대통령과 국민 사이를 잇는 튼튼한 다리가 되려고 애쓰셨습니다.
(01:39:54)(노래)
(01:39:56)수원 여성회관 준공식. 뙤약볕 아래 길목에 서서 사랑의 열매 달아주시고 태산같이 많은 일 들 제쳐두시고 겨레 위에 누비시던 그 길목에는 아직도 그 따스한 정 우리 옷깃에 스며있습니다.
(01:40:33)우리들의 머릿속에 너무도 인자하게, 너무도 우아하게, 너무도 은혜롭게 자리하시는 육영수 여사님. 여사님은 지나간 옛 얘기에서부터 사회복지 문제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자상하신 말씀으로 자리를 이끌어 가시기도 했습니다. 어떡하면 아낄 수 있고 무엇을 사면 조금이라도 낭비가 덜 되는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01:41:10)이해 연말. 내외분은 대한결핵협회장으로부터 크리스마스실을 사시며 결핵 퇴치 운동에도 앞장서셨습니다.
(01:41:27)산업의 대동맥, 서울-부산 간 고속도로 개통식. 조국 근대화의 숨결 속에 함께 달리시던 여사님. 건설의 현장마다에도 여사님의 발자국은 남아있습니다. 변모하는 나라의 새 모습 앞에서 초석이 되어간 일꾼들의 명복을 비시고, 70년 7월 7일, 대망의 서울-부산 간 고속도로가 완전 개통됐습니다.
(01:42:55)71년 4월 27일, 제7대 대통령 선거의 날. 1,555만여 명의 선거인 가운데 약 80프로가 투표를 했습니다. 이 선거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제7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셨습니다. 당선 공고가 있기 전 내외분은 충무공 탄신일 426돌을 맞아 현충사를 참배하셨습니다.
(01:43:57)여사님의 서민 생활에 관심 또한 크셨습니다. 도시가스 공장 준공식에 참석하셨던 여사님은 국민의 가정 살림도 두루 살피시며 어려움이 없는지 물어보시고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이해 우리나라 처음으로 전철과 지하철이 건설되는 날, 여사님은 내일의 번영을 마음으로 염원하셨습니다.
(01:44:43)서울에서 개막된 제1회 박 대통령배 쟁탈 아시아 축구 대회. 선수와 함께, 관중과 함께 웃고 즐기시며 나라 안팎의 많은 경기를 빛내주셨습니다.
(01:45:36)제1회 대통령 영부인배 쟁탈 어머니 배구 대회. 여사님은 특히 여성의 복지와 사회적 지위 향상에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영부인배 쟁탈 정구 대회, 탁구 대회, 어머니 배구 대회 등을 마련해 각종 경기를 장려하셨습니다.
(01:46:00)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개막된 제2회 한국미술대상전. 여사님은 각종 미전을 관람하시며 우리 문화의 오늘을 더듬어 보셨습니다.
(01:46:19)제3회 국제 청소년 미술 실기대회.
(01:46:38)새마을 슈퍼 체인을 둘러보시며 우리 모두 지혜를 모아 좋은 상품 만들자고 당부하시고 변모하는 도시의 새 모습을 함께 축복해 주시던 여사님.
(01:47:24)여사님의 온화한 그 모습과 잔잔한 그 미소는 이 땅 후세들에게 역사의 귀감이 되시고, 국민의 가슴에 따사로운 빛과 꿈을 불어넣어 주시고, 한 송이 백합처럼 감싸 주시던 여사님은 정녕 가난한 자, 헐벗은 자, 그리고 외로운 이의 친근한 벗이었습니다.
