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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의 말기는 내선일체화, 일본식 성명 강요, 한민족의 황국신민화라는 명분 아래 한민족의 전통, 풍습, 언어 등을 말살하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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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여학교 학칙개정 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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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물 개요 보기

분류
: 학무 > 학교설립 및 운영 관계 > 중등학교 관계
생산년도
: 대정11년 ~ 대정14년(1922년 ~ 1925년)
생산부서
: 학무국 학무과
관리번호
: CJA0004694
문서번호
: 88-27
M/F번호
: 88-900
총쪽수
: 120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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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물철은 1922∼1925년까지 조선총독부 학무국 학무과가 접수 및 인가한 공립고등여학교의 설립, 학칙개정 등과 관련된 문건을 모아놓은 것이다. 학칙개정은 생도수 및 학급수 증가, 위치변경, 수업년한 연장 등과 관계된 것이 다수를 차지한다. 이미 1911년 조선교육령 공포에 따라 고등학교는 고등보통학교로, 고등여학교는 여자고등보통학교로 개칭되었기 때문에 이 문서에 나오는 고등여학교란 일본인 위주의 학교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일본인 교육재정기관은 조선인의 그것이 학교비(學校費)였던데 반해 학교조합이었다. 이 기록물철에 수록된 문건은 소학교 취학 아동의 증가 특히 여아의 취학률 및 진학률증가에 따라 각 도(道) 및 부(府)의 학교조합이 공립고등학교의 설립 내지 학칙변경을 통해 여자중등교육의 확대 및 확충을 도모하면서 발생된 것이다. 이 기록물철은 일본인이 중심이 된 학교조합이 설립, 운영했던 고등여학교의 운영상을 잘 보여준다. 학교조합 회의록이 다수 수록되어 있어, 실제의 안건 처리방식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조선에 거주하던 일본인 여자중등교육의 상황 및 문제점도 일별 가능하다. 조선에서 거주하던 일본인의 여자중등교육도 확대되어 갔지만 졸업 후의 진로와 진학에 있어서는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 당시 여학생들은 고등여학교를 졸업한 후에 결혼을 하기에는 이르고 전문학교 및 대학 등 상급학교 진학도 일본유학의 길밖에 없었으나 일본과의 학제나 상황이 달라 입학자격을 얻기가 힘들었음을 이 문서를 통해 알 수 있다.

주요기록물

목록

번호 기록물건명 생산년도 생산부서 쪽수 공개구분 원문보기
50 표지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22 학무국 학무과 1 공개가능 원문보기
49 색인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22 학무국 학무과 5 공개가능 원문보기
48 함흥공립실과고등여학교 설치에 관한 건(회의록)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22 학무국 학무과 70 공개가능 원문보기
47 진해공립고등여학교 설치의 건(회의록)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22 학무국 학무과 84 공개가능 원문보기
46 마산공립고등여학교 생도 정원 및 학급 증가에 관한 건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22 학무국 학무과 13 공개가능 원문보기
45 대전공립고등여학교 위치변경에 관한 건(지도첨부)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22 학무국 학무과 8 공개가능 원문보기
44 원산공립고등여학교 위치변경에 관한 건(지도첨부)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22 학무국 학무과 8 공개가능 원문보기
43 전주공립실과고등여학교 설립에 관한 건(회의록)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22 학무국 학무과 44 공개가능 원문보기
42 이리공립고등여학교 설립의 건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22 학무국 학무과 18 공개가능 원문보기
41 진해공립고등여학교 위치변경에 관한 건(도면첨부)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22 학무국 학무과 8 공개가능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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