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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의 말기는 내선일체화, 일본식 성명 강요, 한민족의 황국신민화라는 명분 아래 한민족의 전통, 풍습, 언어 등을 말살하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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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초평 관계

황초평 관계

기록물 개요 보기

분류
: 외사 > 한중 영유권 관계
생산년도
: 명치 39년 ~ 명치 42년(1906년 ~ 1909년)
생산부서
: 통감부 외무부 외사과
관리번호
: CJA0002261
문서번호
: 1
M/F번호
: 88-678
총쪽수
: 36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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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물철은 통감부 외무부 외사과에서 생산하거나 접수한 황초평 관계 서류이다. 여기에는 주로 평양 이사청(平壤理事廳), 안뚱센 군정서(安東縣軍政署), 대한제국 내각(大韓帝國內閣), 신의주 이사청(新義州理事廳), 한국주차헌병대(韓國駐箚憲兵隊) 등에서 보내온 시행문과 통감부 외사과에서 생산된 기안문들이 편철되어 있으며 그 외 각종 참고자료가 첨부되어 있다. 원제목이 ≪압록강 하류 어(於)국경문제 청한국 경계교섭문서 황초평관계 부(附)유초평관계 신택평관계≫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애초에는 황초평 관계 서류와 함께 유초평, 신택평 관계 서류도 같이 편철되었다가 이후 어느 시점에서 신택평 관계 서류가 별도로 분철된 것으로 보인다. 신택평 관계 서류는 국가 기록원에 별도로 보존되어있다(≪신택평 관계≫CJA0002291). 따라서 이 문서에는 황초평과 함께 유초평 관계 서류가 같이 들어있는 셈이다. 생산 시기는 1906년부터 1909년까지에 걸쳐 있으나 이 중에는 이전 시기의 서류를 등사하여 관련 자료로 첨부하거나 관련 원본을 찾아 끼워 넣은 경우도 있다. 이는 한청간에 황초평 영유권을 둘러싸고 갈등이 빚어지던 차에 통감부가 1906년에 이 문제에 개입하여 관련 문건들을 작성하거나 접수하는 과정에서 이전 서류들이 취합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1906년 이전 서류들은 참고를 위해 수집한 존안서류이거나 따로 등사한 서류들이다. 여기에는 황초평과 유초평을 둘러싼 한청 양국간의 교섭 시말이 들어 있다.그러나 대부분은 황초평과 관련된 내용이다. 황초평 관계서류는 이처럼 일제 통감부가 작성하거나 참조한 서류들로 구성되어 있어 일제가 한청 국경문제를 보는 시각과 처리 방식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중요 기록물이다. 여기서 일제는 대한제국측에 유리하도록 여러 작업을 벌였는데 그것은 그들 자신이 실토하고 있듯이 대한제국 강점을 앞두고 영토를 확보하려는 그들의 계산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서류에서 일본인이 친일 단체 일진회(一進會) 농업회사(農業會社)와 함께 합작을 통해 각종 이권에 개입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주요기록물

목록

번호 기록물건명 생산년도 생산부서 쪽수 공개구분 원문보기
3 색인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06 통감부 외무부 외사과 1 공개가능 원문보기
2 황초평 관계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06 통감부 외무부 외사과 361 공개가능 원문보기
1 표지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06 통감부 외무부 외사과 1 공개가능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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