(01:48:34)그늘에서 볕을 못 보고 슬픔에 잠겨 있는 많은 생명들에게 참삶을 알게 하셨고 재생의 힘을 저들에게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01:49:09)사랑의 열매 가두모금. 여사님은 양지회 활동에 대해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육영수 여사 : 주로 양지회에서는 봉사사업하고요, 위로사업을 했다고 할까요? 그저 그런 용도에서 그쳤는데, 좀 더 금년에는 적극적으로요, 뭔가 남을 수 있는 거를 좀 해봤으면 싶은데요, 이를 테면 병원 같은 곳에 방문을 갈 적에도요, 반드시 그런 명절이 아니래도요, 또는 어느 단체가 아니래도 주부들이 그저 병실 하나 둘만 찾아다녀도 참 좋을 것 같아요. 적적이 누워있는데 빈손으로 가기 안됐으면 하다못해 사과를 몇 개를 사가져 가도요. 한두 병실을 찾아간다든지 해서, 그렇게 해서 좀 같이 앉아서 얘기도 해주고, 또 책도 좀 읽어주고요, 또 뭔가 손재주 같은 것도 길러줄 수 있으면 길러서 더 아픈 환자들이 잊을 수 있게 끔요. 장기 치료가 필요한 이런 병원이 참, 그런 일이 필요하더군요.
(01:50:40)71년 7월 1일, 박정희 대통령의 제7대 대통령 취임식이 중앙청 광장에서 엄숙히 거행됐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 선서. 나는 국헌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1971년 7월 1일. 대통령 박정희.
(01:51:43)72년 여름, 여사님은 국립묘지의 잡초를 뽑으시며 묘지 주변을 알뜰히 정돈하셨습니다. 자상하고 인자하신 고운 마음씨로 가엾은 사람들을 돌봐주시고 알뜰한 아내로서 덕을 쌓으시던 그 총명, 그 음성, 잔잔한 그 미소.
(01:52:42)여사님은 고전 속에 담긴 우리의 문화를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어린이들의 슬기를 모은 미술 전시회장에도 정성으로 다니셨습니다. 이해 9월 29일에 부산 어린이회관 기공식. 여사님은 이 회관이 준공되는 날 이 자리에서 또 만나 어린이 노래를 함께 부르자고 하셨건만.
(01:53:39)10월 31일. 여사님의 언니가 별세하셨습니다. 그 슬픔 속에서도 여사님은 공인으로서의 직책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어린이대공원 기공식에 참석, 미소 지으며 손수 흙을 뜨셨습니다. 불구(장애) 아동을 찾아 자혜학교를 방문하시고 멍든 어린 가슴들을 어루만져주시던 여사님의 손길을 병상의 어린이들은 동화 속의 약손으로 생각했습니다.
(01:54:39)전몰 군경 미망인들을 찾아 남편 없이 살아가는 고달픈 그들에게 결코 좌절하지 말고 꿋꿋하게 살아달라고 여사님은 그들의 슬픈 운명을 달래 주셨습니다.
(01:54:57)(노래)어버이날 노래(어머님 은혜)
(01:54:59)서울시가 마련한 노인회관 준공식. 경로 정신을 고취하는 일에도 각별히 마음을 쓰셨습니다.
(01:55:26)여사님은 월요일마다 쉬는 어린이회관을 이용해서 경로잔치를 마련하셨습니다. 이른바 월요 경로회. 70세 이상 노인들을 초청, 하루를 즐거운 행사로 위로하셨습니다. 12월 4일의 첫 경로잔치는 전국에서 70세 이상 노인 500여 명을 초청, 푸짐한 대접을 해 드렸습니다.
(01:56:24)겨레와 더불어 겨레의 가슴 가슴마다 함께 숨 쉬고 함께 기뻐하시고 함께 아파하시며, 겨레의 그늘진 곳에 빛을 베푸시고 접힌 마음을 펴주시며 아픈 곳 쓰다듬어 주시던 님의 그 높은 덕. 지도층 인사들은 언제나 국민의 거울이 되도록 진실하고 충성 되게 살아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01:57:38)어느 화창한 봄날. 만발한 목련 나무 밑을 다정하게 거닐시 던 내외분의 모습.
(01:57:57)여사님의 경희대학교 방문입니다. 여사님의 대학가 나들이는 68년 11월 14일, 한국외국어대학 유네스코 학생회 초청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여사님은 그냥 만나보고 싶은 마음에서 그들의 초청에 응했습니다.
