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2)금강의 물줄기를 막아 전천후 옥토의 꿈을 담은 대청 다목적댐. 5년 8개월의 공정 끝에 1980년 12월 준공을 봤다.



(00:39)이 준공식에서 전두환 대통령은 치사를 통해 대청 다목적댐이야말로 천혜의 부존자원을 개발함으로써 새로운 자원을 개발해 나가려는 국가적 의지의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어, 지금 우리는 세계적인 경제 불황 속에서도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해 나가야 할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고 말하고 국내 부존자원인 수자원을 효율적으로 개발, 활용함으로써 80년대에는 우리가 바라는 민주 복지사회 건설을 반드시 실현해 나가자고 강조했다.



(01:23)중부지방의 큰 젖줄로써 충청남북도를 돌아 흐르던 금강. 천리 물길의 흐름이 맑고 완만해서 비단강이라 불리는 이 금강의 허리를 가로질러 대청 다목적 댐을 착공한 것은 1975년 3월.



(01:46)정부의 4대강 유역 종합 개발사업의 하나로 추진한 이 댐은 길이가 495미터(m), 높이가 75미터(m)나 되는 것을 소양강 댐과 안동댐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규모로 건설됐다.



(02:01)그 구조를 보면 충청남도 쪽에는 토석이 많아 석괴식 댐으로, 충청북도 쪽은 암반이 많아 중력식 댐으로 축조함으로써 보기 드문 복합식 댐으로 건설되었다. 그래서 공사상의 어려움이 따랐다. 양쪽의 지반이 다른 데다 강바닥에서 물과 싸워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더욱 힘이 들었다.



(02:26)지축을 울리는 불도저 소리. 트럭 2대분의 콘크리트를 한꺼번에 비벼내는 갈리고 뒤섞이는 요란한 소리. 1,200여 명이 뿜어내는 열기에 범벅이 된 건설의 현장이었다.



(02:43)밤낮없이 작업을 계속해 다목적댐의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면서부터 모든 공정이 순조롭게 진척됐다. 대청 다목적댐은 한 방울의 물이라도 헛되게 버리지 않고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를 했다. 본 댐 외에 홍수 때 물이 넘칠 것에 대비해 지형이 낮은 지역에 세 개의 보조댐을 건설했고 발전소에서 흘러나가는 물을 다시 가둬둘 못도 만들었다.



(03:25)이 댐이 건설됨으로써 혜택을 가장 많이 받는 곳은 청주와 대전. 우선 하루 105만 톤(t)의 물을 공급할 수 있는 대전 도수로와 160만 톤(t)의 물을 공급할 수 있는 청주 도수로가 완성돼 서기 2000년대까지도 물 걱정은 않아도 된다.



(03:48)부대공사로는 충청북도 보은군 회남면 금강 상류에 세운 회남교를 들 수 있는데 높이가 60미터(m)로써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다리가 됐다.



(04:03)또, 댐이 건설됨으로써 많은 도로가 물에 잠기게 되어 댐 주변에 새로운 도로를 건설해야만 했다.



(04:15)한편 이 거대한 댐으로 인해서 금강 상류에 95개 마을이 물에 잠기게 돼 주민들은 정든 고향을 떠나야만 했고 옛 삼국시대 신라인과 백제인이 만나서 물건을 사고팔던 유서 깊은 문의장터도 이제는 볼 수 없게 됐다.



(04:35)공공시설로는 충청남북도에 14개 국민학교를 비롯해서 중고등학교와 면사무소, 농업 협동조합 등 24개 건물과 문화재들이 다른 데로 옮겨졌다.



(04:50)정든 집을 헐고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전답 등도 물에 잠겼다.



(05:05)수몰지역 주민들은 경기도 남양 간척지에 가구당 1정보씩의 농토를 나누어주어 생활 기틀을 잡도록 했으며, 문화재들도 이웃 높은 지역들로 옮겨 보존했다.



(05:25)국민학교와 중고등학교도 이주단지에 옮겨서 학생들은 오히려 그전보다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다.



(05:40)지난해 6월 30일 이 거대한 다목적 대청댐의 담수가 시작됐다. 소백산맥에서 발원해 충북의 산간분지를 누비며 대전 분지와 전북평야를 적셔 마침내 군산 앞 서해로 빠지는 401킬로미터(kg)의 금강. 이 강의 물줄기 한가운데 길목에 대청댐이 세워졌다.



(06:02)내륙의 바다 대청호. 저수량이 14억 9,000만 톤(t)으로 소양강 댐 다음이고 저수 면적은 72.8 평방킬로미터(m²)로 국내 최대를 자랑한다.



(06:13)농업 용수만 해도 1년에 3억 5,000만 톤(t)을 공급하게 된다.



(06:23)우리 기술진 만에 의해서 이룩한 대청 다목적댐. 이 댐을 건설하는 데는 연 인원 170만 명이나 동원됐다. 충청북도 160만 도민이 한 번 이상씩은 모래와 돌을 날라다 쌓은 셈이라고나 할까.



(06:39)주요 자재로는 시멘트가 480만 부대, 철근이 9,300여 톤(t)이나 들었다. 그동안 여덟 차례나 홍수를 만나 공사를 더욱 어렵게 했다.



(07:06)이 댐의 건설로 새로운 수력발전소가 세워졌다.



(07:17)대청발전소의 발전 시설 용량은 9만 킬로와트(kW). 연간 발전량은 2억 5천 킬로와트(kW)에 이르며 1년에 38만 배럴(bbl)의 기름을 절감하게 됐다.



(07:36)여기서 생산되는 전력은 가정용은 물론, 산업용으로서 이 지역 산업발전에 큰 구실을 하고 있다.



(07:54)물이 적은 충청권에 대단위 호수가 형성됨으로써 계룡산 국립공원에서 속리산까지 215리의 물길을 갖게 되어 새로운 수자원을 얻게 됐다.



(08:15)충청남북도와 전라북도의 3개 도에 걸친 이 지역은 이제 대청댐 건설로 홍수피해는 물론 가뭄 걱정도 덜게 됐다. 특히 대청댐은 연간 13억 톤(t)의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를 공급해 대전과 청주에서부터 멀리 공주, 논산, 부여, 장항, 이리에까지 생명의 근원 구실을 하게 됐다.



(08:37)대청 다목적댐. 80년대 민주 복지국가의 건설을 앞두고 새 동맥 구실을 함으로써 우리나라 중부권을 경제발전의 새로운 개척지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