(01:58:28)대학가에 들를 때마다 여사님은 젊은이들에게 조국 근대화의 제 일선을 담당하게 될 여러분들은 이 시기에 저력을 길러야 하고 모든 생활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01:58:57)학생들의 말대로 인자한 어머니, 생각하는 주부, 실천하는 생활인이셨던 여사님은 대학생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도 하셨습니다.
육영수 여사 : 내가 야당이라고. 유일한 야당이라고 자처해 본 일도 없고 그렇게 생각을 안 하는데, 그거는 오로지 대통령께서 붙여주신 거예요. 이게 인제 교수님들하고 환담을 하시다가도 여기 지독한 야당이 앉아있으니까 말조심하라고요. 농담 삼아서 이런 얘기 자꾸만 하시다가 그 얘기가 아마 밖에까지 새 나온 것 같아요. 그런데, 국민과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기 때문에 국민들의 여론이랄지 생각하고 있는 바를 대통령께 많이 말씀드릴 수가 있겠죠.
(02:00:10)가도 가도 황톳길. 그 나환자촌에 발길이 머무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곳은 나환자 정착촌인 전라북도 익산군의 상지원 새마을과 북창 새마을. 여사님은 인간으로서 인간 이하의 냉대를 받고 있는 그 사람들 처지를 가슴 아프게 생각하시고 자주 현지에 내려가셨습니다.
(02:01:10)이지러진 그들의 손을 잡으시던 그 자애로운 웃음을 우리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도 우리를 저버렸는데, 육 여사께서 이렇게 돌봐주시니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여사님 손을 잡고 감격의 눈물을 짓던 나환자들.
(02:01:43)스스로 노력하는 길만이 숙명처럼 살아온 빈곤과 수모와 질병의 역사를 하루 속히 청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하시며 여사님은 집집마다 방문해서 부엌 안까지 살피시고 그들의 생계를 염려하셨습니다.
(02:02:29)72년 12월 27일, 제8대 박정희 대통령 각하 취임식이 장충체육관에서 엄숙히 거행됐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 선서. 나는 국헌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에 노력하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1972년 12월 27일. 대통령 박정희.
(02:04:06)선서에 이어 박 대통령께서는 유신 헌정의 기본 방향을 소상히 밝히셨습니다. 유신 헌법의 공포와 제8대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취임을 계기로 유신 헌정의 새 역사가 그 막을 올렸습니다.
(02:04:45)(노래)봄처녀
(02:04:52)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의 날.
(02:05:21)이해 식목일, 여사님은 200여 명의 양지 회원들과 함께 어린이대공원에 나무를 심으셨습니다.
(02:05:45)항도(港都) 진해에 벚꽃이 만발하던 날. 여사님은 외교사절 부인들을 초청,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셨습니다.
(02:06:16)내년이면 우리도 지하철을 탈 수 있게 된다고 기뻐하시던 여사님.
(02:06:45)제51회 어린이날을 맞아 여사님의 숙원사업 중 하나인 어린이대공원이 문을 열었습니다. 이날 개원식에서 여사님은 오늘부터 이 장소에서 마음껏 뛰놀고 건강하게 자라서 훌륭한 대한의 어린이가 돼야 한다고 당부하셨습니다.
(02:07:24)숨은 공로자 찾아 상을 내리시던 그 정성은 해가 가도 한결같았습니다. 나라 위해 가신 얼 기리며 후손의 도리 다하자 하시던 그 진실과 굳은 염원. 조국 찾은 광복의 그 날이 오면 독립유공자의 은공을 높이 치하하시고.
(02:08:38)외빈을 맞으실 때마다 내 나라 내 겨레를 자랑하시려고 무던히도 애쓰셨습니다.
(02:09:06)어린이 예능센터를 찾으시고 어린이들의 재주를 칭찬해주셨습니다. 되도록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것을 보고, 또 많은 사람을 돕는 일. 그것이 여사님 공적 생활의 전부였습니다. 그러기에 여사님의 생활은 움직이는 생활이었고 살아있는 나날이었습니다.
(02:09:56)항상 밝은 미소와 따뜻한 표정을 잃지 않으셨던 청아하신 모습은 대하는 이의 가슴에 말 못 할 희열과 감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차분히 자리를 지킨 한 그루 목련. 사슴같이 긴 목은 언제나 온화하셨고, 영롱한 두 눈은 항상 슬기로워 입가엔 미소, 엷은 색깔의 한복은 비둘기 같은 평온으로 이룩된 한 그루의 목련.
(02:11:13)언젠가 여사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훗날 청와대를 물러간 후에도 나를 지금과 같이 찾아와 줄 사람들이 있겠는지 그 인정을 알 길이 없다고.
(02:11:29)이해 5월 8일, 첫 어버이날을 맞아 서울대학교 여학생 회장단 일행의 인사를 받으셨습니다.
(02:11:39)첫 어버이날의 경로잔치.
육영수 여사 :…. 아마 처음 여러분을 만나 뵙는 것 같아요. 한 자리에서 건강하신 여러분을 만나 뵙게 돼서 대단히 반갑게 생각합니다. 금년에는 더욱더 복 많이 받으시고요, 건강관리에 더욱더 많은 관심을 가지시고 오래오래 사시고 일을 많이 해주시고요, 그래서 더 좋은 세상을 여러분들이 더 오래 누리실 수 있도록 많은 건강에 유의해주시기를 다시 한 번 부탁드리겠습니다.
조상에게 감사를, 부모에게 효도를, 어른에게 존경을 하자는 표어를 내걸고 적극적인 행사를 벌였습니다.
(02:12:39)갖가지 자모(慈母)들의 모임에도 여사님은 언제나 도움을 주셨고,
(02:13:08)이 나라 간성(干城)들의 창설 돌날마다 이 땅 이 겨레 굳게 지키자고 다짐하셨습니다.
(02:13:43)예술의 전당 문을 열 때마다 함께 그 자리에 빛내 주시던 여사님.
(02:14:14)73년 10월 17일, 여사님 숙원사업이 또 하나 이루어졌습니다. 정수직업훈련원. 이날 개원식에서 여사님은
육영수 여사 : 본인은 오늘 이 뜻깊은 정수직업훈련원 개원식을 맞이하여 밝은 희망과 벅찬 기대 속에 학업과 실습에 정진하게 된 원생 여러분의 앞날에 먼저 따뜻한 축복과 격려를 보내는 바입니다. 훈련생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한창 학업에 전념해야 할 청소년들이지만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하여 스스로 자활의 길을 걸어야 할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오늘의 시련이 여러분에게는 힘겨운 일이긴 하지만 그와 같은 시련을 받아들이는 여러분의 자세 여하에 따라서는 오늘의 어려움이 내일의 희망과 보람을 안겨다 줄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02:15:26)전국 새마을 여성 경진대회. 무엇에 종사하든 여성은 그 주부의 자리를 곱게 지키는 것이 최상의 길임을 여사님은 깨우쳐 주셨습니다.
(02:15:52)73년 11월, 전주에서 순천을 거쳐 부산에 이르는 358킬로미터의 호남-남해 고속도로가 전주 인터체인지에서 그 테이프를 끊으면서 완전 개통됐습니다. 이날 내외분은 광주에서 있은 개통 기념행사에 참석하시고 이 길을 통해 마음과 마음을 이어가자고 당부하셨습니다.
(02:16:44)마음을 잇는 고속도로는 여사님의 마음을 실어가는 바로 그 길이었습니다.
(02:17:07)이 생을 다 하시던 1974년, 여사님의 넓고 깊은 진실한 입김은 어디에나 서려 있습니다. 조국의 기둥이 될 젊은 역군들의 앞날을 축복해 주시던 여사님.
(02:18:03)조국의 간성들에게 잔치를 베푸시고 진정 이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칠 수 있는 용감한 젊은이 돼달라고 당부하시던 여사님. 이 시대의 지도자의 책임이란 한층 더 크고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한 지도자의 아내로서 이 세상에 사신 여사님의 생애는 결코 평범하고 안락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02:19:07)때로는 무르익은 포도송이들과 장미와 난초들의 향기로 이룬 즐거운 모임의 주인으로 임하여 부덕과 모성의 거울이 되시었거늘.
(02:19:31)석굴암 시찰에서 수행 기자들과 잠깐 휴식을 취하실 때의 모습입니다.
(02:19:53)대통령을 위한 조찬 기도회.
(02:20:36)온 겨레에 대한 고른 사랑이 전체가 될 때 그 사회도 그 국가도 진정한 힘을 발휘하고 부강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02:21:00)(노래)동무생각
(02:21:05)전쟁의 아픔을 탄식하시며 묵묵히 잠든 영현(英顯)들을 위로하시던 여사님.
(02:21:38)선녀처럼 곱디고우시던 분이시여, 어린 애같이 착하디착하시던 분이시여.
(02:22:21)인천 도크 준공식. 유조선 진수식. 팔당댐 준공식.
(02:24:19)이해 여사님은 대구 계명대학 여학생회의 초청을 받으셨습니다.
육영수 여사 : 여성은 남성을 좀 자기 남편이지만 존경해야 하겠고, 또는 자기 아내지만 남성도 자기 아내를 존경할 수 있는, 무언가 서로가 그런 점을 가지고 있어야만 하고 또 그걸 발견하려고 서로가 노력을 해야만 원만한 가정이 되리라고 생각을 해요.
(02:24:48)젊은이는 젊은이답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시던 여사님.
(02:25:12)새마을 양잠(養蠶) 시범대회에서 여사님은 어린 시절 누에를 만지던 일을 생각하시며 우리의 생활도 누에처럼 모든 것을 남을 위해 희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보람찬 것이겠냐고 하시면서 일손을 도우셨습니다.
(02:25:51)이해 여사님은 자연보전협회의 총재직을 맡으셨습니다. 그 첫 사업이 소양강에서 있은 치어 방류 행사였습니다. 물고기를 놓아주시면서 이 물고기들이 우리나라의 자연을 기름지게 해 줄 날이 머지않았다고 기뻐하시던 여사님의 일생도 맑은 물처럼 깨끗하셨습니다.
(02:26:25)1974년 7월 19일, 마침 그날은 말복이라 무척 더웠습니다. 무더운 그 날에 수요봉사활동을 마지막으로 여사님은 일생을 다하셨습니다. 평생을 부군이신 대통령과 겨레를 위해 티 없이 밝게 타오르시던 사랑과 봉사의 촛불이셨습니다. 외롭고 슬픈 자의 위로자, 가난하고 서러운 자의 벗이기를 마치 하나님의 뜻대로 였습니다.
(02:27:01)부강하고 번영된 나라라는 빛나는 후광도 없이 마치 잎새 한 장의 도움도 없이 피기 시작하는 목련꽃과 흡사하셨습니다. 그러나 은은한 향기 접으시면서 그 꽃잎이 미처 시들어지기도 전에 아쉬움을 가득히 남기신 채 고이 지신 것입니다.
(02:27:29)(노래)한송이 흰 백합화
(02:27:29)해방 29주년을 맞던 1974년 8월 15일 저녁, 9시간의 사투와 쾌유를 비는 온 국민의 기원도 헛되이, 더할 수 없이 비범하고 아름다우시던 49년의 생애가 보랏빛으로 물들어진 석조의 막을 내렸습니다.
(02:28:16)육영수 여사님. 그늘진 곳에 빛을 내려 주시고 슬픈 곳에 즐거움을 나눠다 주시던 임의 그 사랑. 그 자태는 정녕 백목련(白木蓮) 꽃의 아름다움, 그것이었습니다.
(02:28:54)육영수 여사님. 그토록 좋아하시던 백목련은 다시 피건만, 여사님의 영원한 그 모습은 다시 뵐 길이 없습니다. 한평생 못다 하신 그 뜻 이어서 평화로운 조국 통일 이룩되는 날 꽃으로 피옵소서. 그 모습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